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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8:03

대전쟁(RW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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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Great War. RWBY의 역사적 사건. 네 왕국이 벌인 아주 큰 전쟁.

2. 상세

오래 전 네 왕국은 '대전쟁(Great War)'이라 불리는 아주 큰 전쟁을 벌였으며, 사실상 각 왕국의 이기주의가 발단이 되어 시작된 이 전쟁은 근 10년간 지속되며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크로우 브런웬의 언급에 따르면 네 왕국은 전쟁이 지속되기 이전부터 이미 서로 영토 확장이나 정서 충돌 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 때문에 대립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의 말마따나 따지고 보면 전쟁은 꽤나 오래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바이탈 페스티벌이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고 횟수가 40번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쟁은 작중 시점으로부터 대략 80년 전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맨틀 왕국이었다. 당시 미스트랄 왕국은 아틀라스 왕국의 전신이 되는 맨틀 왕국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네 왕국 중 가장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맨틀 왕국에서 벌어진 한 사건[1] 때문에 맨틀 정부는 국민들의 예술 활동과 같은 창조적 활동을 금지시키고 감정 표현을 억압하는 매우 극단적인 정치를 펼치게 되었다. 맨틀은 교우 관계인 미스트랄에게도 이러한 정책을 강요했으며, 예술을 사랑하는 미스트랄의 특성상 국민들은 두 나라의 교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미스트랄은 억압 정책을 받아들였고, 주요 기득권 세력이 많이 모여있는 대륙 중앙의 주요 도시들을 정책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억압 정책이 실현된 도시는 상대적으로 권한이 강하지 못한 외곽 도시들에 한정되었다. 이 사건은 다른 두 왕국과 많은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사람들에 의해 자유의 상징으로 컬러 네이밍 룰이라는 전통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스트랄 왕국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영토를 무리하게 확장시켜 나갔고, 마침내 바다 건너 사누스 대륙에 도달하여 똑같이 영토를 확장해나가던 베일 왕국의 정착민 집단과 부딪히게 된다. 베일의 국왕은 국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무력 분쟁을 최대한 피하려 했으나, 결국 두 진영은 전투를 벌이게 되고 이 싸움은 대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맨틀 왕국은 재빨리 군대를 보내 미스트랄 군에 합류했고, 곧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이 결성된다. 이 무렵 전쟁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애를 쓰던 바큐오 왕국은 맨틀과 미스트랄 양쪽으로부터 전쟁에 끼어들지 말라는 협박에 가까운 권유를 받고 있었다. 점차 이 권유는 그들의 편에 서라는 권유로 바뀌어갔지만 바큐오 왕국은 그러한 협박에 신경쓰는 대신 베일 왕국이 무너지면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의 다음 표적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자신들의 영토에서 맨틀과 미스트랄의 세력을 몰아내고 베일 왕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베일-바큐오 연합군과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으로 나뉜 전쟁은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었고, 대륙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생겨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대규모의 그림 군단이 발생, 그들을 물리치고 다시 전투에 돌입하면 또다시 그림 군단이 발생하는 식의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각 나라의 군대가 전투를 벌이는 동안 고통받는 것은 애먼 민간인들과 마을들이었고, 그림들로 인해 파괴된 영토의 대부분은 전쟁이 끝난 현 시점에서도 되찾지 못할 정도였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은 전쟁으로 인해 크게 감소한 더스트 생산량을 보충할 겸 적군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바큐오의 더스트 광산을 탈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간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참다못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선 베일의 국왕이었다.

베일의 국왕은 칼 한 자루와 홀 하나만 가지고 직접 전투에 참여해 바큐오의 사막 지대에 익숙하지 않았던 미스트랄-맨틀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며, 이로 인해 몰려온 대량의 그림들마저 손수 격퇴하고 근 10년간 지속되었던 대전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전투가 끝난 후 세 나라의 국왕 모두가 베일 국왕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할 정도였으니 그 위용이 어떠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일의 국왕은 그 길로 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그 대신 베일 왕국 북쪽에 위치한 '바이털(Vytal)'이라 불리는 작은 섬에서 네 왕국의 평화 협정을 열었으며,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새로운 법률, 전통 등을 수립함과 동시에 영토 배분과 노예 제도 문제 등을 해결했으며, 정부 제도 또한 개편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헌터라는 직업과 헌터들을 교육시키는 훈련 기관의 개념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정립되었다고 전해진다.


[1] 이 사건이 무엇인지는 불명. 아마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여 대량의 그림들을 몰고 온 사건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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