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6년)
후한의 인물.
거연도위(居延都尉)를 지냈으며, 93년에 교위였던 섭상(聶尙)이 죄에 연루되어 면직되자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
관우는 미당(迷唐)[1]을 덕과 감화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며,[2] 미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역사(譯使)를 보내서 여러 종족을 이간질시키고 재화로 유인해 모두 사이가 멀어지게 했다.
이 틈에 관우가 군대를 보내 변경 밖으로 나가 대유곡과 소유곡에서 미당을 공격해 800명을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았고, 보리 수만 곡(斛)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봉류대하(逢留大河)를 끼고 성(城)과 오(塢)를 쌓고, 큰 배와 다리를 만들어 군대를 건너가게 한 뒤 미당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미당은 부락을 이끌고 먼 곳에 있는 사지하곡(賜支河曲)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96년에 병으로 사망했고, 한양(漢陽)태수를 지냈던 사충(史充)이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