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10:09:48

나가사카 슈케이

1. 개요2. 경력3. 특징4. 대표작5. 기타

1. 개요

長坂秀佳
일본의 각본가. 1941년 11월 3일 출생. ([age(1941-11-03)]세)

본명은 나가사카 히데카. 한자는 같다. 자신의 이름 한자를 슈케이로 잘못 읽는 사람이 많아서 슈케이를 필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 외에 다른 명의는 이즈모 고로(出雲五郎)가 있다.

2. 경력

아이치현 토요카와시 출신. 그래서 자신의 작품엔 토요카와 시가 자주 나온다고 한다.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해 대여점에 다니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하드보일드 영화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し)'를 보고 감명을 받아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며 무계획으로 상경. 영화 업계로 들어와 여러 잡일을 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집필한 각본 '말하는 개'가 NHK 콩쿨에 입선되어 각본가가 되었다. 그러나 각본가가 된 직후에는 고졸 학력이라는 이유로 각본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어린이 특촬물 각본을 쓰게 된다. [1]

나가사카는 인조인간 키카이더 때 메인 각본가 이가미 마사루 이시노모리 쇼타로 선생님이 좋은 설정을 줬는데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졌으며 이가미가 가면라이더 V3를 집필하러 간 사이에 자신이 메인 각본가를 하기로 하고 작품을 어린이용 특촬물에서 히어로의 고뇌와 하드보일드로 가득한 드라마로 뜯어고친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좋은 평을 받았고 나가사카 슈케이는 특촬물 각본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특촬물과 드라마 각본을 번갈아 집필하다 쾌걸 즈밧토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버렸다며 TV 드라마 각본가로 전직했다. [2] 그리고 형사 드라마 시리즈 특수 최전선의 각본을 집필해 인기를 얻었다. 이후 주로 형사 드라마 각본을 썼다.

각본가로 자리를 잡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나가사카 슈케이는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3] 1980년대 후반에 소설로도 인정받고 싶다 생각해 소설을 집필했으며 추리 소설 '사쿠사 에노켄 일좌의 폭풍'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받아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1990년대에는 게임 시나리오에 도전해 최초의 사운드 노벨 제절초의 시나리오 라이터를 맡았다. 나가사카는 게임을 만들 때 "그 어디에도 없는 세계 최초의 게임을 만든다."를 항상 의식했다고 한다.

1999년에는 '투명소녀 에어'라는 드라마를 감독해 실사 연출에도 도전했으나 이 작품은 그렇게 흥행하지 못했고 글 쓰는 거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다시 드라마 각본으로 자리를 잡았다. 2020년 이후로 활동이 없다.

3. 특징

진지하고 충격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각본가이다. 나가사카는 어린이 특촬물 각본 시절 어린이용 작품인데도 하드보일드, 사회 풍자, 인간 비판, 삼각관계, 부모 자식의 갈등, 자아성찰 같은 온갖 진지한 소재를 넣어서 각본을 썼다. 사람이 죽을 때는 어린이도 가차없이 죽는다. 나가사카는 특촬물을 하던 시절 항상 방송국과 스폰서에게 "어린이들이 보는 작품인데 이렇게 진지한 걸 쓰면 어떡하냐?" 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어린이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다 이해할 수 있다." 라면서 이런 작풍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것도 애들이 보라고 자제한 것으로 성인 대상 드라마 각본을 할 때는 강간, 살인, 자살, 치정 같은 자극적인 소재도 과감히 사용했다.

나가사카의 특촬물은 고뇌하는 히어로를 주로 그려냈다. 사실 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액션신을 팍 줄여버리고 인간 드라마에 더 집중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지한 각본을 추구해서 나가사카의 특촬물은 어린이보다는 좀 나이대가 있는 고학년이나 청소년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후대에는 성인 특촬팬에게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나가사카가 메인라이터를 맡은 특촬물은 각본이 좋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한편으론 진지한 각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이 있던 것도 사실. 쾌걸 즈밧토는 어린이가 안 봐서 조기종영 되었다. 이런 점에서 나가사카의 작품은 성인용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진지한 글도 쓰지만 코미디 각본도 쓸 수 있다. 코미디를 쓸 때는 오히려 작품 분위기에서 완전 탈선해서 병맛까지 가버리기도 한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제대로 쓰지만 거기서 벗어난 부분은 휙휙 넘어가거나, 잘 설명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황당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딘가 좀 이상한 것이 재밌는 것이다."가 신조라 이치에 딱딱 맞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 일부러 이상한 부분을 넣어서 꺾어준다고 한다.[4] 이런 괴리감도 나가사카 각본의 특징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 자신의 작품은 항상 아버지와 자식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나마 꼭 들어간다고 한다. 해피 엔딩엔 2할의 슬픔을, 배드 엔딩엔 2할의 희망을 넣는다고 한다. 자신이 각본을 쓴 에피소드의 부제를 굉장히 고심해서 정한다고 한다. [5] 시한 폭탄으로 서스펜스를 내는 걸 좋아해서 '폭탄의 나가사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제자 아이카와 쇼에 따르면 나가사카 선생님은 자기 주장이 강해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맡으면 원작대로 절대 안 만드는 분이라며[6] 그래서 자신도 원작대로 작품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제자 타케베 나오미에겐 "아이디어를 아끼면 안 된다. 60분 분량의 아이디어를 30분에 몰아서 넣으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 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4. 대표작

모든 작품 리스트는 아니다. 메인 라이터인 작품은 ★ 표시.

5. 기타



[1] 그래서 나가사카 작품에는 학력 지상주의, 엘리트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2] 쾌걸 즈밧토 이후로도 특촬물을 종종하긴 했다. [3] 다만 각본가가 본업이라 이러는 중에도 계속 각본은 썼다. [4] 라이벌 이치카와 신이치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치카와는 나가사카보다 분위기 통일을 잘 한다. [5] 여러 멋진 부제를 써냈지만 막나가서 유명한 걸로는 특수최전선 94화 '공포의 텔레폰 섹스마'가 있다. [6] 대표적으로 고르고 13이 원작대로 안 만들어서 욕을 먹었다. [7] 만화가 특촬판보다 나중에 완결되었다. [8] 원래 이치카와가 혼자 다 쓰려고 했지만 각본 하나를 쓰는데 10일이 걸려 뒤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스케줄 붕괴를 막으려고 이치카와와 비슷한 글을 쓸 수 있는 나가사카가 보조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9] 대중적인 인기는 이치카와 신이치가 훨씬 더 높다. 나가사카도 인기는 높은 작가지만 이치카와는 국민 작가 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