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노상열(盧尙烈) |
이명 | 노명준(盧明俊), 노일석(盧一石) 노상열(盧尙烈), 신백순(申白淳) |
생몰 | 1897년 8월 23일 ~ ? |
출생지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상광정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노상열은 1897년 8월 23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상광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1년 6월 중국 지린성 훈춘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1923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한 뒤 1925년 12월에 귀국하여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6년 1월 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한 후 3월 조선일보 광주지국 기자를 지내면서 고려공산청년회 전남 도(道)집행위원으로 당원 모집 및 조직 결성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그해 6월 일본 경찰에 수배되어 가택 수색을 당했지만 가까스로 피신할 수 있었고, 8월에 고려공청 중앙총국과 고려공산청년동맹 중아위원회 합동위원회에 참석하여 고려공청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927년 3월에 체포되었고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노상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