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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22 14:57:38

그리말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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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벤토 공작
조토 아레치스 1세 아이울프 1세 라도알트 그리말트 1세
로무알트 1세 그리말트 2세 기술프 1세 로무알트 2세 아우델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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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벤토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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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둘프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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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둘프 2세
란둘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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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둘프 3세
판둘프 1세
란둘프 3세
판둘프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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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둘프 5세
판둘프 3세
판둘프 3세
란둘프 6세
교황의 가신
로돌포 판둘프 3세 란둘프 6세
판둘프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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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그리말트 3세.jpg
Grimoald III
생몰년도 미상 ~ 806년
출생지 미상
사망지 살레르노
재위 기간 787년 - 806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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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네벤토 공국 2대 대공.

2. 행적

베네벤토 초대 대공 아레치스 2세 랑고바르드 왕국의 마지막 국왕 데시데리우스의 딸 아델페르가의 아들이다. 787년경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가 베네벤토 공국에 쳐들어와서 각지를 파괴하고 살레르노 요새를 포위 공격했을 때, 요새에 틀어박혀 있던 아레치스 2세는 프랑스 왕국의 봉신을 자처하며 연간 공물로 7000 솔리두스를 바치고 아르케, 아퀴노, 아르피노, 소라, 테아노, 카푸아를 교황령에 양도하겠다고 약속했고, 카롤루스 대제는 이에 만족하여 프랑크 왕국으로 돌아갔다. 이때 그리말트 3세는 인질로서 프랑크 왕국에 끌려갔다.

아레치스 2세는 프랑크군이 물러간 뒤 교황령에 양도하겠다던 도시를 내주지 않고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한 데시데시우스의 아들 아델치스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787년 8월 26일에 사망했고, 베네벤토인들은 그리말트 3세를 새 공작으로 추대하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아델페르가가 섭정하게 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그를 보내주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가 "앞으로 프랑크 왕국에 대적하지 않고 충성을 바치겠다"는 맹세하자 이를 믿고 보내줬다.

788년 초 베네벤토 공국으로 돌아온 그리말트 3세는 시칠리아의 파트리키우스인 테오도로스가 이끄는 동로마군이 아델치스를 앞세워 칼라브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즉시 스폴레토 공작 힐데프란트 위니게스 휘하의 프랑크군과 연합해 동로마군을 협공해 궤멸시켰다. 아델치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달아났고, 테오도로스는 생포되었으며, 4,000명의 동로마군이 사살되고 1,000명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봉신으로 지내던 그리말트 3세는 790년경 마음을 달리 먹고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기로 하고 동로마 귀족이며 콘스탄티노스 6세의 왕비 암니아의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필라레토스의 딸 에우안티아(Euanthia)와 결혼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이며 롬바르드 국왕인 피핀 카를로만은 이에 자극받아 791년 베네벤토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했다. 792년 피핀의 형인 아키텐 왕 루트비히는 베네벤토 공국을 향한 2번째 공세를 준비했지만 기근으로 인해 취소했다.

그리말트 3세는 792년 이래로 주조한 동전에 카롤루스의 이름을 더 이상 새기지 않았고, 자신의 칭호를 프린켑스로 지정했다. 또한 동전에 "Langobardorum Genti"라는 문구를 새겼는데, 이는 랑고바르드족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800년 카롤루스 대제는 피핀에게 베네벤토 공략을 재차 맡겼지만,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은 그리말트 3세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실패했다. 802년, 그리말트 3세는 루체리아에서 스폴레토 공작 위니게스를 생포했다가 1년 후에 석방시켰다.

그리말트 3세는 790년 에우안티아와 결혼했지만 795년경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해지며, 기록상 전해지는 자식은 없다. 806년 사망하여 살레르노 성당에 안장된 뒤, 스톨세이스(stoleseyz), 즉 재무관을 맡고 있던 그리말트 4세가 새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