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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맥클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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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맥클레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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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68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하먼 킬러브루
(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짐 론보그
( 보스턴 레드삭스)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마이크 퀘이야
(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마이크 퀘이야
( 볼티모어 오리올스)
짐 페리
(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8~196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짐 론보그
( 보스턴 레드삭스)
얼 윌슨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데니 맥클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마이크 퀘이야
( 볼티모어 오리올스)
데이브 맥넬리
( 볼티모어 오리올스)
짐 페리
( 미네소타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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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니 맥클레인.jpg
데니스 데일 "데니" 맥클레인
Dennis Dale "Denny" McLain
생년월일 1944년 3월 29일 ([age(1944-03-29)]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일리노이 주 마크햄
신체 185cm / 83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63~1970)
워싱턴 세네터스 (197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72)
1. 개요2. 선수시절
2.1. 프로 데뷔 전2.2. 전성기 이전2.3. 디트로이트의 간판 투수2.4. 몰락
3. 평가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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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 겸 선수인 루 부드로의 사위이기도 하다.

2. 선수시절

2.1. 프로 데뷔 전

1944년 일리노이주 마크햄에서 태어난 맥클레인은 시카고의 마운트 카멜 고등학교에서 유격수 겸 투수로 활동했다. 십대 시절 미래 그의 아내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루 부드로의 딸인 샤린 부드로를 만나기도 했다. 또한 야구 외에도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 아버지로부터 오르간을 배우기도 했다.

196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맥클레인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프로에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2. 전성기 이전

1962년 6월 28일 루키리그에서 할란 스모키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진 맥클레인은 마이너리그 데뷔전에서 16탈삼진 노히트를 기록한다. 이후 루키리그에서 고작 두 경기를 치르고 싱글A로 승격한 맥클레인은 4승 7패를 기록했다.

당시 마이너리그에서 1년동안 뛴 선수는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지 않으면 타팀에 드래프트가 되었는데, 그 해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지 못했던 맥클레인은 화이트삭스를 떠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한다. 이후 맥클레인은 빠르게 상위리그로 승격하며 1963년 9월 21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맥클레인은 자신의 친정팀이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9이닝 8K 1실점 완투승에 솔로 홈런까지 치며 인상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1] 맥클레인은 데뷔 시즌 2승 1패 방어율 4.29 22탈삼진 16볼넷의 성적을 거두었다.

1964년 다시 트리플A로 강등되어 마이너리그에서 시간을 보내던 맥클레인은 6월 초에 다시 메이저리그로 승격한다. 그는 그 해 4승 5패 방어율 4.05 70탈삼진 37볼넷을 기록했다.

2.3. 디트로이트의 간판 투수

1965년부터는 팀 내 주전투수로 자리잡고 그 해 16승 6패 2.61 192탈삼진 62볼넷을 기록하며 팀의 새로운 주축으로 자리잡았다.[2]다음 해인 1966년에는 20승 14패 방어율 3.92 192탈삼진 104볼넷으로 개인 첫 20승을 거두었고 또한 개인 첫 올스타전에 선발투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17승 16패 161탈삼진 73볼넷으로 전년에 비해 부진했으며, 8월 이후에는 아예 승을 거두지 못했다. 또한 당시 디트로이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보스턴 레드삭스,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치열한 리그 우승경쟁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디트로이트는 그날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날 선발투수로 등판한 맥클레인은 그 날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보스턴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절치부심한 맥클레인은 1968년, 첫 두 경기를 승패 없음으로 끝내고, 다음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역사적인 시즌을 써내려간다. 5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둔 맥클레인은 그 다음 경기에서 한번 패한뒤, 다음 경기에서 다시 10이닝 완투승을 시작으로 다시 4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경기에서 패배한 후 다시 9연승을 달렸다. 심지어 저 경기 중 7경기가 완투승이었다! 7월 중순에는 18승 2패였으며 이후 다시 1패를 거둔 후 7연승을 달렸다. 이 중 6경기가 완투, 완봉이 3번이었다. 이후 처음으로 2연패를 당한 뒤 다시 4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었다.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680913_400.jpg
9월 13일, 타임지의 표지에 실린 맥클레인. 30승을 거두기 바로 전 날이다.

그리고 9월 14일, 맥클레인은 디트로이트의 홈 구장인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전국적으로 방송한 경기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4회 레지 잭슨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후 디트로이트는 놈 캐시의 홈런으로 3:2로 역전했으나 다시 6회 레지 잭슨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다. 결국 맥클레인은 9이닝 4실점으로 9회초를 마쳤고, 디트로이트는 4:3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9회말 1사 1, 2루에서 동점을 만들어냈고, 계속되는 1, 3루 상황에서 윌리 호튼이 끝내기 안타를 치며 맥클레인은 34년만에, 2차 세계대전이후 첫 30승 투수가 되었다.[3]
당시 경기 하이라이트

하지만 맥클레인은 30승에 그치지 않고 다음경기에서도 완투승을 거두며 31승을 거두었고, 정규시즌을 31승 6패 방어율 1.96 280탈삼진 63볼넷의 성적을 거두었다. 사이 영 상은 만장일치로 수상했으며, 정규시즌 MVP까지 만장일치로 석권했다. 이는 아메리칸리그 역사상 유일한 만장일치 투수 MVP이다. 또한 디트로이트는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작년의 한을 푸는데 성공했다.

이후 디트로이트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밥 깁슨을 앞세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맞붙었다. 맥클레인은 1차전에 등판해 5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고, 4차전에서도 2.2 이닝 3실점으로 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이 탈락위기에 놓였던 6차전에서는 9이닝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었고, 디트로이트는 7차전에서 미키 롤리치의 1실점 완투에 힘입어 세인트루이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

1968년의 활약으로 맥클레인은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해몬드 오르간 컴퍼니의 보증을 받고 라스베가스에서 뮤지컬에 출연을 하기도 했고, 에드 설리반 쇼, 스티브 알렌 쇼, 조이 비숍 쇼 등의 TV쇼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1969년에도 맥클레인은 지난 시즌의 맹활약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24승 9패 방어율 2.80 181탈삼진 67볼넷의 성적을 거두었다. 맥클레인 그 해 23승 11패를 거둔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크 퀘이야와 함께 공동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맥클레인이 메이저리그에 한 획을 그을 대투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그는 24살에 3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25살까지 2년 연속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또한 나이도 젊었기 때문에 맥클레인의 앞날은 창창해보였다.

2.4. 몰락

1970년 시즌 전인 2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펜트하우스에서 충격적인 기사가 실리게 되었는데, 데니 맥클레인이 도박장 사업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었다. 당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커미셔너 보위 쿤은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으나, 곧 3개월 출장 정지로 경감되었다. 같은 해 9월, 스포츠 기자 짐 호킨스와 왓슨 스폴스트라에게 물을 흠뻑 끼얹는 행위 7일 출장 정지를 받았다. 출장 정지가 막 끝나려던 찰나, 이번에는 비행기에서 총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논란을 야기했고, 결국 남은 시즌 동안 출장 정지를 당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시즌을 마쳤고 맥클레인의 1970년 시즌은 14경기 3승 5패 4.63 이라는 초라한 기록으로 끝났다.

단 한시즌 만에 리그 최고의 투수에서 악동으로 전락한 맥클레인을, 디트로이트는 1970년 10월 9일 워싱턴 세네터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하지만 팀의 약한 타선과 적응 실패로 22패를 당하는 등 크게 부진했고, 197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기량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그러는 사이 도박으로 재산마저 탕진하고 말았다. 결국 1972년 시즌 이후 28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통산 10시즌 280경기(254선발) 131승 91패 2세이브 3.39ERA 1886이닝 1282탈삼진 105완투 19.3bWAR

3. 평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남긴 투수 중 한 명.[4] 1965년부터 1969년까지 5년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대활약을 펼쳤다. 특히 1968년에는 31승[5]을 기록했다. 하지만 1969년 이후 여러 구설수에 오르는 등 논란을 자주 일으키면서 빠르게 몰락하였다.

4. 여담

미키 맨틀의 생애 마지막 홈런을 허용한 투수이다.[6] 평소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맥클레인이지만, 이날만큼은 경기 후 기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떠나는 대선배를 예우한 그의 모습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기자들은 의도적으로 홈런을 칠 수 있도록 공을 던져줬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했으나, "나는 전력으로 던졌으나, 맨틀이 정말 잘 쳤다."라고 답하며 논란을 일축했다.

5. 관련 문서



[1] 매클레인의 선수 시절 유일한 홈런 [2] 그가 1965년 거둔 192탈삼진은 그 해 아메리칸리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3] 그 전 마지막 30승 투수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디지 딘이었다. [4] 다른 투수로는 주로 마크 피드리치, 저스틴 벌랜더가 거론된다. [5] 2022년 현재까지도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최후의 단일 시즌 30승 기록인 셈이다. [6] 맥클레인과 당시 배터리를 이뤘던 짐 프라이스는 대놓고 맨틀에게 홈런을 칠 수 있도록 볼을 던져주기로 합의했고, 이 덕분인지 맨틀은 통산 536번째 홈런이자 선수로서 마지막 홈런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