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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12-29 14:36:22

더 크레센츠

파일:attachment/더 크레센츠/crescents.jpg
2014년 라인업. 왼쪽부터 박준수(기타), 조정렬(드럼), 연상(보컬), 손영훈(기타), 장여지(키보드), 정영상(베이스).

밴드 공식 페이스북

1. 개요 2. 바이오그래피
2.1. Neo Metalnesque (2005)2.2. Flowergrave (2006)2.3. The Rising (2009)2.4. History of Revolution (2010)2.5. 활동중단 (2011 ~ 2014)2.6. 47개월 만의 재결합 (2014 ~ 현재)
3. 특징4. 여담

1. 개요

한국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파일:7VFRGvH.png
재결합 이후인 2014년에 리뉴얼된 밴드 로고.

파일:NytB5Tn.gif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쓰인 과거의 로고.

2. 바이오그래피

2004년 4월, 보컬 연상과 키보드 장여지가 결성. 둘은 2000년부터 메틀코어 성향의 아마추어 밴드를 함께 하고 있었다.[1] 좀 더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밴드를 나와, 지인 포섭 및 구인광고를 통하여 나머지 라인업을 완성하고 밴드로서의 구색을 갖춘다. 리더는 연상과 장여지가 맡고 있고[2], 2005년에 가입한 박준수와 2007년에 가입한 정영상도 확실한 레귤러로 굳어진 상태. 그러나 유독 세컨드기타와 드럼 파트는 부침이 매우 심하다. 2011년 이후 4년 간 활동을 중단했던 가장 큰 이유도 이 두 파트의 결원 탓.

크레센츠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3]와 그에 걸맞는 참신한 재능을 갖추고 있었고, 때마침 그때 한국 인디메틀씬에는 새로운 밴드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4] 그런 데다 그들이 처음으로 대관공연을 했던 클럽 WASP의 오너 서준희는 자신의 레이블을 새로 창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여건들이 잘 맞아떨어져 크레센츠는 아마추어 기간을 거의 거치지 않고, 대관공연 1회 만에 서준희에게 컨택되어 오디션 없이 레이블[5]과 계약하는 행운을 거머쥔다.[6]

2005년에 데뷔앨범 "Neo Metalnesque"를, 2006년에 2집 "Flowergrave"를 연이어 발표하여 인디씬에 빠르게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2009년에는 방향성 차이로 WASP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한 후 맥시싱글 "The Rising"을 발매하였고, 2010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Asia Metal Festival 2010"에 1집 수록곡 중 'Believe in Death'의 리마스터링 버전을 수록하였고, 같은 해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History of Revolution"에는 3집의 미리보기 격인 신곡 'The Lost'를 수록하였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멜로딕데쓰메틀 밴드였고, 그중에서도 더욱 보기 드문 북유럽 메이저스타일의 트렌디한 메틀밴드였던 데다가, 앨범들이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던 터라 많은 매니아들이 3집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던 3집 떡밥은 잦은 멤버교체, 레이블 문제, 재정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꼬이면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고, 2010년 말에 드러머가 탈퇴하면서 밴드는 활동 중단에 들어간다. 새 멤버 영입, 재충전 및 재정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는데, 공백이 길어져 4년 간을 사실상 해체상태나 다름없이 지내다 2014년 말에 새 라인업으로 컴백공연을 가지며 공식으로 복귀했다. 이제 3집 나오는 거죠?

2.1. Neo Metalnesqu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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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eezing
2. The Overture of Crescent
3. Priest[7]
4. Curze
5. Blackhearted Butterfly
6. Last Judgement Day
7. Under The Crescent
8. Believe in Death
9. Ebbing Away
10. Raven, Tears The Dove
11. A Precipice

2005년 9월에 WASP 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되었다. 9월 11일에 클럽 WASP에서 열린 데뷔앨범 런칭파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하루 만에 클럽 내에서만 120장이 넘는 앨범 세일즈에 성공했다.

상당히 복잡한 특징을 가진 앨범. 녹음 당시, 곡을 주로 쓰던 보컬 연상과 기타 손경호[8]의 불화가 심했다. 연상은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을 담기를 원했고 손경호는 좀 더 음악 자체를 심도있게 파고들고 싶어했는데, 좀처럼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무척 많이 싸웠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크레센츠를 크게 밀어주고 있던 레이블 오너 서준희 또한 이 때는 자신 휘하 밴드가 발매하는 첫 앨범이니만큼, 프로듀서로서 앨범에 적지 않은 관여(혹은 간섭)를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리드기타가 마인드 문제 및 견해 차이로 녹음 중간에 해고당했을 정도로 극심한 내부불화 속에서 어렵게 제작된 앨범.

확실한 주도권을 쥐는 사람 없이 많은 입김이 뒤섞여 녹음된 1집은 결과적으로 블랙메틀, 파워메틀, 멜로딕데쓰메틀, 고딕메틀 등의 느낌이 복잡하게 뒤섞여 굉장히 애매한 결과물이 되어버렸는데,[9] 천만뜻밖에도 이게 먹혔다.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넣기 힘든 애매한 스타일이 오히려 넓은 매니아층을 끌어들이는 신선함으로 다가갔던 것. 새로운 밴드의 등장에 한껏 목말라있던 한국 익스트림매니아들은 크레센츠를 "한국에서 나온 밴드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크레센츠의 멤버 중 한 명이 모 음악잡지 기자와 개인적인 알력이 있는 상태였고, 때문에 미디어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크레센츠는 언론 버프 없이 공연과 입소문만으로 이러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

이들은 기존의 다소 칙칙했던 한국 인디메틀밴드들과는 달리 감각적인 비주얼에도 많이 신경을 썼고, 음악에 독창적인 감수성이 담겨있었던 데다가 팬들에게도 쓸데없이 무게잡지 않고 매우 친절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신규 팬들과 고쓰로리여자 팬들을 많이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반면, 브루털함을 좋아하는 정통 익스트림 매니아들에게는 "이 앨범을 사느니 치킨이나 한 마리 사먹겠다"라는 혹평을 받고 게이 메틀이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심하게 까였다.

이외에도 이 앨범에는 또 하나의 큰 의의가 있는데, 크레센츠는 이 앨범을 통해 독일의 유명 익스트림 전문 레이블 '뉴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에서 한국 밴드로서는 최초로 컨택을 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3~4개월 간의 현지 투어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체류비용을 지원해주고, 앨범을 자사에서 라이센스 발매하여 수익을 분배하겠다는 좋은 조건이었는데, 1집 발매 당시에는 아무래도 서로 간의 유대감이 그렇게 깊지 않았기에, 장기간 한국에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에 쉽사리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기타 손경호의 군입대가 코앞에 닥쳐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앨범은 유통사인 DnC뮤직이 금방 도산해버리는 바람에 매우 희귀해졌다. 키보드 장여지의 말에 의하면, 심지어 새 멤버가 들어와도 앨범이 없어서 주지 못한다고.

2.2. Flowergrave (2006)

파일:external/image.maniadb.com/169710_1_f.jpg
1. Deflowered
2. Bitter Metallic Symphony
3. Chasse Aux Sorcieres
4. Break of Die
5. Inferno of Love
6. Zenith
7. R.I.P. (Rest in Pain)
8. Ride of Valkyries
9. The End of My Road

2006년 12월에 WASP 엔터테인먼트와 DOPE 엔터테인먼트의 합작으로 발매. 문화관광부의 출자[10]를 받아내어, 자비로 제작한 1집보다 훨씬 쾌적환 환경에서 제작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조기절판된 1집과는 달리 DOPE 엔터테인먼트의 자체 유통망을 통하여 발매했기 때문에, 이 2집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구입이 가능하다.

1집 발매 직후 기타 손경호가 탈퇴했고, 크레센츠의 팬이었던 박준수가 새 기타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밴드의 실권을 보컬 연상이 장악하게 된다. 여러 스타일이 섞여 있었던 1집과 비교하면 확실히 하나의 스타일로 통일된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는 앨범. 전체적으로 1집보다 직선적인 멜로딕데쓰메틀이 담겨 있다. 신규 팬들도 많이 늘었지만, 1집의 독특한 감수성이 거의 사라지는 바람에 잃은 팬들도 많다.

사실 이 앨범을 끝으로 크레센츠는 무기한 활동중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앨범이 2006년 12월 초에 발매되었는데, 메인 송라이터인 연상이 12월 20일에 군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때문에 12월 18일에 열린 앨범발매 기념공연은 자연스럽게 크레센츠의 고별공연 비슷한 무대가 되어 버렸고, 여러 사정으로 더 이상 군입대를 미룰 수 없었던 연상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아무 활동도 못하고 논산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현역으로 입대한 연상이 훈련소에서 신장체중 사유로 귀가조치를 받고, 재신검에서 결국 4급을 받게 된 것.[11]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인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 연상은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을 다시 하나씩 불러모으고, 모자라는 인원은 구인광고로 충당하여 다시 크레센츠를 일으켜세운다. 이때 베이스 정영상이 가입하여 지금까지 교체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 와중에 상당한 공백기가 있었던지라, 앨범은 2006년에 나왔지만 본격적인 2집 활동은 2007년 말이 되어서야 시작하게 된다.

2집은 상업적으로 1집보다 더욱 성공했는데, 한참 늦은 2007년 말부터이긴 했지만 멤버들이 부침 없이 안정적으로 장기간 활동할 수 있었고,[12] 수록곡 중 임요환 헌정곡인 'Ride of Valkyries'가 한 팬이 제작한 UCC를 통해 스타리그 매니아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어린 남자 팬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13]

10~20대 메틀키드들에게는 단순호쾌한 스타일이 크게 어필하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깊이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다양성이 사라진 2집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원래 크레센츠를 까던 사람들은 논할 가치도 없는 워너비 셀아웃 아이돌이라고 그들을 폄하했고, 1집을 좋아하던 매니아들도 상당수 등을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신규 팬들을 많이 영입했고, 결과적으로 인디 메틀공연 관람객들의 평균 연령대를 많이 낮추는 데에도 성공했으니 밴드 측으로서는 손해볼 것 없는 기회비용을 지출한 셈.

2.3. The Risin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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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ppetite for Rebirth
2. Dead Moon Rising
3. Dead Sun Rising

2009년 7월, 아시아 메틀 페스티벌 2009 섬머스페셜의 팬카페 예매 특전으로 무료 배포한 맥시싱글. 신곡 3곡이 수록되었으며, 애초에 팬서비스 목적으로 극소량만 제작되었기에 시중에서의 구매는 불가능하다. 중고 매물이 뜨면 그쪽을 노려보자. 수록곡들은 2집보다 더욱 뚜렷하게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이다.[14] 라이브에서 흥을 돋우기 좋은 구조라 그런지 레귤러 앨범 수록곡이 아닌데도 라이브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있다.

이때를 기준으로 크레센츠는 WASP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하고,[15] 본격적인 3집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2.4. History of Revolutio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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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의 Ride of Valkyries가 히트했을 때부터 이 컴필레이션이 발매될 때까지가 크레센츠의 리즈시절. 한국 인디 메틀밴드들의 신곡 혹은 미공개곡들이 실린 컴필레이션 앨범이며, 크레센츠도 3집 앨범의 프리뷰 격으로 'The Lost'를 선녹음하여 삽입한다. 완급조절이 분명하고 밀도있는 구성과, 여전히 죽지 않은 수려한 멜로디로 레이블 관계자들에게 "이 컴필레이션의 존재가치는 크레센츠가 참여한 마지막 트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큰 호평을 들었다.

2.5. 활동중단 (2011 ~ 2014)

2010년 중순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등으로 인해 3집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던 2010년 12월 말, 갑작스러운 드러머 탈퇴로 인해 돌연 활동중단을 선언한다. 밴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3집 앨범 수록곡 녹음 준비도 거의 끝나가던 때라 나머지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 하필이면 이때 좀 더 여건이 좋은 새 레이블과의 계약이 매우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녹음실 일정 잡고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정도의 단계였던 듯. 멤버 하나 바뀌는 거야 일상다반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백방으로 새 드러머를 구해봤으나 이번에는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끌리는 와중에 멤버들 개개인의 생업에도 여러 변화가 생겨 장기간 활동중단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메틀 공연장에서 멤버들의 모습을 아예 볼 수 없었으나, 2012년 경부터 베이스 정영상이 '임페리얼 도미네이션(약칭 '임도')'이라는 프로젝트밴드로 활동을 재개했고, 연상과 장여지도 임도가 출연하는 클럽공연에 자주 얼굴을 내비추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1월 리더 연상은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밴드의 새 드러머를 구한다는 홍보물을 올리고 있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드러머를 구하는 것으로 보아 활동 재개를 하려는 듯.

2014년 5월 7일 베이시스트가 활동을 재개한다는 글을 올렸다! 링크 3년만에 다시 합주를 하고 다시 활동을 한다고 한다!

2014년 7월 27일, 보컬과 베이스의 페이스북에 각각 Dead Moon Rising과 Ride of Valkyries깨알같이 발랄한합주동영상이 떴다. 전성기 멤버들로 다시 뭉쳐 맹연습 중이라고 한다!

2.6. 47개월 만의 재결합 (2014 ~ 현재)

2014년 11월 1일, 홍대 디딤홀에서 47개월 만의 컴백공연을 가지며 공식적인 복귀를 선언했다. 빨리 3집 좀 내주세요

3. 특징

메탈 특유의 폐쇄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요소들이 많은 메탈밴드. 그들 역시 그런 점을 지향하고 있다. 감각적인 멜로디를 강조한다든가, 대부분의 타 국내 메탈 밴드들과는 달리 메탈 특유의 마초적인 이미지가 덜하고 비주얼에도 조금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제대로 비주얼 록을 표방하는 밴드들에 비하면 꽤나 가벼운 수준이다. 그나마도 2집 발표 이후에는 남자 멤버들은 비비크림에 아이라인만 그리고 나오는 수준.

이러한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요소' 때문인지 일부 골수 메탈 리스너들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근데 메탈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괜찮게 보고 있다.[16]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은 편이라 표 동원력도 높은 편이다. 다만 홍대에 공연 보러 놀러오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

이들은 라우드계 비주얼 록의 사운드에서 약간 영향을 받은 멜로딕 데스 메탈 사운드를 내고 있으며, 한때 멜데스의 본좌격이었던 인 플레임스의 영향도 받았으나, 보컬 연상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Cradle of Filth큰애들옷필수다(...). 일본 메탈 밴드인 블러드 스테인 차일드와 비교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1집과 2집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밴드가 지향하는 노선이 2집에 이르러서야 멜로딕데스메탈로 확실히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1집을 라이브의 흥을 살릴 수 있는 곡들이 아니라 애로사항이 꽃피었다는 것 같다. 2집에 와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2집 수록곡인 Break or die에서는 메틀코어적인 느낌까지 느껴질 정도. 본인들도 더욱더 실전적인 음악을 원하고 있다.그게 대세니깐

4. 여담



[1] 이쪽은 마릴린 맨슨 카피밴드로 출발했다고 한다. 밴드를 시작하게 된 것도 마릴린맨슨 팬클럽 정모가 계기였다고. [2] 공식적인 리더는 연상이지만, 장여지를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한다고 한다. [3] 2004년 기준 평균 연령 22세. 그러나 지금은 어느덧 다들 30대가 되었다... [4] 사실 신인밴드 기근현상은 2012년인 지금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2004년 당시보다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밴드 하나가 새로 등장해서 홍대 클럽에 레귤러로 자리잡기는 정말 어렵다. 클럽 오디션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아마추어로 출발해서 클럽 오디션을 노리는 단계까지 깨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리고 어찌어찌 오디션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각자 다른 직업을 하나씩 베이스로 반드시 깔아야만 하는 한국 인디밴드맨들의 특성상 서로서로 시간 맞춰서 꾸준히 합주하고, 클럽과 레이블의 요구에 맞춰서 스케줄 소화하고, 매 공연마다 흥행 신경쓰고, 틈틈이 앨범 준비까지 다 해내면서 결국 자신들의 밴드네임이 박힌 앨범을 한 장이라도 내는 단계까지 성공하는 밴드는 100팀 중 1팀 나오면 많은 거다. 농담이 아니다! [5] 그래서 크레센츠는 서준희가 창립한 WASP 엔터테인먼트의 첫 계약 밴드가 되었다. 나중에 WASP 엔터테인먼트에는 비단 메틀에 한정되지 않고 은근히 다양한 장르의 밴드들이 합류했다. 2014년 현재는 다운 인 어 홀, 바크하우스, 사일런트 아이 등이 WASP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다. [6] 연상과 장여지 둘 다 나이는 어렸지만(당시 22세), 사비 털어서 공연해야 하는 아마추어밴드 생활을 오래 했다. 그래서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눈에 불을 켜고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한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열악한 연습실에서 달아오른 앰프에 손을 녹여 가며 거의 매일같이 곡을 쓰고 합주했다고. [7] 형민우 프리스트를 모티브로 한 곡 [8] 1집을 끝으로 크레센츠 탈퇴 후, 군입대를 거쳐 지금은 'Dark Mirror ov Tragedy'라는 블랙메틀밴드와 '피해의식'이라는 글램메틀밴드에서 활동 중. [9] 이때 밴드 측에서 고육지책으로 뽑아든 홍보문구가 무정형 익스트림메틀밴드. [10] 인디레이블 컨텐츠 육성지원사업 프로젝트. 지금은 폐지되었다. [11] 남자인데 몸무게가 30kg대 중후반이라고 한다. 흠많무... 본인 말로는 평생 쓸 운의 절반을 이때 다 쓴 것 같다고. [12] 우연히도 멤버 6명 중 3명이 공익근무요원이었다. 본격 공익밴드 [13] Ride of Valkyries는 회원수 몇십만에 달하는 임요환 팬카페의 메인 BGM으로 한동안 쓰일 정도였다. 아무리 대중적이라고 해도 이 곡은 엄연한 메틀이다!! [14] 단, 자체제작 앨범이니만큼 음질은 크게 기대하지 말 것. [15] 이때 WASP 소속 밴드들 중 익스트림밴드는 크레센츠 1팀뿐이었다. 따라서 레이블 주관 기획공연 등을 할 때마다 모던/펑크/얼터너티브 밴드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위화감을 느껴야 했고, 어울리지 않는 무대에 계속 서느니 과감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쪽을 택한 것. [16] 대부분 우리나라 리스너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대중성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메탈 뮤지션들 사이에서 높게 평가하는 밴드조차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17] 미트스핀이 거의 1년 동안 카페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18] 스테이지 난입과 마이크 뺏기를 즐겨한다는 듯. 최근 Heaven shall burn 내한공연 중 보컬의 마이크를 집어들고 대신 노래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악숭 운영진을 때려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