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노성원(魯成元) |
생몰 | 1897년 ~ 1964년 1월 15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 인암리 |
사망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
추서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노성원은 1897년 3월 14일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 인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1년경 신성학교에 재학하던 중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무죄로 방면되었다. 이후 1919년 8월부터 10월 사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이동휘와 연락해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린성의 유통화폐 2백만원을 위조할 계획을 세우고 박행원(朴幸源) 등과 함께 서울 종로 6가에서 52,500매의 화폐를 인쇄했다가 체포되었지만 1920년 4월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되었다.1921년부터는 고향에서 신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고, 1927년 6월 10일에는 이황(李晃)·이병헌(李炳憲) 등과 함께 신간회 서울지회 서기에 임명되었다. 이후 1929년에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 만주 안동현으로 피신하였고 이후로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8.15 광복 후 노량진에 정착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해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 정착하여 7년 정도 살았다. 이후 노량진으로 돌아와서 말년을 조용히 보내다가 1964년 1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노성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