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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22:10:42

김광빈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05년 8월 2일에 출생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 길림성 화룡현에서 성장하였으며, 1921년 중학교를 중퇴하고 1923년 8월 소련으로 이주하여 강철공장 비서로 사업하였다. 이 때문에 김국후는 그를 고려인으로 분류하였다. 방호산 밑에서 사단 정치장교로 근무했던 최태환 중좌는 그를 소련군 해군중좌 출신의 해군사령관으로 기억하지만, 김광빈은 해군사령관이 아니라 해군군관학교장이었던 것부터 틀렸으니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잘못된 소문을 들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1934년 6월부터 청진, 라진, 원산, 평양, 부산 등지에서 지하활동을 전개했으며 1937년 4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해방 후 북조선공산당 평안남도당 조직부 지도원이 되었으며, 1947년 10월, 해군군관학교가 창설되면서 소좌 계급을 받고 초대 해군군관학교장이 되었다. 1948년 3월, 북조선로동당 2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12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국기훈장 제3급을 수여받았고, 6.25 전쟁 도중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고려인 김우현이 2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물러났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군부에서 쫓겨나서 1952년 10월부터 과수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이후 교육부문에 종사했다. 당연히 1956년의 3차 당대회에서도 탈락하였다. 이렇게 잊혀지는 것으로 보였다가 1961년 6월, 당중앙위원회 과장으로 발탁되어 다시 당간부로 사업하게 되었으며 이후 당 부장으로 승진하였다. 조선대백과사전에서는 "해당부문의 당정책관철에서 높은 충실성을 발휘하였다."라고 그런대로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후 1967년 5월 10일에 사망하였다. 애국렬사릉 조성 이후 당중앙위원회 부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