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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2-04 09:35:33

김문옥(1904)

1904년 4월 29일 전라북도 전주군 전주읍 고사정 326번지에서 출생했다. 1926년 6월 전주 시내에 태극기를 계양했다가 체포된 뒤 무자 방면되었고, 1928년 7월 조선노동총동맹 전주연맹대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1월 신간회 전주지회 간사 및 선전부장을 맡았으며, 그해 9월 전주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30년 전주합동노동조합 상무서기를 맡았으며, 그해 6월 <전북일본> 일본인 기자의 한인 비하 기사 게재에 대해 신간회 본부의 진시에 따라 진상 조사에 참여했다.

1930년 8월 비밀결사 지방 야체이카 조직 관련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불기소되었고, 1931년 3월부터 4월까지 전북 전주지역 정미소 동맹파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구류 25일 처분을 받았다. 그해 7월 전주합동 노동조합의 상무서기를 맡았고, <고뮤니스트와 봉화> 잡지를 발간하고 배포하였으며, 9월 국제청년무산자기념일 기념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조선공산당재건위원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32년 2월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비밀결사 재건협의회 결성 전북 대표로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김철주, 한종식, 김규선, 정창세, 정해철, 원종옹, 장재섭, 최월상, 이우성, 윤희중, 박복근, 이겸중, 김지성, 신언진, 양한근, 윤기환, 양운성, 조균, 김병륜, 김옥남, 양기주, 이삼봉, 최재필, 강희석, 신남근, 임장수, 백남철, 박병득, 박예동, 권용두, 서재윤, 설억만, 김귀중, 강창우, 최육득, 이병철, 송태빈, 송희영, 서상복, 한양리, 황동길 등과 함께 공산주의자로 분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 중 400일 본형에 산입) 판결을 받았다. #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1934년 11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김문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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