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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3-18 15:40:41

노인 헌화가


1. 서정주의 시

1. 서정주의 시

신라 향가 헌화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이다.
노인헌화가老人獻花歌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
문득 그의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 보고
한바탕 건네인 수작이다.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밖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었다.

기마騎馬의 남편과 동행자 틈에
여인네도 말을 타고 있었다.

"아이그머니나 꽃도 좋아라,
그것 나 조끔만 가져봤으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말 위에 갸우뚱 여인네의 하는 말을
남편은 숙맥인 양 듣기만 하고
동행자들은 또 그냥 귓전으로 흘려보내고
오히려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동냥하고
도맡아서 건네는 수작이었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꽃은 벼랑 위에 있거늘,
그 높이마저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여간한 높낮아도
다아 잊어버렸었다.

한없이
맑은
공기空氣가
요샛말로 하면- 그 공기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
한없이 친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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