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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4:57:17

구양흘

남조 반란 지도자 · 할거정권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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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구양외 구양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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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남진 제2대 양산군공
歐陽紇 | 구양흘
봉호 양산군공(陽山郡公)
성씨 구양(歐陽)
흘(紇)
봉성(奉聖)
부친 구양외(歐陽頠)
생몰 538년 ~ 570년
재위 563년 ~ 570년

1. 개요2. 생애3. 참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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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진나라의 인물로 담주(潭州) 임상현(臨湘縣)[1] 출신이다. 아버지는 남진의 대사공을 지낸 구양외(歐陽頠), 아들은 당나라의 서예가인 구양순이다.

2. 생애

563년, 부친 구양호가 죽자 구양흘은 양산군공(陽山郡公)에 봉해지고 도독교광(都督交廣)을 비롯한 19주 제군사 및 광주자사(廣州刺史)에 임명되었다. 또한 남방인 백월(百越) 지역을 10년 동안 다스리면서 그곳에서의 평판이 올라가는 등 선정을 펼쳤다.

그러나 진선제는 구양흘이 그 세력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입조(入朝)하게 했다. 구양흘은 입조하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반란을 일으켰지만 570년 장소달(章昭達)의 수군에게 패해 붙잡혔다. 이후 건강(建康)으로 압송된 후 구양순을 제외한 일가가 처형당했다.

3. 참고 항목



[1] 현재 후난성 창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