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20:37:08

김려



1. 개요2. 생애3. 김려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 방주의 노래
<colbgcolor=#003764><colcolor=#fff> 김려
金鑢
성명 김려(金鑢)
본관 연안 김씨
출생 1766년
사망 1822년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사정(士精)
담정(藫庭)
직업 학자

1. 개요

김려는 조선시대의 학자이다.

2. 생애

그는 1792년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절에서 독서하기도 하였다.

1797년에 " 강이천 유언비어 사건"에 엮여 함경북도 부령으로 유배가게 되며, 1801년에는 신유사옥에 엮여 경상도 진해로 또 유배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친천주교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진해로 한 번 더 유배를 가기되지만, 1806년 아들의 상소 덕분에 유배생활을 끝마치게 된다.

그 뒤 관직을 역임하다가 1819년에 생을 마감한다.

3. 김려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 방주의 노래

김려의 대표적인 작품인 "방주의 노래"는 서사시로, 17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신분차별의 부당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글의 주인공인 방주(심방주)는 천민 집안의 자식으로 비록 직업이 좋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 어느 날, 방주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양반 장 파총[1]을 만나게되고, 장 파총은 자신의 아들과 방주를 결혼시키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을 잃고, 선비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신분차별들을 목격하게 된다. 장 파총이 생선 장사를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마을의 특산물인 전복을 세금으로 바치지 못하자 관청의 포졸들에게 두들겨맞는 것을 본 것이 그것이다.(신분제도로 인해 방주와 장 파총의 아들은 결혼하기 쉽지 않다.)

이를 계기로, 장 파총은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고향에 집을 구입하였고, 능금과 곶감을 재배하는데 에도 성공해 부모님과 맞먹는 부를 쌓게 된다.

이후 장 파총은 부모님과 친했던 양반집 딸과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며, 어느 날 군대로 가게 된다. 그 때는 신미양요가 일어난 때로 전투를 어느정도 할 줄 알았던 장 파총은 적군의 주력선 1척과 그 가까이에 있는 배3척을 침몰시키는 공을 세웠다. 그 후에도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 왕의 눈이 띄게되어 땅과 함께 사또라는 직위를 얻는다.

사또가 된 장 파총은 옆 마을 사또가 사람들에게 사과를 10 궤짝씩 내라고 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그 소식을 들은 장 파총은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을 보살폈다. 장 파총이 다른 사또들과는 다르게 통치를 잘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으며, 소문을 타 왕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전투에 더 참가하여 파총으로 승진했고, 바른 성품으로 인해 병사들의 무한한 기대감과 신뢰까지 받게 된다. 파총이 되어 성공한 그는 과거 자신이 고기잡이를 마지막으로 했던 곳으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우연히 방주와 만난 것이다.

안타깝게도, 방주와 장 파총의 아들은 신분이 달랐기 때문에 마음데로 결혼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방주네 집 안에서 간소하게 결혼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방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으며, 그녀는 주막집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주막집을 하기로 한 이유는 방주의 요리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방주의 주막집은 대박이 났고, 가게를 확장하였다. 손님들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본디 성실하고 일을 많이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방주는 가게 일에 힘듦보다는 재미를 느꼈고, 방주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번 돈으로 방주는 양반의 신분을 구입했고, 장 파총의 아들과 정식으로 떳떳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 된다.
[1] 장은 성씨이고, 파총은 조선시대 관직 중 하나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