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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6:51:40

구나함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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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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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은 왕위에 오른 지 14년에 꼬나까마나 붓다(Konāgamana buddha)의 탑을 먼저의 크기보다 두 배로 크게 증축하였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지 (20년에)[1] 이곳을 방문하여 참배하고 돌기둥을 세웠다.
아소카 왕의 명으로 세운 나갈리 사가르 석주에 새겨진 칙령.
구나함모니께서는 소견이 걸림이 없으시니 모든 길상 가운데 가장 높도다. 그 부처님께서도 이곳에 다녀가시니 그런 이 곳, 묘승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로다.
대방광불화엄경
佛不見身知是佛 부처는 몸을 보지 않고도 부처인 줄 알지만 ,
若實有知別無佛 진실로 안다면, 따로이 부처가 없다 .
知者能知罪性空 지혜로운 이는, 죄의 성품이 공함을 알아
但然不怖於生死 편안히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네 .
과거칠불게송 가운데 구나함모니불

과거 7불(佛)의 하나로. 현겁천불(賢劫千佛)의 두 번째 부처. 바라문 종족, 성은 가섭(迦葉). 아버지는 야섬발다(耶睒鉢多), 어머니는 울다라(鬱多羅). 오잠바라(烏暫婆羅)라는 이름의 나무 아래서 성도하였다. 제1회 설법에 3만의 비구ㆍ아라한을 제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14장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증일아함경에는 구나함모니 부처는 4만 세를 살았으며, 그때는 성중의 모임이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 모임에는 60만 성중이, 두 번째 모임에는 40만 성중이 모였으며 그들이 모두 아라한이었고, 그 부처님 때에는 40년 동안 범하는 사람이 없었고, 40년 동안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금계를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그러다 그 뒤에 계율을 범하는 사람이 있어 다시 금계를 정하였다고).
뜻을 굳게 세워 경솔하지 말고
거룩하고 고요한 도를 배워라.
현자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으니
항상 마음속의 생각을 없애라.


[1] 비석의 원문이 마모되어 있다. 여담으로 아소카 대왕 20년은 대왕이 룸비니를 순례하고 석주를 세운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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