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차골로프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Цаголов, 1904년 ~ 1985년)은 소련의 경제학자이다.2. 생애
1904년 현재의 북오세티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형인 게오르기 차골로프는 청년 볼셰비키로서 러시아 혁명 당시 오세티아의 볼셰비키 권력 수립에 참가해 러시아 내전 시기에도 오세티아 한 지방의 혁명군사위원회 의장을 맡았으나 해당 지역이 백군에게 함락되면서 처형당했다. 형의 요절은 차골로프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1924년 현재의 플레하노프 경제 대학, 당시의 모스크바 경제 연구소를 졸업했고 1926년 러시아 사회과학연구소 경제연구소 대학원 과정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이후 보로네시 주립대학교에서 불과 25살의 나이에 교수직에 취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로네시 계획(경제) 연구소의 정치경제학 학과장에 초빙되었다.
1932년 소련의 계획경제를 수립하고 총괄한 국가계획위원회 경제연구소의 과학 서기로 취임했다. 이후 1937년부터는 1960년까지 일하게 될 소련 과학 아카데미 경제 연구소에 취직했다. 이후 1939년에는 선임 연구원으로 승진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캅카스 지역에서 보내져 소련 재무인민위원회에 참가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 1947년부터는 배급제 철폐, 전쟁 기간 동안 막대하게 뿌려진 통화 공급량 조절 등을 목표로 화폐개혁에 참가했다. 얼마 후 1949년 박사 논문 <농민 개혁 시기 귀족과 부르주아의 경제 사상(Дворянская и буржуазная экономическая мысль в период „крестьянской реформы“)>을 발표했다.
1956년에는 <농노제 폐지 기간의 러시아 경제 사상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했고, 직후인 1957년 모스크바 국립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학과장을 사망 시까지 역임했다.
그는 학문적으로는 수리경제학파가 주도한 코시긴 개혁에 반대했으며 계획경제를 중시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생산관계' 개념을 발전시켜 사회주의 생산관계이론을 창시다. 그 결과 그의 학문체계는 반수리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아들인 게오르기 차골로프도 경제학자였고, 아내는 언어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