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원계
이 시기까지의 중화로 지칭되던 그 범위 내의 인물들로, 현 조선 왕가는 주나라/위나라/송나라의 인증으로 여기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고향인 구도 양평에 기거하고 있는 기씨도 만만치 않게 많은 듯하다.* 기(箕) : 기취, 기라, 기비, 기지, 기총[1][2]
두 말이 필요 없는 이 조선의 왕가. 자성 기씨. 기자조선으로 유명한 기자의 후손을 자칭하고 있다. [3]다갓이 밀어주고 어장주가 공인한 신대생물 급 인재풀의 소유 혈통(...)[4]으로, 구현령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말도 안 되는 능력치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이후 등장하는 왕가 이외의 방계들은 진짜로 나름 밑에서부터 실력을 보여 올라온 이들이다. 기지의 숙청 이후 구도 양평에 있던 기씨를 조사해서 양평에 사는 기씨들의 세력은 약해진 모양. 참고로 승상의 유래를 형성하면서 작중 최초의 승상을 배출한 성씨이기도 하다.[5]
구도 양평이 근거지.
* 악(樂) : 악자, 악조, 악월, 악시, 악구, 악의
위나라의 장군 악양의 딸인 악자가 조선에 출사하면서 만들어진 문중으로, 원래는 악자만이 조선에 있었으나 일족들을 조선으로 옮기고, 아예 영수를 조선이 먹음으로써 조선에 일족이 모여살게 되었다. 악양, 악자 부녀나 악조, 악월 부녀 등 무가의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그렇다고 악구 같이 문관이 없었냐면 그건 또 아니긴 하지만... 역시 본업은 무가.
원래는 조나라령이었으나 조나라가 거절하고 위무후가 악양에게 준 영지인 영수가 근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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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趙) : 조어, 조범, 조설,
조옹,
조승,
조하, 조장, 조표, 조사[6]
본디 조나라의 공/왕가였을 그 조씨 맞다. 여기서는 조나라 멸망전 당시 총대장이었던 태자 기이에 의해 조어가 거두어졌고, 본래는 세후 기식이 모반을 유도해 제거할 생각이었으나사랑하는 딸내미인기이가 반대했고, 당시 사실상의 당주인 조어의 필사적인 내/외부 설득으로 끝내 무마하고 일족의 몰살을 피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기이가 즉위할 때쯤 앞서 말한 세후와 문예의 안배에 의해서 진양에서 거용관 바깥인 대로 봉군했다.[7]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의 빛과 어둠 그 모두가 스민 문중. 북방군을 사병화하다시피하고 막대한 활약을 한 조옹 대에 번성했다. 대가 북방과 조선 본토의 경계라는 위치를 살려서 북방민족들과 조선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조어가 생전에 분봉받은 대가 근거지이며, 무려 TO 외의 인물 중에서 삼공을 배출하게 될 정도의 굉장한 저력을 보이는 명가.
후일담에서는 분할상속이 끝임없이 이어진 끝에 일족의 위세는 예전만 못하나, 황제의 직신으로써 제국의 군작을 가져 제후국의 공작과 동위로써 진후국으로 전락한 전씨의 사신을 폭행해도 아무말 못할 정도의 위치는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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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高)[8]: 고정, 고애
중원대전 직후 위나라의 반조선 감정이 극에 달할 때 위나라가 영토탈환의 교두보를 위하여 시도한 중도 전투에서 당시 일개 현령에 숙련도도 낮았던 병력으로 용가의 4만여 병력의 뒤를 찔러 농성하던 이세를 구하고 이후 추격전에서 성과까지 거둔 고정이 안월을 위시한 중앙과 연을 맺으며 시작하였다.
고정은 85세까지 살면서 자식과 친구들이 먼저 가는 등 온갖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다 겪고 세상을 떳다.
특히 손녀 고애는 종횡가 중 하나로 출사 등을 위해 온 사방으로 노력하였으나, 합횡의 기치 고수로 인하여 사실상 할머니 덕에 목숨만은 건진 수준의 결말을 맞고 마는 등, 장수가 오로지 행복만은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중이다.
이후 기설에 의해 집안의 보전에 대해서는 보장받았고, 본적이 산서에 있어 근거지 또한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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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費) : 비의,비주
신도의 제자였던 비의[9]가 조선에 출사하고, 이후 역사에도 없던 손주가 뒤이어 관직에 등용되면서 시작된 문중. 작중 복잡한 의미로 상식파괴범에 뇌근이었던 무령군 조옹의 존재로 인해 대신 항상 좀만 살만하다 싶으면 조선의 재정 문제에 시달린 비의가 도라에몽에 비견되며 별명이 생겨버렸다.
비주의 임관 당시 밝혀진 바로는 비씨가 비의의 고향인 한단에 어느 정도 모여 살면서 그 근거지로 두고 있는 듯 하다.
2. 요동/예맥/청구계
작중 요동과 요서를 기준으로 조선 동부로 분류되는 지역들에서 유래된 인물들이다. 어쨌거나 조선의 시작은 이곳에서부터 이루어져서인지 주요 가문도 가문이지만 기라성같은 인재도 많이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세후 때 사성받아서 시작된 가문들이 많은데 이는 주로 요동계 가문들이 세후가 구 귀족들을 숙청해대면서 변법을 밀어붙일 때 활약해서 권력을 얻은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한 예시로써 기이 치세 초반에 문예가 관할하고, 실시한 추은령[10]을 실시 할 때만해도 문씨나 고씨는 구 귀족들에 비하면 신진이였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구귀족들을 도태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한 예시로써 기이 치세 초반에 문예가 관할하고, 실시한 추은령[10]을 실시 할 때만해도 문씨나 고씨는 구 귀족들에 비하면 신진이였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구귀족들을 도태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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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 : 문예, 문인, 문부, 문소, 문자
요동계. 대부 예가 사성받으며 시작. 아래의 고씨가 조선의 유서깊은 무가라면, 이쪽은 문가인 양대 축급 가문. 시작 때 주어졌던 3인 (기식,문예,고거) 중 한 명의 가문이다. 적절한 처세술을 이용해서 문인 이후로는 관직 면에서 그렇게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고씨와 조씨와 함께 조선 최고 명문가 중 하나로 대우받고 있다. 별로 눈에 띄게 힘을 내보이지 않는 것을 처세술로 삼아서인지 고씨나 조씨처럼 큰 사고를 친 전적이 없다. 기껏해야 옥로의 강등을 좀 심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한 정도가 최대일 듯. 그 외에도 작중 최초의 조선상과 어사대부가 문씨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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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高) : 고거, 고비, 고구, 고질, 고기, 고나[11],고미
요동계. 거가 고성을 사성받아서 시작됨. 고(중원)씨와 한자도 같은 성씨이지만 이쪽은 어장 시작부터 함께 해 온 조선의 무가. 본의 아니게 다소 군사적임에도 불구하고 문민 통제가 확실한 조선의 기풍을 만든 주축이기도 하다(...) 고거 때 부터 삼대가 대장군 혹은 대사마대장군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어지간하면 철저하게 전공분야인 군사에만 관여하고 정치에는대놓고 먹튀질을 해대는 등큰 비중을 두지 않는 처세를 보인다.[12]
이런 먹튀는 원래라면 아무도 그곳에 뇌물이나 선물을 안 주는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군사계에서 고씨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는 수준이므로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지만 한나라에서 온 공중치가 여기 낚여서 큰 곤혹을 치르고 상당히 큰 외교적 문제가 될 뻔했다.
연종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송왕 연홍옥과 조선측에서 요구한 그 댓가에 의해 고나가 조선 최초의 객경도 되었으며 이후 그 실적으로 최초의 우승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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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郭) : 곽달호(스어)[13] , 곽구, 곽전, 곽원
예맥계. 스어를 시조로 하는 가문. 스어가 원래 이름은 스어지만 중원식으로 곽달호라고 불리어 곽씨가 되었다.
스어는 조선이랑 가까운 예맥부족의 장이였다가 조선이 부여원정을 나가며 근처의 예맥부족들을 "실수로" 짓밟을 수도 있다는 협박에 쫄아서 중앙으로 등용되며 시작했다.
시조부터 무과의 재능이 더 있었지만 문관으로 평생의 경력을 둔 것처럼 딱히 어느 계통의 가문이라 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
곽달호의 부족이 송화강 어딘가에 자리했기에 근거지 또한 그곳으로 보인다.
비비오의 은퇴로 승진이 자리가 없어 막혀있던 것이 뚫리면서 곽전이 예맥계 최초의 삼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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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 (祈/河) : 기황, 기화, 하기
요동계. 문예가 발굴한 인재인 기황을 시조로 하는 가문. 황이 기성을 사성받아 시작되었다. 여기에 더해 기가 장왕 기유에게 추가로 하씨를 사성 받는 영광(...)[14]을 누리면서 대번에 가문의 권위가 뛰어올랐다. 이로 인해 기화와 하기는 기성 하씨가 되어서 기화, 하화/기기, 하기 등으로 기록 되기도 가능하다는듯.
하필 광적으로 색을 탐하는 경향이 있던 기황이 시조인 탓인지, 어째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눈에 띄는 해프닝 하나씩은 가지고 들어가는 개성이라면 개성이 있다. 하기를 끝으로 조선상이 명예직화 되었기에, 최후의 조선상을 가져간 집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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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安/壤) : 안월, 안타, 양수
요동->청구계. 문예의 보조로 시작한 안월을 시조로 하는 가문. 월이 안성을 사성받아 시작되었다. 안타 때 본가를 청구의 평양으로 옮겨서 양씨라고도 부른다.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를 넘어서 시조로부터 3대까지의 행적이 그야말로 꽃밭이 만개한다면 이러한 느낌일 정도로 상승이 있을 경우 그 폭이 큰 가문. [15]
원래는 사성받은 씨에서 보듯 안시성 출신이었으나 현재는 평양이 근거지다. 최초의 좌승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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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玉):옥로, 옥패
청구계, 장왕 기유의 유언으로 기설의 최측근이 된 옥로를 시조로 둔다. 등장 시점이 시점이고 옥로의 스탯 상 평범함으로 인해 이외의 특징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대대로 몸이 강건한 정도.
3. 유목/북방계
조선의 위치가 아무래도 유목민들의 터전을 마주하고 있는 탓에 필연적으로 교류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의 사람으로써 유입된 인물들을 기반으로 한다.
다만 일단 중원계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의 사정 상 보통 이들은 오랑캐라 불리는 계통이기에[16]장왕 기유 대에 이르러 최초로 이 쪽 출신의 삼공이 나올 정도로 그들이 인정받는 것은 꽤나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였다.*투(秺 또는 鬪 ?):비비오(투제), 투찬, 투나조옹의 심복으로 데뷔한 비비오 때 처음으로 중앙에 입문한 가문. 임호 기미부주에서 기원했다. 투씨라는 성이 초나라에서 유명했다보니 사실 초나라 투씨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작중 조선에서 유목계 최초의 대사마대장군을 배출하였다.[17] 후일담 시점에서 그 사마씨와 함께 오왕서를 편찬하게 된다.
다만 일단 중원계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의 사정 상 보통 이들은 오랑캐라 불리는 계통이기에[16]장왕 기유 대에 이르러 최초로 이 쪽 출신의 삼공이 나올 정도로 그들이 인정받는 것은 꽤나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였다.*투(秺 또는 鬪 ?):비비오(투제), 투찬, 투나조옹의 심복으로 데뷔한 비비오 때 처음으로 중앙에 입문한 가문. 임호 기미부주에서 기원했다. 투씨라는 성이 초나라에서 유명했다보니 사실 초나라 투씨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작중 조선에서 유목계 최초의 대사마대장군을 배출하였다.[17] 후일담 시점에서 그 사마씨와 함께 오왕서를 편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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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佳?)씨: 아무로, 크라우, 가현
전 흉노 좌대당호인 아무로가 조선에 귀부하면서 생긴 가문. 크라우 대까지는 초원식으로 이름짓고, 진동군을 사실상 세습하듯이 했지만, 가현 때부터는 이름을 초원과 중원식 모두 사용하고, 본인의 재능상 더 적합하던 문관으로 등용되어서 진동군 세습도 사실상 끝났다. 개마고원의 발견과 개척을 일임받아 2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달성한 이력이 있다.
가현이 상구대전에서 마치 원역사 상 후일의 소하를 연상케 하는 물 흐르는 듯한 보급 수행을 보여주며 조사의 병력을 도합7차전까지 지원해주는 기염[18]을 토한 공로로 유목계 최초의 승상을 배출한 집안이 되었다.
가현의 대에 이르러서는 반쯤은 청구계라고 봐도 될 정도로 잘 정착해 살고 있는 듯 하다.
[1]
장왕 기유의 첫째 딸로, 너무나도 병약했던 탓에 일찍 죽어 AA도 회수되었다.
[2]
왕들은 이곳에 서술하지 않았다. 또한 외국인이 된 경우 그 나라의 등장인물로 서술되므로 참고할 것.
[3]
기자는 상나라 왕족이였으므로, 상나라의 후계를 자칭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상나라 왕족의 후손인 송나라와는 친척국가로 여겨진다. 진상은
조선비사 참조.
[4]
둔재로 판정된 기람(위나라의 공자 위신의 남편)조차 최소 능력치가 87이다.
[5]
문예 다음의 조선상으로 정해진 기취는 자신의 능력 상 도저히 업무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어서 그 비서직으로 나름 죽이 맞던 친척에 조정에서부터 그 재능을 주목받던 기라를 임명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 때 그 직책명에 대해 기라와 문예 등이 생각한 것이 그대로 낙점된 것.
[6]
그 조괄의 부친 되는 조사가 맞다. 실제 역사에서는 한자만 같은 공가 작위조차 없는 먼 방계라 이러한 대우를 받을 여지 자체가 없지만, 작중의 조씨는 조선에 의해 나라가 망하여 공가 작위까지 주나라에게 회수된 경험이 있어 일족의 번성을 중시하며 그 범주도 꽤나 넓게 잡게 되었고, 이 논리에 의해 조승에 의해 천거된 전적마저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연의에서 유비가 황숙의 지위를 획득한 것과 비슷하다.
[7]
이 당시에는 조선이 지금만큼 초원에서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고, 거용관 밖의 대는 상당히 위험한 장소였다. 이 때문에 주나라로부터 작위를 회수당했다.
[8]
시조인 고정이 아래 요동계 고씨와 별개의 구 조나라 출신 평민이었다.
[9]
조무령왕 시절 조나라의 내정을 돌봐왔던 인물로 삼국지에도 동명이인이 있다.
[10]
귀족들에게 분할상속을 강제하는 법률
[11]
특이사항으로 이쪽은 명가 최초로 양자 계승이다. 이유는 내용을 참고.
[12]
정치적 처세에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고질의 공이 차후 후계 한명의 등용을 보장함을 요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자, 고씨의 유망주이던 고나가 고질의 친자가 아니었기에 불가하다면 양녀로 들여서라도 보장하고자 한 사려도 존재했다. 이는 고질이 자식 3명 전부의 출사를 요구한 무령군과 신경전을 벌이던 사이였기에 이미지메이킹을 하며 무령군을 디스한다는 속내가 읽히는 일이었지만, 명가라 하여도 능력주의에 따는다라는 기치를 강조하는 사례가 될 것이므로 장왕은 모른척 넘어갔다.
[13]
이거 사실
크와트로 바지나를 곽달호라 부른 것이며, 스어도
샤아 아즈나블의 이름이 잘못 들어와서 '스어 아즈나브르'라고 소개된 것이다.
[14]
이게 왜 문제가 되었냐면, 당시 장왕 기유는 그저 이름이 이상하였기에 그래도 차마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바꿔 주진 못하고 대신 성씨를 준 것이다. 이 행동이 가지는 의미를 모른 채 저지른 그 결과 하기는 작정하고 장왕의 심복으로써 키워지고 있는 취급을 받아 혼삿길에 차질을 받기까지 했다. 물론 이후 그 오해에 걸맞은 출세를 하긴 했으니 이제 와서는 한때의 해프닝이지만.
[15]
안월은 30년 동안 대부에 머물렀으나 공손앙을 뜯어말려 지나친 법치를 억제한 공로를 시작으로 말년에 7경(당시에는 6경)까지 오르며 동시에 당시 일개 현령인 고정과 인연을 맺었고, 사후 조회가 3일간 파해질 정도의 인덕을 갖추어 조문객이 발이 끊길 줄 몰랐다. 안타는 그 고정의 친구로, 불미스러운 사건[19]으로 인하여 어장 최초로 벼슬을 강등당한 일이 있었으나 어머니를 확연히 뛰어넘는 재능을 바탕으로 절치부심한 끝에 결국 친구의 뒤를 이어 조선상에 오른다. 양수에 이르러서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능력치가 90 아래인 게 없는 것도 모자라 100을 넘어 추가 트레잇까지 붙는 능력치가 셋인 수준의 성장기를 보내고 30대도 되기 전에 어사대부의 바로 아래 관직까지 치고 오른다. 이는 현재 역대 조선의 인물들 중 최상위의 능력치이기도 하다.
[16]
물론 이것은 예맥/요동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경우 애초에 중원계보다도 오래전부터 조선의 구성원이었기에 이 문제로 고생하는 일은 유목/북방계에 비하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가벼웠다. 당장 최초의 삼공(당시 이 시기부터 존재하던 삼공은 대사마대장군 하나뿐.)과 조선상이 요동계였다.
[17]
최초의 유목계 7경(당시는 6경)은 마위인데, 젊어서는 출신 때문에, 여건이 좋아지고는 너무 나이가 많아 혼사를 치르지 못하여 자손을 남기지 못하였다. 승진을 마다하고 조선의 군마를 개량시키던 것도 있지만, 그의 출세가 늦어진 것도 포함하여 유목민과 하층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세후, 늦게 봐도 유후 때부터 시작된 기나긴 싸움이었다.
[18]
일반적으로 그 전에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5차전을 초장기전으로 보며, 이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자 측이 공세역량을 모두 소진해 물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