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창(國唱)이란 나라의 명창이라는 뜻으로 전통음악에서 빼어난 명창을 일컫는 말이다. 전통음악은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것이므로 결국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대명창을 뜻한다. 관례적으로 국창이란 말은 판소리계에서만 쓰이고 있다.2. 상세
조선시대에는 국창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어전(御殿) 광대’란 말이 쓰였다. 조선조 문헌을 보면,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창부[遠昌]가 궁궐에 들어가 타령을 부르는데 임금이 그의 부채를 펴보았다(唱夫入內苑打詠 而御取扇覽之).”는 기록이 있다. 『조선창극사』에는 염계달(廉季達)이 “헌종대왕의 부르심을 받고 어전(御殿)에서 누차 소리를 하였다.”고 하였고, 염계달·최낭청·김창환·송만갑 등도 어전에서 소리한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궁중에서 소리를 한 광대를 통상 ‘어전광대’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어전광대’는 원래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지만,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므로 대단히 영예롭게 생각하였다. 조선시대 판소리에서는 전기팔명창이나 후기팔명창 수준의 명창을 지칭한다.일제강점기 이후 왕조의 몰락으로 더 이상 어전광대가 나올 수 없게 되면서부터 국창(國唱)이란 말이 쓰였다. 당시 신문에는 “이동백, 김창환 양 씨의 명성은 이미 천하에 떨쳐서 국창(國唱)이라는 존경까지 받는 바”(『매일신보』 1928. 9. 10일자)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국창이 어전광대를 대신하는 말이라면 “정창업(丁昌業)과 함께 국창(國唱)으로 유명한 이날치”(『조선일보』 1938. 3. 24.)처럼 ‘나랏님[국왕]이 들은 소리’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여러 신문의 용례를 보면, “국창가수(國唱歌手)의 고금록(古今錄), 조선의 유수한 국창가수(國唱歌手), 조선을 대표할만한 국창(國唱)”(『매일신보』 1930. 11.28.), “사대 국창 이생의 역작(四大 國唱 異生의 力作)”(『매일신보』 1935. 12. 12.)처럼 당대 최고의 명창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오명창 수준의 기량을 지닌 명창을 지칭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왕조사회에서부터 대중사회로 옮겨가며 국창의 기준은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 전국민적 인기로 변화했다. 이러한 인식은 임방울에게 볼 수 있는데, “『국창 임방울 특선곡(國唱林芳蔚特選曲) 쑥대머리』(新世紀 민1244)”와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난 이후부터 현재에는 국가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공인된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 중에서 기량이 특히 뛰어나고 인기가 높은 명창을 지칭할 때 국창이라고 지칭한다. 국악인 중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은 만정 김소희, 대중에게 걸쭉한 입담과 “제비 몰러 나간다~” 광고로 친숙한 인당 박동진 등이 현대 명창 중 국창으로 지칭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