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관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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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5번 | ||||
최시훈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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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관 (1998~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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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섭 (2003~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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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번 | |||||
송재익 (1997~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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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관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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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2004) |
김수관 | |
출생 | 1975년 8월 5일 ([age(1975-08-05)]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경북고 - 한양대 |
포지션 | 2루수,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8년 2차 1라운드 (전체 5번,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8~2002) |
지도자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3)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4)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5~2018)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8~2024) 청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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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내야수이자, 현 청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 선수 경력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3년, 경북고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다. 당시 경북고의 4번 타자로 나와서 청룡기 대회 내내 무려 홈런을 3개나 치면서 대회 MVP에 오르는 등 우타거포 자원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김수관과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이뤘던 선수를 보면 3번 타자는 동기 강동우, 5번 타자는 1년 후배 이승엽이었다.경북고 졸업 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 입단 대신 대학야구 강호였던 한양대학교로 진학한다. 대학 진학 후에도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 등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지만, 고교 시절 보여줬던 명색에 비하면 성장이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국 대학 졸업 후 1998년 신인 지명에서 고교 동기였던 단국대 강동우에게 밀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했고, 2차 1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래도 고교 시절 보여준 모습이 있었다 보니 입단 계약금도 1억 3,000만원을 받았고, 향후 삼성의 주축 타자로 성장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여기서도 김한수, 정경배, 김태균 등에게 밀리면서 1군에서 전혀 자리잡지 못했다.
아마추어 시절 받았던 기대와는 다르게 프로에서는 전형적인 2군 본즈로 남았고, 결국 2002년 시즌 후 방출되며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를 거쳐 2005년부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합류했다.2018년 11월부터 휘문고등학교 야구부로 자리를 옮긴 김영직 감독의 뒤를 이어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0년 포항제철고등학교가 자사고 지정과 동시에 운동부지원금 지급이 중단되며 야구부가 해체 위기에 놓이는 등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하게 감독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
2024년 봉황대기를 끝으로 포항제철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같은 해 9월 1일부로 청원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확정됐고, 포철고 후임 감독은 김백만 투수코치가 내정됐다.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당시 김 감독이 포철고로부터 받는 연봉은 다른 대구경북 지역 고교야구 감독들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