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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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cccc><colcolor=#fff> 출생 | 1977년 ([age(1977-04-15)]세) |
직업 | 정치인, 정치경제평론가, 법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시인, 언론인 |
본관 | 김해 |
국적 | 대한민국 |
병역 | 병장만기제대[1] |
종교 | 무교[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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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직업 정치인, 정치경제평론가, 법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시인, 언론인.그의 이력은 법학, 정치학, 심리학자이다. 그러나 유독 정치와 경제 관련 글이 많다. 정치와 경제 칼럼은 2013년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아시아타임즈, 기호일보, 경북도민일보, 조세금융신문, 제민일보를 비롯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세계일보, 헤럴드경제[3] 및 천지일보[4] 대한경제, 대학신문, 코리아 타임즈에 간헐적으로 투고 하고 있다.[5] 남도일보, 대구신문, 경향신문 등 영남 호남 지역간 민감성을 뚫고 진보와 보수 신문을 오가며 집필을 한다.[6] 대담성과 대범함도 대단하지만 그를 받아 준 언론사 역시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안목이 있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설명되지 않는 행보와 이력이 많다. 2006년 법학학부와 정치대학원 졸업 후 영향으로 정치컨설턴트 활동을 했었다. 대학원생 때 부터 한나라당, 민주당 양당을 오가며 아이러니 하게도 씽크탱크 역할을 했었다. 양당제를 돕는 것 뿐, 기회주의지나 중도는 아니다. 학문의 기능주의[통섭]를 후학들에게 강력하게 전파했었다.
실제로 정치학회, 법학회, 경제학회, 경영학회, 심리학, 교육학, 고용노사관계학회, 행정학회, 한국정보호학회, 불교학회, 재정경제학회, 질서경제학회, 가족학회, 특수교육학회, 대한지방자치학회, 지방자치학회, 경영컨설팅학회, 디지털정책학회, 한국인적자원관리학회, 범죄심리학회, 한국정책과학회 등 외에도 다수의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7]. 또한 많은 논문을 게재하였다.[8] 또한 대학원생부터 시작한 공모전에서 160회라는 대한민국 공모전 역사상 양질로는 절대 깨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수상 경력이 있다.[9] 공모전 처음 시도는 돈이었고, 두 번째는 초 엘리트즘 명문사학 학생들과 겨룰 수 있었고, 세 번째는 자신감이었다고 한다.[10] 또한 한 공모전에서는 대상과 최우상을 동시에 수상한 경험이 있다. 일예로 행정안전부 논문 및 아이디어 공모전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이 있고 금융위원회 정보보안 논문 공모전 3회 연속 수상하는 등 매번 다른 수상자를 선정하려는 주최측의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게 상을 휩쓰는 것을 보면 실력과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밖에 연고가 전혀 없는 인천, 수원, 충북, 충남, 대전, 제주, 대마도 등 다수의 지역정책 공모전에서 두 개의 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등 영역을 뛰어 넘어 모든 공모전에서는 경쟁자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대단한 점은 팀으로 한 적은 없고 오직 단독 수상만 하였다는 것이다. 공모전 특석상 개인참가도 많지만 부득이하게 팀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11] 이 부분 조차도 개인으로 참가해서 경쟁하여 번번히 우승했다는 것은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다
문학적인 관심사가 많다. 시, 수필 공모전 외에도 수상 이력이 있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관련된 문학상을 받았다. 모던포엠과 만다라에서 신인상을 2011년 여름 겨울에 받았으며[12] 그 밖에 크고 작은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13] 독서신문에 시를 기고해 가장 많은 댓글을 받았다.[14]
독서신문에 3개월간 일주일에 한 편식 기고했으며 시라는 사행성 기사에 이례적으로 가장 많은 독자들이 선플[15]을 올린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시문학을 중심으로 초점을 받기보다는 품격있게 운영하고 싶은 운영자에 의해 퇴출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모전의 레전드. 워낙 유명한 일화인데 공모전을 통해 얻은 수익이 억 단위에 가까워 의료보험수가가 올라갔다고 한다.[16]
2. 생애
부산에서 1977년 4월 15일 태어났다.[17] 평소에 가족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형제가 있는 것을 제외한 잘 모른다고 한다. 지나치게 정보가 없어 개인사에 대해서 여러말들만 있다.1996년도 법학 전공을 시작으로 정치학, 심리학, 교육학을 전공했다.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유능한 전문가로 이미 여러경력으로 증명되었다[18]
현재는 심리상담센터에서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19]. 수원, 인천, 안산, 대전, 천안, 광주 외에도 벨기에 캐나다 미국 마카오에서도 영상상담으로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본업이라 생각하지 않는지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도 스스로 위신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기에 영리적인 목표로 힘든 사람을 마주하는 것과 그들의 어려움을 일일히 받아주는 것에 자괴감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세번째 검증대일지도 모른다.
어렸을때부터 가난과 외로움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20] 그닥 지독한 가난이 없을 듯한 보통사람의 시대지만 공부도 미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이후로 배우는 것만이 살 길이다고 생각하고 닥치는 대로 배우고 얻어지는데로 스며들며 살았다고 한다.[21]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는 것 같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공부에 마음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시와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고 한다[22] 그러나 정작 문학의 시대는 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3. 성향
합리적인 보수 논객이자 정치인이자 학자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여러 채널을 통해 격없이 협력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글과 활동의 결과물을 보면 표면적으로 보수를 대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부터 국가정책사업에 뛰어들어 국회 정당 정책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후 박근혜 정권[23] 때부터는 눈에 띄게 활동이 줄었다.칼럼과 논평 그리고 각 공공기관의 시사적인 교육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케인즈학파보다는 시카고학파인 신자유주의를 더 주장한다.[24]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논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법학과 정치학을 기본으로 경제 심리 교육 IT 경제 종교학 등의 넓은 분야에 대해 차분하지만 상당히 강한 논리로 글을 쓴다. 상당한 팬덤도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25] 통섭의 관점으로 세계사 역사로 보는 정치 경제와 인간의 이해라는 강연이나 강의를 한다. 실제로 전체지식을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2014 세월호 참사를 두고 한 투데이신문 인터뷰에서 세월호가 세월로 남을까봐 염려된다는 말을 했다. 이로 인해 당시 사건 당사자 및 동정하는 언론 시민들과 척을 두게 되었다.[26] 한편으로는 다른 언론사 인터뷰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생각을 듭히지 않고 "나는 두렵지 않다. 타개는 타개로 해결한다"는 뚝심을 보였다[27]실제로 아직까지 세월호는 세월과 같이 가고 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하여 쓴 글이 화제가 되었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망가뜨린 인색한 시대상"이라며 쓴 글이 또 각 진보진영과 야당에 의해 지탄을 받았다. 결국 글에 적힌 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겨울에 들어가 겨울에 나온 매화가 되었다."[28]
4. 정치인? 법? 정치? 경제? 심리? 시민단체장?
2012년 한국헌법정신연구학회 회장을 시작으로 국가개발연구원 원장에서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로 역임을 하였다. 본인의 본업은 학자라고 소개하지만 단순하지가 않다. 2016년 행복한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하고 끊임없이 언론 정치[29] 사회문화로 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치에 마음을 두고 있다.그러나 정치인으로서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소극적인지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지방단체장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자주 교류를 한다.[30] 2020년에는 부천시의원[31]들의 추대로 국민의힘 부천 갑 당협의원장을 요청 받았지만 고사하였다.[32] 학자인지[33] 언론인인지 또는 정치인인지 모를 행보를 하고 있어 주변에서는 지나치게 신중하다 말을 자주 듣는다. 이 점에 무게감이 실리는 것은,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그를 무서울 정도로의 통제력, 인내심, 끈기심, 투지, 모험성, 과감성, 대쪽같은 성격을 언급한다. 동시에 그의 성품이 그의 꿈을 무겁게 하거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는 심리상담센터와 국민정치경제포럼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학자와 언론계 일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무관하다. 운영중인 심리상담센터는 확장할 것이라고 한다. 꼼꼼하고 신중함을 가진 그가 그런 시도를 내린 거라면 잘 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 활동
국민정치경제포럼(대표)국가개발연구원(원장)
한국산업경제학회(이사)
한국재정정책학회(이사)
한국질서경제학회(이사)
한국정책과학학회(이사)
한국인적자원관리학회(이사)
대한지방자치학회(상임이사)
한국아동가족복지학회(상임이사)
조세금융신문(자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자문)
6. 평가
7. 논란
천지일보에서 활동한 이유로 신천지가 아니냐는 논란을 받았지만 신천지와 무관한 정치칼럼을 작성하였고 고료로 활동하였다. 이단종교라는 지적에는 현재 운영중인 모든 종교단체는 뿌리가 같아도 종파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가 비난과 비판을 서슴없이 한다며 그렇게 본다면 지구상에 활동중인 모든 종교 단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단임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34] 참고로 그는 천지일보에서 칼럼활동을 하면서도 불교 및 다른 종교단체와도 학술적 문화적 활동을 같이 하기도 했다.[35]2014년 YTN 대한민국지방자치박람회 좌장으로 참여했으나[36] 공무원과 대화에서 공직 기강 감사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로 마찰[37]이 빚어졌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전국 과장급이상의 공무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좋지 못한 이미지를 주었다고 한다. 공무원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정권에 따른 보수적인 성향이다. 공무원의 부동자세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것을 보면 보수적인 성향의 행보와는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인다
8. 여담
선거 때마다 러브콜을 받는다고 한다. 본인의 꽌시와는 무관하게 요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지만 덥썩 무는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본인 말로는 돈. 인적네트워크. 외에 황당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없인 당선되기도 어렵고 그렇게까지 할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경인방송에서 한 인터뷰에서 인생이 매 순간이 지명이고 선거고 낙선이고 때론 비례같은 노선에 서 있다고 했다.[38] 이 말을 첨언한다면 어떤 삶의 지평이든 위나 아래나 힘들고 고단하다는 것으로 이해 된다. 종편 탐사보도 세븐과 머니투데이 주식경제관련 출연 협의 당시에도 "귀는 낮게 잡아도 기는 죽지 않는다"는 태도로 PD와 작가 제작진 사이가 종종 틀어졌다고 한다.
[1]
1996.12월 군번이다. 지원입대
[2]
불교관련 연구논문과 굿관련 논문이 있다. 쉬는날에는 사찰과 명동상당을 간다고 한다[39]가끔은 천주교 관련 일을 맡을 때가 있다. 그 밖에 다른 종교적인 신문사와 칼럼을 오래 쓴 것을 보면 따로 신앙을 믿는 것은 아니다
[3]
5년 넘게 정기적으로 투고하고 있다
[4]
5년 장기근속
[5]
해당신문사에 들어가 국민정치경제포럼 또는 국가개발연구원으로 검색하면 모두 보인다
[6]
이외에도 청탁을 받는 신문사가 있다
[7]
KCI연구논문을 들어가 김용훈 이름으로 검색하면 관련된 다양한 논문을 찾을 수 있다
[8]
특히 정보보안, 경영, 종교, 대마도 관련 영토 및 국제법 관련 권위자다.
[9]
2008년 2013년 까지 하고 이후는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 된다. 단 5년 만에 160회는 매달 3회 이상 수상했다고 볼 수 있다.
[10]
헤럴드캠퍼스 인터뷰 2009
[11]
실제로 팀과 개인으로 뒤섞여 참가 할 경우 팀에게 가산점이 주어지거나 높은 상급으로 주어지는 기회가 높다. 이는 공모전 홍보차원으로 자주 사용하는 심사평가기준이기도 하다.
[12]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시인으로서 활동하였다.
[13]
모 신문사에 신춘문예 당선되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본인이 스스로 고사한 전례가 있다.
[14]
이 부분에서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분야를 뛰어넘어 마치 도장깨기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비평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15]
최대 60건. 문학지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계간지에서도 시평으로 이루어진 댓글은 60건 흔치 않다.
[16]
주전공인 법학 정치보다 금융, 정책, 교육, 정보보안, 창업, 식품공학, 환경, 기업, 마케팅, 관련 공모전에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러니한 이력이 있다.
[17]
본적은 경상북도 울진이다.
[18]
주요학회에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하나 또는 유사 학회도 아닌 각각 분야가 다른 학회에서 학회라는 보수적인 조직에서 신임을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눈문과 활동으로 인정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어떤 분야든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고 불도저와 같은 면이 있어 보인다.
[19]
심리학 석사와 교육학 박사를 수학하고 임상심리 및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강북, 노원, 도봉, 의정부 안에서 가장 많은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평. 심리치료사임에도 많은 내담자와 덩시에 그를 쫓는 팬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상담사 윤리규정이나 품위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20]
1980년 말~ 90년 말
[21]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성적표를 확인한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하나같이 모든 과목이 100점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실인 듯 하다.
[22]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칼럼과 논문을 빼고는 시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톡 문자를 나누는 사람은 그의 시적표현을 저장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23]
정책과 정치적인 활동이 적었지만 꾸준한 언론 활동을 했기에 활동이 적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24]
이 부분에서는 말들이 많다. 불우한 환경에서 지본주의 이상과 신념을 고집하는 것은 쉽지 않다.
[25]
운영중인 국민정치경제포럼 중곡동 사무실에 한 주에 한 건 이상 팬이 보내주는 선물이 있다고 퇴사한 직원들의 증언이다
[26]
아마도 이때 언론 활동과 민주당과 크게 척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27]
세월호 사건 이후 더욱 강경하게 칼럼을 집필하였다.
[28]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3년 9개월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및 권력남용 사건’ 특별사면으로 2021년 12월 31일 출소하기까지 1730일을 갇혀 지냈다. 매 시대마다 겪게 되는 사회 문제에 대한 단언이 훗날 맞아 떨어진다며 SNS상에는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변명도 가졌었다.
[29]
메이저신문 말고도 로컬신문에서도 활동하는 것을 보면 큰 그림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야는 그를 아는 기자들과 시민사회에서 종종 말이 나온다고 한다.
[30]
이효선 전광명시장 오세훈시장등 국민의 힘당 주류보다는 비주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아직은 개천이다라는 말도 돈다
[31]
부천시의회 부의장 윤병권 의원과 부천 서영석 의원
[32]
삼고초려로 몇 번이고 요청을 받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승낙하지 않았다.
[33]
이것도 법학 정치 경제 심리학으로 나누어야한다는 말이 있다
[34]
매년 천지일보 조찬행사에 초대 받을 때 마다 분명한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한 천지일보 임직원 및 사장과의 독대에서도 본인의 신조를 여러번 피력하였다고 한다. 이로인해 2019년 1월자로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천지일보는 사실상 인재 영입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본인도 더는 부담을 떠안고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35]
사회학적으로 보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말이지만 종교적인 색이 띄는 곳으로 가면 여전히 지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36]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지방자치박람회 지방발전전략포럼의 특별패널로 참가하여 지자체감사제도 개선방안을 두고 토론하였다.
[37]
2014년 한국 디지털정책학회 1월호와 3월호에서 발간 된1. 2014년 1월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재정 건전성 유지발전을 위한 연구, 김용훈 2. 2014년 3월 지방재정의 감사기획평가체계 연구, 김용훈. 감사기획평가주제 논문을 읽은 공무원들이 공직기강의 투명한 감사의 필요성 이라는 부분에서 불만을 토로 한 것 같다
[38]
청년 일자리 사업, 정말 청년들을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