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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경험하게 하는 총회 (마태복음 28:19-20) |
약칭 | 예장대신 |
설립연도 | 1961년 |
소속국가 | 대한민국 |
총회장 | 강대석 목사 |
부총회장 | 정정인 목사, 용승복 장로 |
교인 수 | 60,888명( 문화체육관광부,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흥안대로 415, 502호 ( 평촌동) |
[clearfix]
1. 개요
1961년에 김치선 목사와 마두원 선교사가 설립한 교단이다. 명칭의 유래는 대한신학(大韓神學)의 줄임말인 대신(大神)이다. 김치선 목사의 대한신학교가 안양대학교로 발전하였다.1970년대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와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교단들보다 훨씬 보수적이며 학풍과 특징이 판이하기 때문에 통합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3개 교단 모두 보수주의 신학이라서 서로 비슷해보이지만 합동은 보수적인 성경해석을, 합신은 목사의 품위를, 대신은 목사의 사회참여를 특히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합동, 합신은 대신보다는 성경 해석, 타교파와의 교류, 문화에 대한 인식에 있어 더 개방적인 교단들이다.
현재는 여성목사 안수를 강하게 반대하는 목회자들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과의 통합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다만 예장 합신도 그랬듯이 신학교에 관한 견해 차이 때문에 통합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1]
2. 특징
대신 총회의 교회선언 참조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수호측
- 성서무오설[2]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성경을 대단히 중시하는 정통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한다. 교단 신학은 최순직 목사[3]와 설순 조석만 목사가 정립하였다.
- 장로회의 일원 중 하나이니 장로 정치 체제를 취한다.
- 기존의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분립 과정[4]과 상관없이 김치선 목사가 창설한 자생 교단이다. 다만 교단을 형성한 목사들이 통합과 합동 분열 이전 대한예수교장로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엄연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파생 교단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어차피 한국의 장로회 계파를 분류할 때 대신과 파생 교단들은 따로 대신 계열로 분류해야 한다.
- 고신에 버금갈 정도로 신학의 보수성이 강하다. 그러나 고신, 합신에 비해 행위적인 보수성은 떨어지는 편이다.[5] 설립과정에서 반WCC 교회연합체인 ICCC의 영향을 받았기에 합동보다도 보수성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합동 교단 목회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중인 WEA( 세계복음주의연맹)라는 전세계 교회 연합체에 대해서 친천주교, 친현대신학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6] 신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교단이다. 기장과 정확히 정반대 성향을 띄고 있다. 다만 신학적으로는 고신이 더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
보수적이지만 놀랍게도 천주교, 정교회, 현대신학과 매우 친밀한 에큐메니컬 지지 단체인 WCRC의 회원 교단이다.[7] - 김치선 목사가 별세하면서 1968년 ICCC에서 탈퇴하였다. 당시의 ICCC와 방향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ICCC가 교단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ICCC는 복음주의에 동의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종파들의 교회연합체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아닌 보수 기독교 종파가 다수 소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장대신은 에큐메니컬 진영은 아니지만 ICCC의 영향으로 비개신교 종파와의 신학적 대화가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ICCC의 정치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게, ICCC는 메카시즘 성향을 띄는 극우 단체이며, 현재에도 예장 대신 소속 목사들은 전반적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8] 후술할 사회참여적인 특성과 맞물려서 설교 시간에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 들을 수 있다.
- 교단 이름이 대한신학교에서 나왔듯이 예장대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애국적인 교회,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목사들도 더러 생겨서 목사들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정치적 관점이 다르지만 대체로 김치선 목사의 영향을 받아서 사회참여적이면서 애국적인 목사가 많다. 대한신학교도 김치선 목사의 이만팔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슬로건에 따라 농촌에 자립하면서 개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리고 김치선 목사가 김구와 친했기에 보수를 지지하는 목사가 많다. 교단 차원에서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지만 어차피 갑종소득세율로 납부한다. 사실 교단 차원에서도 현재 입장은 모호한 편이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종교인 과세 대신 갑종근로소득세율(일반적인 소득세)로 결의했으나 백석에서 종교인과세에 동의한 채로 복귀한 교회가 과반수를 넘기기 때문에 오히려 전반적으로 종교인 과세를 동의하는 교회가 많다.
- 한때 예장백석과 같은 뿌리였고 백석의 설립자 장종현 목사가 대한신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백석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신학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른 것을 비롯해서 신학적인 특성도 꽤 다르고[9]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아 결국 통합이 무산되고, 백석과 우호적이었던 목사들이 백석, 백석대신, 대신복원, 개혁대신으로 건너가버려 지금은 꽤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현재로써는 대신이나 백석이나 서로를 이혼한 전처로 바라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현재의 대신 소속 교회에서는 백석을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는게 좋다.
- 현재로써는 합동, 고신, 합신과 함께 여성목사를 안수하지 않는 교단이다. 그러나 백석대신과의 합동을 원하는 목회자들이 꾸준히 여성목사 안수 안건을 올리고 있다.[10]
3. 역사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당시 캐나다 교회는 서로 연합하게 되는데, 이 캐나다 연합교회에 합류하지 않은 잔류파 캐나다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Canada)에 소속된 보수 개혁주의 성향의 조선선교사 루터 영(한국명 영재형) 선교사에 의해 김치선 목사가 복음을 접하게 된다.[11]1948년 김치선 목사는 '장로회 야간 신학교'를 세운다. 장로회 야간 신학교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생업을 학업과 병행해야했기에 주간에 신학을 배울 수 없었던 신학생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이다.[12] 야간 신학으로 세워진 대한신학교는 당시 평양신학교(총신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대한예수교장로교 총회의 텃세에 밀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신총회 50년사>에는 “총회에서 강도사 고시를 볼 때나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할 때 대한신학교를 졸업한 후보생들을 일부러 떨어뜨렸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군사정부의 박정희는 김치선 목사가 설립한 남산의 대한신학교 땅을 강탈해 그 자리에 KBS TV 방송국, 중앙정보부 건물을 지었다. 게다가 당시의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대한신학교를 눈엣가시로 여겼기에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학교 부지를 강탈당한 김치선 목사는 난감해 하다가 반WCC 성향 단체인 ICCC(국제기독교연합)의 칼 맥킨타이어 총재를 만나 마두원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서 성경장로회를 창립한다는 조건으로 용산구 청파동에서 신학교 건물을 매입했다.[13] 야간신학교라는 이유로 무시받던 대한신학교 출신들이 결국 모여서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의 전신인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가 창설되었다.
그후 김치선 목사는 외국에서 선교비를 더는 받지 않고 자력으로 대한신학교 중흥의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돈’으로 대한신학교 건물을 세우려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은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 의해 ‘한국인의 힘’으로 설립된 자생 교단이다.
1969년 6월 17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성장)으로 이름을 변경했고 1972년 4월 6~7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8년 안양시 석수동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세우고 그 옆에 총회관을 세웠으나, 추후 예장 대신석수가 분립하면서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와 총회관을 잃어버렸었다.
2011년 집계에 따르면 노회 43개, 교회 2,200개, 목사 2,500명, 성도 300,000명, 대학 2개 및 미인가 신학교 1개가 있었다.
2006년 경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측과 통합한다는 떡밥이 계속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통합에 찬성하는 대신 측 목사들이 백석으로 건너가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예장대신 소속 목사에게 문의해보니 정치로 비유하면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의 통합처럼 잡음이 심했다고 한다. 예장 대신이 예장 대신(통합측)[14], 예장 대신(수호측)[15], 예장 대신(석수측)[16]로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2017년 6월 16일 제50회 총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2015가합104232)에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은 "대신 총회 교단이 해산과 타 교단의 통합을 진행하려면 교회 수의를 거친 후 회원 교회 3/4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기에 통합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따라 합병한 교단은 '대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백석 측에 가입한 대신(통합) 측 교회들은 모두 예장 백석대신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예장 백석대신은 구 백석계와 구 대신계의 갈등으로 예장백석으로 환원하였으며, 본 과정에서 대신(통합)측은 백석계 일부와 연합하여 2019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을 세우게 되었다. 그 외 교회들은 예장 대신으로 복귀하거나 예장백석에 융합하고 있다. 통합을 주도했던 전광훈 목사는 백석에 소속되어 있다가 이단 옹호 등의 행위로 면직 처분을 당하였으며, 이에 불복하여 대신복원 교단을 세웠다.
그리고 대신복원도 전광훈 목사의 논란과 막장 행정 때문에 대부분이 이탈하여 대신호서 교단이 생겼다. 그리고 대신호서는 예장 개혁 종로측과 합동하여 개혁대신이 되었다.
4. 노회 목록
안양대학교가 줄곧 수도권에 캠퍼스를 두고 있었던 영향인지, 수도권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분열 이전에도 교세가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17] 이외에도 마두원 선교사의 영향으로 강원도 홍천군에서 강세를 보인다. 물론 지방에 교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안양대학교의 동아리인 낙도선교회에서 방학마다 산골과 섬에 있는 예장대신의 미자립교회를 돕는다.- 수도권
- 강남노회
- 경기노회
- 경기남노회
- 경기북노회
- 경인노회
- 경인중앙노회
- 광명노회
- 남서울노회
- 남서울노회A
- 부천노회
- 서경노회
- 서북노회
- 서울노회
- 서울동노회
- 서울북노회
- 서울서노회
- 서울중앙노회
- 서중노회
- 서평노회
- 수도노회
- 수도북노회
- 수원노회
- 안양노회
- 인천노회
- 인천중앙노회
- 한남노회
- 한북노회
- 한서노회
- 강원권
- 강원노회
- 충청권
- 경충노회
- 중부노회
- 충남노회
- 충북남노회
- 충북동노회
- 충청노회
- 영남권
- 경남노회
- 경동노회
- 경북노회
- 경서노회
- 경안노회
- 경울노회
- 동남노회
- 부산노회
- 호남권
- 동서노회
- 전남노회
- 호남노회
- 제주권
- 제주노회
- 해외
- 남가주노회
- 대뉴욕노회
- 미주노회
- 미주남부노회
- 워싱턴DC노회
5. 교육기관
대신대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에 소속된 학교다. 비슷한 명칭으로 인해 헷갈리지 말자.- 안양대학교(인준) - 인준은 안양대학교가 예장대신 소속 신학교는 아니지만, 안양대학교가 예장대신의 외부 위탁 교육기관으로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김세창 총회장이 김영실 장로에게 대한신학교를 매각해서 이렇게 되었다. 김영실의 대한신학교 인수는 안양대학교가 개신교계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19년에 안양대의 운영권을 가진 우일학원이 대진성주회에게 학교를 매각을 시도해서 난리가 났었었다. 한편 안양대 신학연구소가 대한민국 정부의 인문학 진흥 사업인 HK+(인문한국플러스)에 선정되어 약 100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안양대학교/학부/신학대학, 안양대학교/대학원/대신신학대학원 문서 참조.
-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본래 대신에서 학교 교사를 세우기 위해 계획한 캠퍼스였지만 석수측이 대신을 탈퇴할 때 대신과 합의없이 자신들의 학교인 것처럼 사용하기 시작해서 대신석수의 신학교가 되었다. -
대신총회신학교(미인가)- 폐교. 예장백석하고 통합 떡밥이 돌 때 학부는 백석대학교로, 대학원은 안양대학교로 합쳐지며 백석대와 안양대와는 일절 합의없이 폐교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재학중인 학생들은 학교의 통합이나 폐교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학부생들은 당시 총회장을 찾아가 엄포를 놓았다가 백석에서 겨우 등록금에 대한 장학금을 지급받았고 대학원 학생들은 안양대학교와 일절 합의없이 보내져 그야말로 더부살이로 남은 학기를 채웠다고 하는데 이런 와중에도 안양대학교에서는 어떠한 합의관계(학생들을 대학원 강의실에 포함시킬 것인지 평생 교육원을 만들어 따로 수업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가 없었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이 교단의 통합되는 가운데 일어난 갈등 중에서 대신총회신학교에 재학중이던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 대신총회신학연구원 - 교회예산 1%운동을 통해 수원여자대학교 인근에 캠퍼스가 생겼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더이상 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기에 정식 신학대학 승격은 일단 무산된 상태.
- 대신바이블칼리지
- 대신부산신학연구
- 대신영남신학연구원
- 대신목회대학원
- 대신장로교육원
- 미주대한신학대학 - 남가주노회에 소속하고 있는 미국에 위치한 신학교이다.
6. 파생교단
분립한 순서대로 서술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정통대신) : 1980년대 당시 대신 총회장이었던 김세창 목사가 대한신학교를 안양으로 옮기면서 김영실 장로에게 넘겨버려 대신 교단에서 축출당하자 자신을 지지하는 교회들과 독립해 나가 세운 군소 교단. 전국에 여러 개의 대한신학교를 세웠으나 현재는 대구와 포항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상당수 목회자들이 대신으로 꾸준히 이동하는 바람에 교세가 커지지 않고 있다. 대신개혁에서 정통대신으로 이름을 바꿨다.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석수) : 1996년 황만재 목사가 대신측 교회들의 헌금으로 세워진 대한신학대학원을 이어오다가 다시 교단간의 갈등으로 인해 황만재 목사의 아들 황원찬 목사를 필두로 석수파가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놓고 총회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백석과의 통합 논의가 이루어질 때 분립한 군소 교단이다.
-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 : 백석과 통합을 시도했던 통합 찬성파 측이 백석과의 분열 이후 세운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복원) : 전광훈을 지지하는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대신)[18] : 전광훈을 지지했던 목사들이 전광훈과 결별하여 분립한 대신호서가 예장 개혁 종로측과 합동한 교단. 안양대 출신과 호서대 출신이 주로 이뤘지만 상당수 교회가 백석대신으로 이동해버렸다. 예장 개혁 종로측과 합동한 후에는 총신대 출신도 많다. 호서대학교와 인준 관계를 맺고있다.
7. 여담
- 교단의 기관지로 한국교회신보를 두고있다.
- 한편 대신이라는 이름은 무속신앙도 자주 사용하고 있어서 비기독교인들이 예장대신이 무속신앙과 관련된 교단이 아닌지 지레짐작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는 안양대학교가 위치한 안양시에 점집이 많은 것도 한 몫한다. 물론 예장대신은 무속신앙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개신교 교단답게 매우 싫어한다.
- 간혹 이름 때문에 대신금융그룹을 산하로 두고 있는 돈 많은 부자 교단으로 오해받지만, 대신금융그룹과 전혀 관련 없다.
[1]
예장 고신은 2023년 계신대를 폐교할 정도로 고신대를 중심으로한 신학교 일원화 정책을 피고 있기에, 대신의 안양대와의 신학교 인준관계와 미인가 신학교들을 고신측이 썩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높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 크게 가깝다. 유기적 영감설을 지지하며 단순하게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3]
예장 대신이 배출한 첫번째 선교사이다. 김치선 목사의 둘째 사위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4]
고신과 기장과 통합과 합동과 합신을 비롯한 굵직한 교단들이 신사참배와 성서비평학과 WCC 문제 등으로 서로 떨어져 나온 과정
[5]
낙태,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그 외에 다른 행위적인 것들은 상식적인 수준까지 허용한다는 뜻. 다만 목사에게 주어지는 패널티는 다른 보수 교단과 비슷한 편이다.
[6]
게다가 합동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목사들도 많은 것에 비해 대신은 정치적으로도 보수를 지지하는 목사들이 전반적으로 많다.
[7]
현재는 WCRC 회원 교단 목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탈퇴한 것으로 보인다. 상세 내용은
WCRC 문서 '회원 교단' 문단 참조.
[8]
이를 김치선 목사와 친했던 김구의 영향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현대의 예장 대신은 친 김구 성향보다는 친 보수정당스러운 보수 빅텐트 성향이 강하다.
[9]
예장백석 교단은
에큐메니컬 운동,
WCC,
세계복음주의연맹 등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WCC 가입 교단들이 많이 활동하는
WCRC의 회원교단이다.
[10]
유럽의 보수 교단들이 그러했듯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목회자의 질적 저하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목사 안수는 필연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11]
한편 캐나다 연합교회에 짙은 영향을 받은 교단이 바로 기장이다.
[12]
그래서 대한신학교의 후신인 안양대학교에서는 현재도 야간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있다.
[13]
현 청파중앙교회 자리. 대한신학교가
경기도
안양시로 이전한지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청파중앙교회는 기존 대한신학교 교사를
리모델링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14]
예장백석과 결합을 지지한 교회들.
[15]
예장 백석과의 통합 절차가 예장 대신의 교단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통합 절차에 불응하고 기존 대신 교단 잔류를 선택한 교회들.
[16]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석수파
[17]
이때문인지 충청권의 교회들은 주로 백석으로 건너가거나 백석대신으로 건너갔다.
[18]
홈페이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문서의 6번째 링크이다.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교회연합의 회원 교단으로 한교총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대신)', 한교연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총회'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