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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5-11 23:28:15

겐나디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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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년~598년 598년~611년 611년~629년 629년~647년
겐나디우스 1세 대 헤라클리우스 니키타스 그레고리오스
647년~665년 665년~695년 695년~698년 698년~709년
겐나디우스 2세 엘레우테리오스 요안니스 돈 훌리안 }}}}}}}}}}}}}}}

이름 겐나디우스
(Gennadi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아프리카 총독

1. 개요2. 생애

1. 개요

동로마 제국 아프리카 총독부 초대 총독.

2. 생애

578년경 아프리카 속주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을 맡았다. 비클라이오스의 요안니스가 저술한 연대기에 따르면, 무어인들을 격파하고 3명의 로마 장군을 죽인 무어 왕 가뮬레스를 손수 죽였다고 한다. 또한 <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고대 라틴어 비문 모음집)>에는 그와 관련된 2개의 비문이 실려 있다. 첫번째 비문에서는 티베리우스 2세 휘하의 파트리키오스이자 군대 사령관으로 언급되었고, 두번째 비문에서는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파트리키오스이자 명예 집정관으로 언급되었다. 이에 따르면, 그는 티베리우스 2세 시대에 파트리키오스이자 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마우리키우스 황제 시대에도 파트리키오스의 지위를 유지했고 명예 집정관을 수여받았다.

그가 언제부터 아프리카 총독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하지 않다. 다만 589년에 또다시 반란을 일으킨 무어인들을 토벌했다는 것을 볼 때, 그 즈음부터 총독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591년 7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서한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총독으로 불렸다. 그는 총독을 맡는 동안 그레고리오 1세로부터 여러 서신을 받았다. 교황은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의 행정 문제에 관여했고, 북아프리카에 횡행하는 이단 도나투스파를 근절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으며, 누미디아 대주교구의 비리를 감찰해달라고 촉구했다.

595년에 또다시 무어인들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598년 9/10월에서 600년 7월 사이에 총독직을 은퇴하거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 헤라클리우스( 이라클리오스의 부친)가 후임 총독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