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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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 이름 |
뉼 이슈트반 Nyúl Istvá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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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등록명 | 이스트반 | |
출생 | 1961년 2월 25일 ([age(1961-02-25)]세) | |
영국 런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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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부다페스트 혼베드 FC (1981~1982) 라코스팔로타이 EAC (1984) 버셔시 SC (1985~1988) 두너우이바로시 FC (1988~1989) 버셔시 SC (1989~1990) 럭키금성 황소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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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뉼 이슈트반 (Nyúl István)은 1990년 럭키금성 황소에서 이스트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공격수이다.2. K리그 이전
1981년부터 자국 헝가리에서 선수로 데뷔해 1985년부터 헝가리 리그 중위권 팀인 버셔시 SC(Vasas SC)에서 활동하였으며, 잠시 두너우이바로시 FC(Dunaújváros FC)으로 이적했다가 버셔시로 돌아와 1989/90시즌을 보냈다고 한다.3. 럭키금성 시절
1990년 2월, 동구권 붕괴로 시작된 외국인 선수 영입 붐을 통해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에 입단했다. 1990년 2월, 버셔시 소속 유망주 2명과 함께 방한하였고 테스트 끝에 합격점을 받아 4월 1일 정식 선수로 등록되으며, 2년 계약에 2만 달러 상당의 이적료와 월봉 2천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고재욱 감독은 187cm나 되는 장신에 팀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는 이스트반에 대해 큰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K리그 스타일에 적응하는데만 2달이 넘게 걸리면서 속을 태웠다고.. 그나마 윤상철과 대우에서 건너온 최대식이 이스트반을 대신해 제몫을 다했기 때문에 이스트반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이후 1990년 7월,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성공시켜 부진을 만회하는 듯 했지만, 이 경기는 1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다가 패배한 경기라 이스트반의 골이 빛을 보질 못했고, 결국 7월 22일 유공 코끼리와 경기를 끝으로 더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하였다. 이후 2년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한 채 1년 만에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움직임은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경기력에 있어서도 최악을 달리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포스트 플레이에 대한 이해는 좋았다는 것이 당시 스포츠 기자들의 평가. 그러나 고재욱 감독의 축구 스타일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스트라이커로써 가장 중요한 득점을 터트리지 못했던 점, 상당한 몸값이 문제가 되었다.5. 에피소드
-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1980년대 피아퐁의 성공 이후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9년 유공 코끼리 축구단이 테드를 영입해 쏠쏠한 활약을 보인 것과 1990년 동구권 개방으로 모기업 럭키금성 그룹의 동구권 진출의 일환 등 복합적인 사유로 겸사겸사 이스트반의 영입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 헝가리 국적 1호 K리그 진출 선수이다.
- 이스트반과 함께 럭키금성에 입단한 요셉[1]이라는 선수도 있었다. 계약 조건과 월봉도 이스트반과 같은 조건이었으나 요셉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록조차 못하였다. 정확한 사유는 불분명하나, 대부분 연습 경기에 출전하는 연습생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기량 미달이 원인이었던듯. 이스트반이 서울 광진구 광장동 소재의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 요셉은 숙소 생활을 했었다고 하며, 이 두 선수 이외에도 당시 기사들을 통해 언급되는 외국인 선수가 더 있었으나, 모두 테스트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