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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목록/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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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내

2.1. 국가대표

2.2. 프로축구


3. 해외

3.1. FIFA 월드컵

이 와중에 이탈리아는 1934년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만큼은 5점차 이상 득점 경기가 없다.

3.2. 기타 국가대항전

3.3. 클럽 축구

3.3.1. 프리미어 리그

3.3.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3.1.2. 첼시 FC
3.3.1.3. 아스날 FC
3.3.1.4. 리버풀 FC
3.3.1.5. 토트넘 홋스퍼 FC
3.3.1.6. 에버튼 FC
3.3.1.7. 리즈 유나이티드
3.3.1.8. 블랙번 로버스
3.3.1.9. 아스톤 빌라 FC
3.3.1.10. 더비 카운티 FC
최종 성적 1승 8무 29패, 승점 11점, 20득점 89실점, 득실차는 -69
원정 무승, 홈 및 원정 최다 패배, 홈 및 원정 최소 득점과 최다 실점
시즌 첫 번째 해트트릭 허용팀(VS 아스날 FC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선수에게 한 시즌 동안 해트트릭을 두 번 허용한 팀(VS 아스날 FC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해당 시즌 한 경기에서 한 선수에게 시즌 최다골 허용팀(VS 첼시 FC 프랭크 램파드, 4골 허용)
시즌 두 번째로 빠른 골 허용팀( 버밍엄 시티 FC의 캐머런 제롬, 32초)
리그 최저 클린시트( 버밍엄 시티 FC와 동률, 3회)
3.3.1.1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3.3.2. 라리가

3.3.2.1. FC 바르셀로나

3.3.3. 세리에 A

3.3.3.1. AC 페루자 칼치오
3.3.3.2. ACF 피오렌티나
3.3.3.3. AS 로마
3.3.3.4. 토리노 FC
3.3.3.5. 유벤투스 FC

3.3.4. 분데스리가

3.3.4.1.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3.3.4.2. 샬케 04
3.3.4.3. 베르더 브레멘

3.3.5. 기타

3.3.6. 대륙간 클럽대항전

3.4. 개인

3.5. 기타



[1] 사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도 않은 절대적으로 빈곤한 여건에서도 지역예선에서 일본에 압승을 거두었고 본선 상대팀들이 당시 세계최강 헝가리와 강호 터키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선전이었다. 해외 언론에서도 20-0 수준의 결과를 예측했지만 고작 9-0으로 끝난 것에 경악했다. 오히려 키퍼에게 대단하다며 사인을 받아간 관중도 있었다. [2] 당시 세계최강으로 불렸던 헝가리 대표팀과 지역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스페인을 물먹이고 본선에 올라왔던 터키 대표팀을 상대로 제대로 준비조차못하고 전쟁으로 인해 대회 개막일에 겨우 도착했던 대표팀이었기에 (지금은 생각할수도 없는 배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거쳐서 겨우겨우가고 여정중에 일부 경비는 인심좋은 외국분들이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임을 알고서는 기부를 해줘서 그나마 당일에라도 도착이 가능했다.) 비록 큰 점수차로 패하긴 했어도 지금같은 기준으로 졸전이라고 성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조금만 더 잘 준비가 되었다면 터키전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해볼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도 있었다. 여담으로 불과 7년후인 1961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던 친선전에서는 접전 끝에 0대1로 석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3]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골대를 비우고 나온 골키퍼 최인영의 키를 훌쩍 넘기는 로빙슛으로 실점, 스페인 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미첼에게 해트트릭 허용, 그래도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는 선전했다고 볼 수 있으며, 막판에 나온 다니엘 폰세카의 결승골도 사실은 오프사이드였다. 그래서 규정대로라면 남은 시간동안에 추가로 골이 나오지 않는 이상 0-0으로 끝나는게 정상인데, 주심과 부심이 그 골을 그대로 득점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0-1로 진 것이다. [4] 지금으로 치면 내셔널리그 선수 위주로 짜서 보낸 것. 참고로 당시에는 B팀이라고 불렀다. [5] 여담으로 당시 이 사태에 AFC에서 화들짝 놀라 모든 대회(아시안컵 예선, 본선, 월드컵 예선 등)에 무조건 A대표팀을 구성해 참여하도록 강제규정했다고 한다. [6] 이는 선수들이 일부러 8강 상대가 이란인점을 감안해서 자신들을 들들볶던 박종환감독을 내쫓으려고 고의로 태업을 했다는 소리가 있다. 전반전에 2:1로 앞서가다 후반에 갑자기 5골을 먹히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라 거의 태업 의혹이 있지만, 여전히 말로만 나타날 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태업이다, 아니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7] 골키퍼와 3대 1로 맞선 득점 찬스에서 이관우가 무리하게 슛을 했다가 골키퍼 로버츠의 선방으로 득점 찬스를 허무하게 놓쳤다. [8] 그런데 16강전에서 브라질이 벨기에를 0:10으로 바르면서 묻히긴 했다. [9] 현재까지도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월드컵이 없어질 때까지, 아니, 지구에 종말이 올 때까지 깨지기 힘들 월드컵 본선 최단시간 실점 신기록이다. 그리고 당시 선수로서 발로 흑역사를 만든 홍명보는 12년 후 감독으로서 총제적인 난국으로 팀을 운영하다 결국 월드컵에서 큰 참사를 겪고 만다. [10] 그것도 김영권의 어이없는 볼 컨트롤 실수를 레자 구차네자드가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 실수로 김영권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의 장현수 이상으로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씹히고 뜯기고 까였다가 그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선취골을 성공시켜 평생까임권에서 벗어났다. [11] 여기에 출정식 초대가수로 하필이면 당시에 일베 관련 문제로 말이 많았던 전효성이 포함된 시크릿이 아주 상큼발랄한 곡을 부르는 바람에 안그래도 험악한 분위기에 제대로 얼음을 들이부었다. 당시 분위기를 보면 이란한테 그렇게 셧아웃 당하고 우즈벡은 마지막까지 계속 득점하면서 겨우겨우 골득실 1 차이로 진출하여 경기 후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으로 축제분위기 였어야 할 경기장의 분위기는 축제는 커녕 아주 초상집이 따로 없었는데, 경기 후 출정식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온 대표팀 선수, 코칭 스태프는 물론 축협 회장까지 누구하나 기쁨의 제스쳐는 커녕 웃는사람 한명 없었으며 특히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한명한명 호명될때마다 다시 나오는데, 여기서 푸른심장이니 철벽 수문장이니 새로운 바람이니 하는 게임에서도 쪽팔린다고 안 쓰는 거창하고 오글거리는 미사여구를 붙여서 선수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탓에 공개처형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관중들도 기쁨의 함성은 커녕 자신들이 현장에서 이란한테 굴욕적 패배를 한 결과에 대한 분노와 이런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도 월드컵에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건지에 대한 걱정등으로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초대가수랍시고 축구랑 별 관련도 없는 시크릿이 나와서 유후 같은 곡을 불러대는데 흥이 날 리가... [12] 참고로 일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과거의 참패와 같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적어도 과거의 선배들은 이 당시의 선수들과 비교하는 것 초자 큰 실례일 정도의 투지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싸웠다. 비록 대량 실점으로 패배했지만 일제감정기와 전쟁의 상처가 전혀 아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였던 헝가리를 상대로 멍투성이가 되어도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웠던 1954년 월드컵,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약체였지만 그래도 강팀이 포함된 조에서 그나마의 최선의 모습을 보였던 1990년 월드컵, 강팀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면서도 이마가 깨져도 붕대를 감고 몸을 날리면서까지 상대의 슈팅을 막아낼 정도의 투지와 강한 의지를 보여준 1998년 월드컵과 비교하는 건 선배들의 대한 모욕이자 큰 실례이다. [13] 다만 이 패배 이후 연전연승하면서 결국 금메달을 거머쥐어 쓰지만 좋았던 약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14]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샤샤는 K리그 MVP가 유력했음에도 그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했고, 결국 K리그 MVP 준우승팀인 부산의 안정환에게 돌아갔다. [15] 이건 사실 후술할 사건을 생각하면 페이크 국치일이다(...). [16] 장현규는 자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사망하였다. 기사 링크 [17] 하필 관중석에서 내는 소리가 선수들에게 잘 들릴 수밖에 없는 2군 경기였다(...). [18] 아르헨티나는 같은 남반구 국가인 브라질과 달리 열대 기후가 아니기에 개최 기간에는 당연히 겨울 날씨를 느낄 수 있다. [19] 특히 승부차기의 첫번째 키커였던 프랑코 바레시 역시 바조와 똑같이 슛이 크로스바 위를 넘겼다. 그런데 바조가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선수인지라... [20] 이후 바조는 다음 월드컵 8강전인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의 첫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하여 지난 그 승부차기에서의 실축을 설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그 승부차기에서 3:4로 져서 떨어졌다. [21] 참고로 이 사건 이후 "자살골"이라는 용어가 "자책골"로 바뀌었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 한정이며, 영어로는 현재도 "Own Goal"이다. [22] 대부분의 월드컵 경기는 현지시각 기준으로 오후 6시 이후에 열린다. [23] 같은 아시아팀인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승점자판기였지만 이쪽은 약체인데다가 우승국인 브라질과 다크호스 터키를 만나서 그나마 변명거리는 있다. [24] 근데 우즈베키스탄은 오심을 항의하면 1대0인거 3대0 몰수승으로 올라갈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싹 다 비겨서 밀렸으니 할말도 없다. 그런데 바레인도 플레이오프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만나 패해서 월드컵에 못갔다. [25] 바로 다음 대회에서 졸전만 펼치다가 처참하게 탈락한 이탈리아도 오세아니아 팀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패배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26] 이것은 마테라치가 지단의 여동생을 들먹이는 패드립발언 때문이다. [27] 참고로 디펜딩 챔피언의 월드컵 조별리그 2경기만의 탈락은 이것이 최초였다. 1966년의 브라질과 2002년의 프랑스 그리고 2010년의 이탈리아 등은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치르고 나서야 탈락이 확정되었었다. [28] 2017년 새해가 다가왔을 때, 그 선수는 2017의 1을 브라질 국기로, 7을 독일 국기로 바꿔서 새해 인사를 올렸다가 다음 해에 열린 월드컵 때, 독일이 한국한테 0:2로 져서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2018의 2를 한국 국기로, 0을 독일 국기로 바꾼 것을 담은 조롱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그리고 2019년 새해가 되자 또다시 2019의 2를 한국 국기로, 0을 독일 국기로 바꾼 것을 담은 메시지까지 날아왔으며, [29] 그 전까지는 196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이 1966년 월드컵에서 1승 2패에 4득 6실로 탈락한 것이 디펜딩 챔피언이 거둔 최악의 기록이었다. [30] 1966년의 브라질 - 4득점 6실점
2002년의 프랑스 - 무득점 3실점
2010년의 이탈리아 - 4득점 5실점
2014년의 스페인 - 4득점 7실점
2018년의 독일 - 2득점 4실점
[31] 참고로 이것이 미국의 경기 중 유일한 슈팅이었다. [32] 이전 대회의 결과는 1:0 연장승으로 우승. [33] 이전 대회의 결과는 2:1 승. [34] 2002년 핀투,베투, 2006년 코스티냐, 데쿠, 2010년 히카르두 코스타, 2014년 페페. [35] 당시 대표팀 감독은 루이 판 할이었는데, 12년 후 대표팀에 돌아와서는 네덜란드를 전체 3위로 올려 놓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36] 옐로 카드(경고), 레드 카드(퇴장) [37] 다만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에게 밀려 조 3위로 예선 광탈했다. [38] 現 인도네시아. 1949년에 독립했다. [39] 2차 라운드(현 16강~8강 정도)에서 나온 결과,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 [40] 심지어 이 기록은 조별리그도 아니고 무려 월드컵 4강전(준결승)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독일이 터뜨린 7골 중 4골이 불과 6분 사이에 한꺼번에 터졌다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가히 미네이랑의 비극이라고 불릴 만했다! [41] 그러나 스페인은 이 대승을 거두고도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게다가 그 경기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고 그 경기를 치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탈락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42]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지리아가 파라과이와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었어도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43] 이 대패 때문에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도중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44] 다만 스웨덴도 멕시코만큼은 아닐지언정 외신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한 몸으로 받았다. [45] 오죽했으면 분노한 자국 팬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고국에 들어가는 꺼려했다고. [46] 후반 40분경 유벤투스 팬들은 자신들의 응원걸개를 걷고 "K리그에서 다시 만나요!" 라는 문구가 새겨진 걸개를 걸었다. [47] 에버튼의 핵심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 브레멘의 간판 수비수 페어 메르테자커, 이스라엘의 미드필더 요시 베나윤, 브라질의 풀백 안드레 산토스 등이 2:8 패배 이후 곧바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영입된 선수 중에는 대한민국 출신의 스트라이커 박주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그야말로 왜 아스날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활약을 펼치다 셀타 비고, 왓포드로 임대되었으며, 임대된 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 했다. 그대로 계약 만료로 아스날을 떠났다. 이것만이라면 그저 그런 먹튀의 사례로 남았겠지만... 문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고 박주영의 군역이 면제되며 시작되었다. 언론을 통해 박주영의 이적료에 군 문제 해결시 추가금을 지급하는 옵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 한국 언론에 이 기사가 소개되자 인터넷은 IQ 150의 천재와 경제학 석사의 수싸움에서 경제학 석사가 졌다며 드립판이 벌어졌다. 실제 박주영의 이적료는 옵션을 모두 포함해도 썩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아스날 내에선 고액에 해당하는 주급[67]을 수령하는데다 활약은 전무했다. 즉 통수+주급도둑+실력부족의 삼위일체. 더욱 문제였던 것은, 같이 영입된 안드레 산토스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나마 산토스는 팀을 일찍 떠나기라도 했다. 다만 이 시즌의 영입은 박주영과 산토스를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아르테타, 메르테사커는 장기간 좋은 활약을 하다 현재는 아스날의 감독과 유소년팀 총괄자로 근무중이고, 베나윤 역시 쏠쏠한 활약을 했다. [48] 게다가 22년만에 최악의 라이벌 토트넘보다 최종 리그 순위가 낮아졌다. [49] 특히 아스널이 떨어진 바로 다음 날 FC 바르셀로나 1차전에서 원정골도 못 넣고 0대4로 패한 걸 뒤집는 미친 경기를 보여줘서 더더욱 안습하게 되었다. [50] 당초에 벵거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떠나려고 했으나 벵거 사임 이후 대비가 전혀 안된 보드진이 2년 재계약을 요청했다. [51] 공교롭게도 일정상 카라바오컵 결승 며칠 후 또 맨시티와 리그에서 붙었는데, 그 경기도 0대3으로 졌다(...). [52] 심지어 이 당시 첼시는 이미 챔스 진출이 확정되어 있었다. 동기부여는 당연히 이겨야만 챔스에 나가는 아스날이 더 높았을텐데 결과는... [53] 그나마 이 시즌은 박주영과 산토스, 제르비뉴 정도만 망했지, 아르테타, 메르테사커, 베나윤, 체임벌린 등은 나른대로 활약했다. [54] 노리치와의 FA컵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라이프치히와의 챔스 16강에서는 1, 2차전 모두 패배, 합산 4:0으로 탈락했다. [55] 팀내외의 내홍이 심하여 최종순위 22위를 찍으며 3부리그로 강등당했다. [56] 전 구단주. 1년에 6명씩 감독 목을 심심하면 잘라대서 팀을 흔들리게 했고, 자신의 전 구단이던 카타니아 출신 잉여들을 영입했고, 조세포탈 등으로 징계를 먹고, 그 외에도 다양한 막장행각 때문에 FA가 구단주와 관련한 새로운 규정들을 추가할 정도로 심각한 인물이었다. [57] 맨시티는 2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에 우승했고, 레스터 역시 3번의 강등을 겪은 이후 우승했다. [58] AC 밀란이 상대였는데, 그 당시 감독이던 요한 크루이프 입을 잘못 털다가 4:0으로 패하는 추태가 벌어졌다. 특히 크루이프가 조롱했던 마르셀 드사이에게 골을 먹힌 것은 덤. [59] 브라질의 SC 인테르나시오나우에 0대1로 패배. [60] 이전의 3점차 이상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오늘도 무사히' 식의 승리가 더 많았다. [61] 위의 칼치오폴리와는 달리 단장이 아닌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 승부조작 사건이다. [62] 이 판정으로 인해 당시 주심이었던 루보스 미첼은 경기 후 첼시 팬들의 잇단 협박성 항의를 받고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63] 그 중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가 연루되어있다. [64] 다만 폭행한 정치인이 푸틴의 남자라고 알려진 만큼 측근 오브 측근이라 국가대표 커리어는 끝장난 상태. [65] 그가 듣보잡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부터 그는 웨일스 대표팀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서 참조. [66]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활약하여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거스 히딩크의 마음에 들지 않고 팀의 색깔과 다르게 행동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월드컵 개최 직전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또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주전이 아닌 후보였고 실제 뛴 경기시간이 몇분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짧은 몇 분 조차도 본인이 이른바 물회오리슛, 카페베네슛으로 비아냥당할 역대급 실책으로 말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