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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0:50:30

경석조

파일:경석조.jpg
성명 경석조(慶錫祚)
혜춘(惠春)
생몰 1881년 6월 27일 ~ 1957년 4월 4일
출생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유하리
사망지 충청북도 괴산군
매장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 청수휴게소 인근 선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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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경석조는 1881년 6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유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5년 만주로 망명해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몇달간 고초를 겪었다. 1919년에는 대동단(大同團) 충북지단장으로 활약했고, 1924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에서 고사연구회(古事硏究會)를 조직해 독립을 위한 사상적·학문적 연구활동을 전개했다. 1929년에는 한족지하연합회(韓族地下聯合會)를 결성하여 중앙 총무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기밀부장에 피선되었다. 1944년에는 중국 국민당에 입당하여 재만동포의 재산 보호에 힘썼다.

8.15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온 경석조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2월 12일 반민특위를 충북도조사부를 설치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충북조사부는 1949년 3월부터 8월까지 영장 발부 33건과 당연범 7건 등 40건을 취급해 19명을 체포하고 5명은 무혐의 처리했으며, 26명을 송치시켰다. 이 중 피의자로 전환된 이는 12명이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정부와 경찰의 압력으로 해산되어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괴산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연병호에게 패했고, 1957년 4월 4일 괴산군에서 병사했다. 그의 유해는 괴산군 연풍면 척석리 청수휴게소 인근 선영에 매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경석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