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82년 |
평안북도 의주군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clearfix]
1. 개요
1919년 3월 30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1]2. 생애
김래현은 1882년에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3.1 운동이 발발하고 의주에서도 서부교회 광장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일아나기 시작하였다. 한편, 3월 30일 영산시장에서 3,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일으켰으며 이에 출동한 일본 헌병과 경찰들이 발포를 하며 군중들을 진압하였다. 김래현도 시위군중에 참여하였고 그들과 함께 헌병주재소를 공격하였고 주재소 숙소를 파괴하였다. 이때 헌병들의 총격으로 인해 시위대에서 3명이 사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였다. 그 과정에서 체포된 김래현은 일본군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30일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복역하였다.[2]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