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타카노리의 챔피언 벨트 | ||||||||||||||||||||||||||||||||||||
|
이름 |
고미 타카노리 ([ruby(五味 隆典, ruby=ごみ たかのり)]) |
생년월일 | 1978년 9월 22일 ([age(1978-09-22)]세) |
가나가와현 아이카와마치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도쿄도 스기나미구 |
종합격투기 전적 | 51전 35승 15패 1무효 |
승 | 14KO, 6SUB, 16판정 |
패 | 4KO, 8SUB, 3판정 |
체격 | 173cm / 70kg / 178cm |
링네임 | The Fireball Kid |
주요 타이틀 | Shooto 5대 웰터급 챔피언 |
Pride 2005 라이트급 그랑프리 우승 | |
Pride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 | |
기타 | Shooto 웰터급 타이틀 방어 1회 |
Pride 라이트급 타이틀 방어 1회 | |
SNS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주요 승: 조니 에두아르도, 사토 루미나, 레오나르도 산토스, 크리스 브레넌, 폴 로드리게스, 미시마 도콘조노스케, 하우프 그레이시, 찰스 베넷, 데이비드 바론, 젠스 펄버, 루이즈 아제레도(2), 카와지리 타츠야, 사쿠라이 하야토, 마커스 아우렐리오, 이시다 미츠히로, 드웨인 루드윅, 방태현, 나가쿠라 타카시, 타이슨 그리핀, 미츠오카 에이지, 맥 댄지그, 아이작 밸리-플래그, 멜빈 길라드
- 주요 패: 요아킴 한센, BJ 펜, 마커스 아우렐리오, 세르게이 골랴예프, 키타오카 사토루, 케니 플로리안, 클레이 구이다, 네이트 디아즈, 디에고 산체스, 마일스 쥬리, 조 로존, 짐 밀러, 존 턱, 마동현, 야치 유스케
- 무효: 닉 디아즈
3. 커리어
3.1. Shooto
카나가와현에서 태어난 고미는 16세에 복싱을 배우며 격투기를 시작했고, 자유형 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했다. 1997년 Shooto의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고, 1998년 11월 Shooto에서 프로로 데뷔했다.뛰어난 레슬링과 G&P를 바탕으로 연승을 이어간 고미는 2001년 12월 사토 루미나에게 승리하며 Shooto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여기서도 테이크다운에 이은 파운딩으로 3라운드 내내 우세를 잡았고, 하위에서 걸어오는 사토의 서브미션을 모두 파해하면서 압도적인 우세승을 얻어냈다. 이후 레오나르도 산토스와 크리스 브레넌을 판정으로 잡아냈고, 2002년 12월에는 미시마 도콘조노스케와의 타이틀 방어전에서 라이트 카운터를 명중시키며 KO승을 따냈다.
하지만 2003년 8월 요아킴 한센과의 접전 끝에 판정패를 당하며 Shooto 타이틀을 내줬다. 2달 후 가진 ROTR에서는 BJ 펜에게 스탠딩과 그라운드 양쪽에서 관광을 당한 끝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 패했다.
3.2. Pride
다소 부진한 2003년을 보낸 고미는 2004년 PRIDE의 경량급 리그격인 무사도로 돌아왔다.2004년 2월 PRIDE 무사도 2에 출전한 고미는 재디슨 코스타를 1라운드에 펀치로 TO시키며 화려하게 PRIDE 무대에 입성, 2004년 5월 무사도 3에서는 하우프 그레이시를 불과 6초만에 니킥으로 실신시키며 KO승을 거둔다. 이 경기는 부상으로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기권한 마크 콜먼 vs 후지타 카즈유키의 경기를 제외하곤 프라이드 최단 KO기록이다.
이후에도 연승행진을 이어가 파비오 멜로를 역시 펀치로 쓰러뜨렸고, 꼴통인 찰스 베넷을 기무라로 정리하며 PRIDE 라이트급의 강자로 부상했다. 2004년 12월의 남제에서는 UFC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인 젠스 펄버와 대결해 1라운드 펄버의 턱에 라이트를 작렬시키며 충격적인 KO승을 거두었다. 이는 두 선수간의 체급차를 생각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때 고미는 '나에게 판정이란 없다. 나의 시합은 모두 KO, 그것도 1라운드 KO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2005년 5월 무사도 7에서 루이스 아제레도와 대결하여 아제레도의 치고 빠지는 전략에 고전했지만 코너로 몬 뒤 원투 펀치로 실신 KO 승을 거뒀다. 레프리가 스탑을 선언하고 제지하는 도중에도 KO된 아제레도에게 계속 파운딩을 치는 바람에, 두고두고 까이는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부정적인 여론과 함께 거만하기 짝이 없는 승리 포즈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추가되어 안티가 엄청나게 급증했다. 이유도 가관이었는데 나는 엄청 많이 얻어맞았는데 저놈은 한방에 쓰러지길래 화가 나서였다고 한다.
7월에는 진 실바를 판정으로 잡아냈다.[1]
2005년 9월에는 PRIDE 라이트급 그랑프리에 8강에서 카와지리 타츠야를 상대했다. 카와지리는 고미와 더불어 일본 라이트급 양대산맥으로 꼽힐 정도의 강자였기에 이 경기는 라이트급의 크로캅 vs 효도르로 불릴 정도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타격전에서 고미의 일방적인 관광이 이어졌고 뒤이어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4강에서 다시 만난 루이스 아제레도를 판정으로 이기며[2] 결승에 진출, 사쿠라이 하야토와 초대 PRIDE 라이트급 타이틀을 걸고 격돌했다. 초반 타격전에서는 하야토의 카운터에 고전했지만 하야토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방어하며 오히려 백마운트를 잡고 파운딩을 퍼부어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스탠딩 상황에서 원투를 깨끗하게 명중시키며 PRIDE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게 된다.
하지만 2006년 4월 무사도 10에서 뜻하지 않은 패배를 당했다. 마커스 아우렐리오에게 더블렉을 잡힌 끝에 암트라이앵글에 끝까지 탭을 치지 않아 실신 서브미션패를 당한 것이다. 논 타이틀 매치였기에 벨트는 빼앗기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허망한 고미의 패배는 팬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배 원인에 대해 모티베이션 저하라는 변명을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정상에 이제 막 등극한 선수가 BJ펜이나 요아킴 한센 등 리벤지할 상대들도 남아있는데 벌써부터 그런 모습을 보이냐는게 중론이었다.[3]
결국 아우렐리오와 2006년 5월 무사도 13에서 라이트급 벨트를 걸고 다시 격돌했는데, 여기서는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다. # 다만 둘 다 적극적인 공방을 피하고 소극적인 경기를 보였기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4]
2006년 12월 31일 PRIDE 남제 2006에서 마커스 아우렐리오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강력한 레슬러 이시다 미츠히로를 맞아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시다의 하이킥에 카운터 펀치로 다운을 뺏은 후 파운딩으로 1분 11초만에 KO시키며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2007년 2월 PRIDE 33에서는 닉 디아즈와 대결했는데, 1라운드에 큰 다운을 빼앗아 디아즈가 안와골절을 당하여 2라운드에 닥터 체크만 2번 받으며 승리를 얻는가 했더니, 디아즈의 타격에 밀려 가드도 못 올릴 정도[5]로 데미지를 받으며 고전한 끝에 디아즈를 테이크 다운시켰지만 고고플라타에 걸리면서 역전 서브미션 패를 당한다. 디아즈가 감량해온 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결과였지만, 경기 후 디아즈가 마리화나를 복용한 사실이 적발되어 경기는 무효처리된다. 이후 PRIDE가 도산하면서 이 경기는 고미의 마지막 PRIDE 경기가 되었다.[6]
3.3. Sengoku
PRIDE가 망한 후, 고미의 거취는 팬들의 큰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다른 탑 컨텐더들과 함께 미국의 UFC로 건너갈지, FEG 산하로 들어갈지, 아니면 제 3의 길을 택할지를 두고 갖은 추측이 난무했다. 고미의 선택은 Sengoku였다.2008년 3월 Sengoku 1에서 드웨인 루드윅[7]에게 다운을 뺏으며 컷에 의한 승리를 얻었고, 8월 Sengoku 4에서는 방승환을 맞아 타격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그라운드에서 앞서며 약간 힘겨운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2008년 11월 Sengoku 6에서 세르게이 골랴예프를 맞아 다운을 당하며 힘겨운 경기 끝에 스플릿으로 판정패를 당하는데, 굳이 일본의 홈 어드밴티지를 따지지 않더라도 경기 양상이 제법 팽팽했기에[8] 판정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2009년 1월에는 Sengoku 라이트급 타이틀을 두고 키타오카 사토루와 대결하여 사토루의 태클 시도를 막은 뒤 백마운트를 뺏고 초크를 시도하였으나 초크 실패 이후 사토루의 기습적인 힐훅에 걸려 1분만에 탭을 치고 말았다.
이후 Affliction에서 경기가 잡혔지만 무산되었다. 2009년 5월 Shooto로 돌아와 챔피언 나가쿠라 타카시에게 KO승을 거두었고, VTJ에서는 KOTC 챔피언인 토니 허비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예전만 못한 기량을 보이며[9] 하락세라는 평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3.4. UFC
위기에 빠진 고미는 2009년 UFC에 진출하며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기량이 예전만 못했기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2010년 3월 UFN 21에서 싸우게 된 상대는 케니 플로리안이었다. 팬들의 우려대로, 이 경기는 고미의 완패로 끝난다. 플로리안에게 타격에서 이렇다할 해법을 찾지 못한 끝에 3라운드에 한 번 테이크 다운 당한 것을 버티지 못하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패배하고 만 것이다.
2010년 8월 UFC Live 2에서는 역시 만만치 않은 레슬러인 타이슨 그리핀[10]과 대결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팬들이 레슬링에서 우위를 둔 그리핀의 승리를 점쳤으나, 결과는 고미의 1라운드 KO승이었다. 그리핀의 레그킥 타이밍에 카운터 라이트를 제대로 꽂아주며 그리핀을 넉아웃시킨 것이었다. 승리한 후 케이지 위에 올라 데이나 화이트를 계속 찾으며 자신에 대한 어필을 한다
2011년 1월 UFC 125에서 클레이 구이다와 대결했다. 구이다는 경기시작부터 계속 테이크 다운을 취할 모션으로 고미를 압박하였고 고미는 구이다의 테이크 다운을 의식한 듯 중심을 낮게 잡고 타격전에 임했으나, 구이다는 자세를 낮추게 만든뒤 하이킥을 적중시키는 등 상하 교락작전을 펼친다. 결국 상체를 계속 움직이며 들이대는 구이다의 움직임에 말렸고, 결국 테이크 다운을 당해[11] 그라운드에서 길로틴을 잡혀 패배했다. 9월 UFC 135에서는 네이트 디아즈를 맞아 복싱에서 관광을 당한 끝에 그라운드에서 암바로 패했다.
2012년 2월 일본에서 열린 UFC 144에서는 미츠오카 에이지를 힘겹게 쓰러뜨렸다. 초반부터 미츠오카의 스텝을 따라잡지 못하고 큰 궤적의 펀치만 휘두르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고, 1라운드 막판에 테이크 다운을 허용해 파운딩을 얻어맞고 트라이앵글 초크까지 내주며 위기에 빠졌으나 버텨내었다. 2라운드에는 미츠오카를 압박하여 다운을 뺏은 뒤 파운딩을 퍼부어 TKO승을 거뒀다.
2012년 11월 11일 마카오에서 열린 UFC on Fuel TV 6에서 맥 댄지그와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타격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댄지그가 그라운드 전환을 노리는 양상으로, 고미가 타격전을 주도한 반면 덴지그는 테이크 다운과 그라운드에서 우위를 보였다. 팽팽하면서도 치열한 전개였으나 판정단은 시종 공세를 유지하며 1차례의 다운을 뽑아낸 고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3라운드 막판에는 깨알같은 인간극장이 준비되어 있다.[12]
2013년 3월 3일 일본에서 열리는 UFC On Fuel TV 8에서 디에고 산체스와 대결했다. 아웃파이팅 전략을 들고나온 디에고를 상대로 계속 밀어붙였고 이렇다 할 공격을 가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공세를 퍼부었기에 판정승이 예상되었으나 스플릿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대회의 앞선 경기였던 알렉스 카세레스 vs 강경호의 경기도 판정 논란[13]이 있었기에 UFC의 판정에 대한 전문가들과 팬들의 비난이 일고 있다.[14] 하지만 고미도 딱히 보여준 건 없었고 무엇보다 경기가 더럽게 지루했기 때문에 까였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디에고였고 판정의 피해를 입은것도 있었기에 덜 까였다.
2014년 4월 26일의 UFC 172에서 아이작 밸리-플래그를 판정승으로 이겼다. 1라운드에는 밸리플래그의 레그킥과 아웃파이팅에 주춤했으나 2라운드에서 복부에 타격을 주고, 타격 컴비네이션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밸리플래그의 안면을 붉게 물들였다. 판정은 29-28 만장일치 승리. 밸리-플래그도 만만치 않았던 모습을 보였고 고미의 타격도 어느정도 임팩트가 있었기에 UFC 172의 파이트 오브 나이트 보너스를 수령했다.
2014년 9월 20일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UFC Fight Night 52에서 마일스 쥬리와 대결하여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본인의 커리어 사상 첫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물론 상대인 쥬리는 데뷔 후 15승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괴물 신인이었고, 고미는 이미 한물 간 파이터로 평가받고 있었기에 미스매치로 보는 의견이 많긴 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본인의 장기인 타격에서 너무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2015년 7월 25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UFC on Fox 16의 메인카드 첫 경기에서 조 로존을 상대했다. 초반에는 타격전을 잘 벌이는 듯 했지만 그라운드로 끌려간 다음 일어나지 못하고 파운딩을 얻어맞으며 1라운드 2분 37초만에 TKO패했다. 이로써 1라운드에 2연속 KO패를 당하게 되면서,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조 로존은 항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타격이 MMA 전체로 쳐도 벤 아스크렌 & 필 데이비스와 비견될 정도의 솜주먹에다 느려터진 핸드 스피드로 농담으로라도 타격이 좋다는 소리를 못하는 수준인데 그 로존에게 타격으로 털렸다는거 자체가 충격 수준.
기념비적인 UFC 200 대회에서 짐 밀러를 상대했으나 그라운드로 끌려가서 파운딩으로 박살 나며 1라운드 2분 18초 만에 TKO 패 당했다. 1라운드에만 3연속 KO 패를 당해 UFC에서 퇴출 위기를 맞았다.
UFC Fight Night 111에서 존 턱을 상대했는데 바디에 프론트킥을 허용해서 데미지를 입었고 데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채 그라운드로 끌려가서 리어 네이키드 초크에 탭을 치며 1분 12초만에 서브미션 패를 당했다. 확실히 맷집이 전체적으로 약해졌는지 1라운드 초살패로만 4연패에 빠졌다.
결국 김동현과의 대결에서도 1라운드 TKO를 당하며 정말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UFC에서의 거취가 불분명했던 김동현인만큼 고미 타카노리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반드시 재기의 기회로 삼아야 했지만,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셋업 동작 없이 변칙적으로 날아온 김동현의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다운되고, 파운딩 세례를 받으며 TKO패를 당했다. 심판이 조금 일찍 경기를 말린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간 고미 타카노리가 보여준 내구성 측면에서의 문제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보는 이들 역시 많다.
종합격투기 웹진인 MMAJunkie는 고미가 최근 5경기 연속으로 1라운드 피니시를 당했고, 그 중 4패가 TKO패라는 점을 들며 "고미 타카노리는 은퇴하는 것이 격투팬과 자신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결정이다" 라는 혹평을 내렸다. 한때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젠스 펄버를 사각링 위에서 쓰러뜨리고, 대마초까지 사용한 닉 디아즈를 다운시켰던 고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실로 격세지감이다.
3.5. Rizin FF
결국 UFC에서 퇴출되었고 일본 단체인 Rizin FF와 계약하였다. 그러나 2017년 12월 31일 야치 유스케에게 서브미션으로 패배하여 6연패를 당하였다.2018년 7월 29일 Rizin 11에서 멜빈 길라드를 KO로 이기고 6연패에서 탈출했다.
4. 파이팅 스타일
PRIDE에서의 화려한 타격전이 익숙한 팬이라면 연상하기 어렵겠지만, Shooto 시절의 고미는 레슬링과 G&P를 주무기로 하는 속칭 개비기 스타일의 경기를 하는 선수였는데, 원래 아마추어 레슬링을 수련했기 때문에 일본 무대에서는 수준급의 레슬링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복싱도 해왔기 때문에 안정적인 밸런스에 타격 능력까지 잠재되어 있었고 이것이 폭발한 것이 PRIDE 무대였다.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후천적으로 사우스 포를 연마한 선수이며, 덕분에 가볍게 던지는 듯한 오른손의 위력이 대단했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양산해 낸 KO는 대부분이 라이트 펀치에 의한 것이다. 더불어 안면 맷집이 강하고[15] 체격 조건도 뛰어나기 때문에[16] 스탠딩 타격전에서는 누구에게나 위협적이다.
전성기 시절 가장 큰 약점은 서브미션 방어도가 취약하다는 것과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마커스 아우렐리오, 키타오카 사토루 등에게 당한 패배는 모두 관절기에 당한 것으로, 경기 초반 어이없이 패배한 시합들이었다. 더불어 닉 디아즈와 경기나 허비전 등 초반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도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 고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다만 디아즈의 경우 특유의 좀비 모드와 슬로우 스타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세한 경기를 역전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레슬링도 사각링의 일본 무대에서는 강한 편에 속했지만 올 아메리칸급 괴물 레슬러들이 득실대는 북미에서도 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던 팬들이 많다. 케니 플로리안이 레슬링으로는 UFC 라이트급에서 그다지 강세가 아닌데 이런 플로리안에게 레슬링으로 제압당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레슬링 스킬이 장착되어 있는 UFC에서는 향후 어려운 시합이 예상되었으며, 결국 현실이 되었다.
또한 타격전에서도 정면으로 맞불을 놓는 상대라면 몰라도, 스탭과 밸런스가 좋아 치고 빠지는데 능숙한 상대에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꿔말하면 근거리에서 맷집과 펀치력에 너무 의존하여 싸우는데 익숙하여 기본기와 기술 수준이 뒤떨어지는데, 이점이 특히 네이트 디아즈와의 대결에서 많이 부각되었다. 당시 결과는 서브미션 패지만, 타격전에서 유효타수가 36대 4로 네이트 디아즈에게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다.
더불어 PRIDE의 프로모션과 체급제의 혜택을 받아왔다는 의견도 있는데, 라이트급의 -73kg급이 고미의 체격에 가장 잘 들어맞는 수치라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다. 실제로 고미의 체격은 PRIDE 라이트급에서는 매우 큰 편이었는데, 젠스 펄버와의 경기를 보면 납득이 갈 듯 히다.[17] 굳이 펄버 뿐만 아니라 PRIDE 도산 이후 사쿠라이 하야토와 고미 타카노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라이트급 파이터들이 페더급으로 하향한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18] 또한 반대로 닉 디아즈, 드웨인 루드윅 등 웰터급 선수를 불러놓고 그 선수를 -73kg로 감량시켜서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PRIDE 특유의 프로레슬링 적 요소를 부풀린 환상, PRIDE 빠심으로 오그라드는 과찬 일색이던 김대환이, 해설 때마다 고미에 대해 지나친 과대포장과 미사여구를 쉴새없이 늘어놓으며 아~ 아~ 대단하네요를 연발하던 영향 덕분에 실력 이상으로 후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있다. 물론 그 이상으로 거만하고 재수없어 보이는 승리포즈, 실신한 상대를 레프리를 밀치면서 계속 파운딩 날리는 개매너로 엄청나게 싫어한 팬들이 더 많긴 했다.
또한 고미의 장점이었던 체격은 더 큰 선수들이 널린 UFC에 오자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즉, 근본적인 체격과 힘의 열세를 느꼈는데, 반대로 엇비슷한 체형에게는 스피드와 기량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으며, 고미 본인은 디에고 산체스와의 경기를 통해 근본적인 피지컬 차이를 크게 느꼈던 모양이다.
일본 경량급의 선수층 자체가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얇았다는 것도 있다.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반달레이 실바 등 굵직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던 중량급과 달리, 경량급은 전성기인 PRIDE 무사도 시절조차도 미국의 UFC에 비해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로스터였다.[19] 그리고 이는 PRIDE 도산 이후 경량급 파이터들이 중소단체 선수들에게조차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현실로 드러났다.
왠지 모르게 자신보다 키가 크고 리치가 긴 주짓떼로에게 약한 경향이 있는데, 반대로 키 작은 레슬러 타입 상대로는 극강의 승률을 보였다.
전성기 때는 강철 턱을 가지고 있어서 맷집이 매우 뛰어났고 전성기에서 내려왔을 때도 맷집만큼은 여전히 좋아서 오랫동안 KO 패가 한 번도 없었으나 누적되는 타격 데미지에 UFC 말년부터 맷집이 급격히 쇠락하고 말았다. 일본 자국에서 열린 UFC 대회에서 마일스 쥬리에게 처음으로 KO 당한 걸 시작으로 계속해서 KO 패를 당하며 강철턱에서 유리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UFC 마지막 경기인 마동현전에서 KO 패 당한게 그가 얼마나 맷집이 약해졌는지에 대한 그 예다. 사실 전성기 때도 큰 타격을 여러번 허용하던 편이라서 맷집이 약해질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견된 바였다.
5. 기타
때문에 Sengoku, UFC에서 관광을 당하며 거품론[20]에 빠졌고, 사나워보이는 눈매와 건방진 언동으로[21] 팬들의 반발심을 사기도 했다.[22]하지만 파이어볼 키드[23]라는 링네임답게 매번 화끈한 시합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팬 또한 엄청나다. 마하와의 승부 끝에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PRIDE 챔피언에 올랐는데, 당시 고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의 승리 후에는 거의 전성기의 사쿠라바 카즈시에 필적할 정도의 열광이 있었다.
또한 미칠듯한 판정 퍼레이드와 개비기로 점철되어 거의 폐지 직전까지 갔던 PRIDE 무사도 시리즈의 인기를 다시 되살리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판정이 난무하던 무사도 시리즈에서 홀로 KO 퍼레이드를 양산하면서 무사도 메인이벤트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고,[24] 이는 PRIDE의 웰터급, 라이트급 신설로 이어졌다.
만화도 나왔다.
물론 한국에도 안티와 더불어 많은 팬들이 있다. 거품이건 뭐건 혹은 이기던 지던 대부분 재미있고 화끈한 경기를 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딱 봐도 알겠지만 소문난 대두로, 한국에서는 대갈장군이라고 부른다. 일단 벤 헨더슨, 앤소니 페티스와 체급은 같지만.. 참고로 같은 대두 캐릭터인 티토 오티즈와 친분이 있다고 한다. 아래 UFC 관람 당시 만난 걸 계기로 선물도 주고받고 하면서 친해졌다고.
머리 크기만 보면 헤비급이다.
라이트헤비급 내에서도 대두로 꼽히는 티토 오티즈와 비교해도 작아보이지 않는다.
또한 링네임에 있는 불꽃 이미지 때문에 드래곤볼, 초사이어인 캐릭터와 얽히기도 한다.
대강 이런 거...
승리 후 링포스트에 오르는 세리머니로도 유명하다. PRIDE에서 마커스 아우렐리오가 고미에게 승리를 거둔 후 세리머니를 따라하기도 했다.
일본의 괴짜 파이터 스도 겐키와 의형제 사이라고 한다.
[1]
PRIDE 진출 후 6경기만에 처음으로 나온 판정승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암바를 걸었으나 실바가 필사적으로 버티는 바람에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2]
다만 고미가 그린 카드를 2개나 받을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잡음이 약간 있었다.
[3]
덧붙여서 마커스는 이 경기를 계기로 국내 기사 한정으로 한동안 고미잡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4]
판정의 경우 한국에서는 어쨌든
테이크다운을 2차례 뺏은 마커스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는 의견이 더 많았지만, 일본에서는 링 중앙을 점유하고 이노키 알리 포지션에서 로우킥을 여러 차례 날린 고미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5]
일부 팬들은 디아즈가 안 들어오니 노가드로 도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고미 본인이 인터뷰에서 가드 올릴 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6]
원래 계약상 마지막 경기였다고 한다.
[7]
루드윅 역시 웰터급 파이터였지만 -70kg로 감량하여 경기를 치르게 된다.
[8]
2라운드 다운 이후로는 오히려 고미가 전진 스탭을 밟으며 어그레시브한 모습을 보인 반면 골랴예프는 고미의 전진에 스탭만 밟으며 피할 뿐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9]
초반에는 압도했으나 체력에서 열세를 보이며 후반 크게 밀렸다.
[10]
원래 상대는
조 스티븐슨이었는데 부상으로 그리핀으로 바뀌었다.
[11]
구이다는 카운터 니킥을 얻어앚으면서도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켰다.
[12]
고미가 노가드로 도발하자 댄지그가 이를 받아들여 난타전이 되는가 싶더니 댄지그가 태클을 걸어버렸다. 근데 그걸 또 스프럴했다.
[13]
그러나 경기 이후 카세레스에게 마리화나 성분이 검출되며 무효 처리가 되었다.
[14]
어느 정도였냐면 데이나 화이트와 각종 격투기 웹사이트들 대부분이 고미의 승리를 지지했을 정도. 더군다나 패배한 사람들이 모두 동양 선수들이었기에 이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15]
루이스 아제레도와의 1차전에서는 턱이 돌아갈 정도로 강타를 맞았지만 멀쩡하게 경기를 했다.
[16]
라이트급은 UFC 라이트급 보다 3kg높은 -73kg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평소 체중이 80kg를 넘어가는 고미를 위해 무리없이 감량이 가능한 73kg급을 개설하여 고미가 체격조건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거의 항상 피지컬로 앞서던 것이 가능하지 않았냐는 의견이 다수 존재했으며, 결국 UFC로 이적하고 나서부터는 피지컬의 우위가 돋보이는 경기가 드물었다.
[17]
이건 펄버가 워낙 작은 탓도 있다. 과거 펄버가 챔피언으로 있다가 폐지된 -70kg UFC 라이트급도, 그 이하의 체급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라이트급으로 뛰었을 뿐이다. 실제 UFC 라이트급 시절에도 60kg대 중반으로 경기한 적이 있다. 펄버는 지금으로 보면 페더급에서도 피지컬이 많이 딸리고, 밴텀급은 되어야 적정 체급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펄버는 60kg를 간신히 넘는 체중으로 경기를 뛴 적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현재 최저 체중인 플라이급 경기를 뛰는데도 무리가 없다.
[18]
이시다 미츠히로,
카와지리 타츠야,
요아킴 한센 등등의 선수들이 예로, 모두 원래는 -70kg 체중에서 시합을 했던 선수들이다.
[19]
근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UFC 라이트급에서는 전성기 시절
션 셔크와
BJ 펜이 버티고 있었으며, 케니 플로리안 등과 같은 선수들도 성장하고 있었다.
[20]
그 이전부터 고미는 PRIDE의 프로모션빨로 만들어진 파이터라며 꾸준히 까는 여론이 있었다. 그런데 UFC에 진출하기도 전에 센고쿠에서 상대적으로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파이터들에게 패배을 당하면서 이런 여론이 더 심해졌다.
[21]
사쿠라바 카즈시, 반달레이 실바, 댄 헨더슨 등의 상위 체급 선수들을 언급하며 대결 의사를 밝혔으나, 정작 PRIDE에서 무제한급 GP를 열자 불참을 선언하면서 까이기도 했다.
[22]
다만 고미가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진상스러운 행동들은 모두 치밀하게 계획된 마케팅의 일부이고, 실제로는 매우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사실
BJ 펜이나 디아즈 형제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캐릭터와 실생활이 일치하는 격투가는 몇 되지 않는다.
[23]
국내에선 불덩이 소년으로 번역되었다.
[24]
심지어는 웰터급 GP 당시 웰터급의 일본 스타로 떠올랐던
미사키 카즈오와 웰터급 챔피언인 댄 헨더슨과의 2차전 경기를 비롯한 웰터급 GP 경기들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무명인 데이비드 바론과 메인이벤트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