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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01:33:54

김동택(1899)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9년 10월 2일
경상북도 예안군 읍내면 교촌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사망 1943년 8월 29일
경상북도 안동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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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동택은 1899년 10월 2일 경상북도 예안군 읍내면 교촌동(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6일 예안면 예안시장에서 이동봉(李東鳳)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자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수비대를 물리치고 헌병대 주재소를 점거하였다. 또한 이튿날인 17일에는 안동면 읍내 장날의 만세시위운동을 후원하기 위하여 철야 행군으로 안동에 도착하여 경찰서와 군청 등을 습격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3월 24일 대전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방면되었다. 이후 상경하여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그는 1932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토건노동조합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센쇼(泉州) 일반노동조합 본부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쿄메이가쿠인(共鳴學院)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상잡지(思想雜誌)인 <동방평론(東方評論)>, <삼천리(三千里)> 등을 출판하고, 조선현대사(朝鮮現代社) 우송부(郵送部)의 오사카지사를 설치하고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가 1936년 12월 14일 붙잡혔다.

1938년 7월 19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안동군에서 여생을 보내다 1943년 8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동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