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고덕수(高德秀) |
이명 | 고덕수(高德洙) |
생몰 | 1900년 5월 13일 ~ ?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시 수옥동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덕수는 1900년 5월 13일 평양시 수옥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했고, 1920년경 중국 지린성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 제1중부지방회 경호부원으로 발탁되어 군자금 모집 및 일제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1920년 음력 5월 8일경 연길현 용지사 토능보에 거주하는 일제 밀정 최병찬(崔秉贊)을 응징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음력 7월 10일경 연길현 상의사 동불사에 거주하는 밀정 박흥준(朴興俊)을 체포하고 동지들과 함께 지인사 흥도자 부근의 계곡에서 처단했다. 또한 음력 7월 10일에는 연길현 상의사 간동에 거주하는 홍재명(洪在明)의 집에서 밀정 이주경(李周京)을 체포하여 처단하였다.이후 연해주 니콜리스크방면으로 피신했으나 두도구(頭道溝)에서 마적들에 의해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용정(龍井)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돌아왔다가 1922년 7월 12일 영사관경찰(領事館警察)에 체포되었다. 1924년 10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살인, 강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7월 6일 가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고덕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