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16:18:30

흑역사/목록/농구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흑역사/목록
흑역사의 목록
문화와 예술 음악 · 게임 · 만화 & 애니메이션 · 성우 · 영화
스포츠 축구 · 농구 · 야구 · 배구 · 미식축구 · e스포츠
사회 언론 · 군사 · 학술



1. 등재 기준

토론 합의에 따라

토론 합의에 따른 정리 작업 진행중입니다. 삭제된 내용을 복구할 경우 위 등재 기준에 맞다는 출처를 첨부하십시오.

2. 대한민국

2.1. 한국프로농구

2.1.1. 원주 DB 프로미

2.1.2. 부산 kt 소닉붐

2.1.3. 서울 SK 나이츠

2.1.4.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1.5. 안양 KGC인삼공사

2.1.6.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1.7.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1.8. 창원 LG 세이커스

2.1.9. 전주 KCC 이지스

2.1.10. 서울 삼성 썬더스

2.2. 한국여자프로농구

2.2.1. 인천 금호생명 팰컨스 -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 - 구리 KDB생명 위너스 - OK저축은행 읏샷 - 부산 BNK 썸

2.2.2. 청주 KB 스타즈

2.2.3.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2.2.4. 아산 우리은행 위비

2.2.5. 현대 하이페리온 -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2.2.6. 부천 KEB하나은행

2.3. 기타

3. 미국

3.1. NBA

3.1.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3.1.2.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3.1.3. 뉴욕 닉스

3.1.4.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3.1.5. 마이애미 히트

3.1.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3.1.7. 보스턴 셀틱스

3.1.8. 브루클린 네츠

3.1.9. 샬럿 호네츠

3.1.10. 샌안토니오 스퍼스

3.1.11. 시애틀 슈퍼소닉스

3.1.12. 시카고 불스

3.1.13. 올랜도 매직

3.1.14. LA 레이커스

3.1.15. LA 클리퍼스

3.1.16. 애틀랜타 호크스

3.1.17. 워싱턴 위저즈

3.1.18. 인디애나 페이서스

3.1.1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6-17시즌 이후로 계속 홈콜 논란이 있다

3.1.20.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1.21.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3.1.22. 휴스턴 로켓츠

3.2. 국가대표

그럼에도 워낙 미국과 비미국의 격차가 커서 압도할 순 있었지만 문제는 1988년, 소련 팀을 이끌던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미소간의 갈등 때문에 1985년에 드래프트에서 지명되고도 NBA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세계적인 센터 중 하나였다.[43] 부상에서 회복 중이었음에도 팀에 합류한 사보니스는 훗날 NBA에서 슈퍼스타가 되는 데이비드 로빈슨과의 매치업에서 우세를 점하며 미국을 준결승에서 82대76으로 꺾고, 결승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으며 우승을 거둔다.
뮌헨 참사와 달리 실력에서 철저히 밀리며 패배해 결승에도 못 오른 미국 대표팀의 충격은 엄청났고, 이는 미국이 자국의 프로들을 올림픽에 합류시킬 수 있도록 로비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1989년에 모든 프로선수들의 올림픽 농구 참가가 허용되며 드림팀이 출범하게 되고, NBA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이끌던 이 팀은 92년 올림픽에서 전설을 쓰게 된다.[44] 여담이지만 88년 대회에서 쓴맛을 봤던 로빈슨은 드림팀의 멤버로 당당히 합류, 4년 전 자신에게 굴욕을 줬던 사보니스의 리투아니아 팀(소련 해체 후였으므로)과 4강에서 만나 127대 76으로 박살내며 복수를 하게 된다.[45]

3.3. 대학농구


[1] 추가하고자 할 경우에는 토론으로 통해 합의를 하고 기준안을 제시해야 한다. [2] 이미 이전날 우지원이 팀동료들의 몰아주기로 3점슛을 두자리수로 넣으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고했다. [3] 정상적으로 한게 아니다. 상대팀 전자랜드 선수들이 레이업등 건성으로 슛을 날려 블록하기 쉽게 협조했다. [4] 앞에서 언급한 김주성, 정훈과 함께 한경기서 3명이 동시에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유일한 경기가 되었다. [5] 포틀랜드 C.J.맥컬럼의 형이다. 동생과 반대로 NBA 문턱도 못갔다. [6] 당연하다. 야오밍은 CBA와 비교도 안되는 NBA에서도 한 경기 8개 블록을 기록한 경기가 있으며 CBA에서 마지막 시즌 평균 기록이 32.4점 19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72.1%였으며 포스트시즌 기록은 38.9점 20.2리바운드 76.6%였다. 한 마디로 CBA는 당시 야오밍의 놀이터였으며 본인의 실력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7] 경기시간을 12분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감독 및 여론의 반발로 보류하였다. NBA도 경기당 6~70점대 득점이 나올 정도니까. [8] 코리아텐더 전체로 따지면 단 120경기 만에 KTF에 매각되었다. [9]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와의 2차전을 끝으로 KTF의 이름을 달게 되었다. [10] 이는 KBL 사상 최초로 6위 팀이 6강 PO에서 3위 팀을 3전 전승으로 이긴 첫 기록이다. [11] 샷클락 24초 기계만 돌아가고 경기시간은 멈춰 있었다. [12] 파이널 6차전이 불과 몇시간 뒤였다. 그리고 재경기에서 동양은 5차전 결과 무효, 지금 6차전으로 예정된 경기를 그대로 5차전으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TG에서는 5차전 무효는 받아들이되, 곧 벌어질 6차전도 취소시킨뒤 5차전 도중 갈비뼈 부상을 당한 허재가 다 완쾌되고나서 원주에서 5차전을 다시해야 한다는 무리수 주장 때문에 여기서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3] KGC의 키퍼 사익스도 재계약을 거부하고 터키 2부리그 팀과 계약하면서 5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긴 했지만 2016-17 시즌 맹활약했고 시즌 중에도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아쉽다는 반응이 컸을 뿐, 비난까지 받지는 않았다. KGC가 시즌 도중 사익스 교체 이야기를 꺼내며 간보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팬들은 구단을 비난하고 사익스에게는 다른 리그로 가서 잘하라고 격려를 보냈다. 결정적으로, 키퍼 사익스는 KGC가 터키 구단으로부터 바이아웃 금액 10만불을 다 받고 보냈다. [14] 이 시기에는 후술한 대로 임시 홈구장 살이를 하면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연고지 이름만 안양일 뿐 실질적으로는 여기와 같은 신세였기 때문이다. 관중몰이가 될래야 될 수가 없었던 것. [15] 표면적으로는 정덕화 감독이 선언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단 철수를 주도한 것은 당시 코치였던 이상범. 시즌 종료 후 징계가 완화가 되었지만 이상범이 당시 정덕화보다 징계를 더 무겁게 먹었던 것이 이 때문이었다. [16] 그래도 상대팀 선수+심판을 코트에서 가격한 것은 어떻게 봐도 용납될 만한 일은 아니다. 사건의 정확한 순서는 장영재의 파울에 흥분하며 장영재의 목을 밀쳐 쓰러뜨림→팀 동료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에게 다가가 심판마저 밀쳐 넘어뜨림. 이후 코칭스탭 및 선수들이 말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더 큰 난동을 부렸을 상황. [17]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오정연과의 이혼 소송까지 있었다. [18] 이 당시 외국인 선수상이 폐지된 상태였고 정규리그 MVP는 오로지 국내선수들에게만 준다는 것이 기자들의 불문율이었다. 그 결과 2013-14 시즌 정규리그 MVP는 문태종이 수상하였다. [19] 사실 삼성 입장에서도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데려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달라고 했으나 KCC에서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KCC에게는 잘 된 일이었지만. [20] 물론 이상민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도 보호 못하는 KCC과 KBL의 거지같은 행정이 최악의 형태로 드러난 점에서 흑역사인 것은 맞다. [21] 서장훈이 트레이드된 배경에는 당시 "팀내 불화"라는 루머가 크게 퍼져 있었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CC는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하승진을 지명했는데, 처음에는 서장훈과 하승진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었기에 둘다 보유하려 했다. 그러나 KBL에서 가장 크고, 가장 느린 두 선수가 동시에 뛰는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팀은 당연히 더 젊고 신체조건이 월등한 하승진을 택했고, 서장훈을 트레이드하는 결과가 나온 것. 이 트레이드에 대해 감독인 허재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당시에 입을 열었는데,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서장훈이 먼저 조용히 감독실에 찾아와 자신이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팀으로 먼저 이적 요청을 해서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였다고 한다. 트레이드 요청을 한 이유는 서장훈 본인이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하승진의 자리를 뺏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하며 허재 감독이 서장훈의 이 의견을 받아들인 거였다고.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를 통해 KCC가 뎨려온 선수가 바로 강병현이었으며, 결국 이 트레이드의 결과는 우승이었다. [2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사실 하승진의 키는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면 당연히 면제였지만 병역 기준이 점점 강화되면서... [23] 당시 나오는 선수 중 최대어가 무려 현주엽이었다. [24] 이는 2015-16시즌 KGC와의 6강 2차전까지 9연패로 이어졌다. [25] 아닌게 아니라 당시 삼성이 한창 부진했을 때 네이버 검색창에 돌상민을 치면 아예 자동검색어로 뜨기까지 했다. [26] 19-20시즌 2, 3, 5라운드 패배 [27] 이는 며칠 전인 12월 23일 창원 LG 세이커스3쿼터에만 낸 39점보다도 적다. [28] 허재는 몇 개월 후 술로 인해 사고를 치게 되는데,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체포 후 포승줄에 묶이는 망신을 당한다. [29] 참고로 '목장훈 사건' 즉, 서장훈이 목에 보호대를 차게 된 계기는 이날 부상이 아니라 김주성 항목에 나와있는 주성타 때문이다. [30] 단 재능하나는 무시무시해서 무단이탈뒤 복귀할때 연습량 부족에도 상관없이 경기때마다 엄청난 활약을 한다. [31] 1순위 케년 마틴, 19순위 자말 매글로어, 43순위 마이클 레드인데 재밌게도 다 2004년에 유일하게 출장했다. 그나마 마틴은 당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었으며 이후 맥시멈 계약도 따냈고(그러나 계약 이후 성장이 딱 멈췄다;;), 레드도 이후 평균 26점까지 올리는 등 레이 알렌에 이은 차세대 고득점 고감도 슈터로 성장하고 있다가 부상으로 커리어가 점점 무너진 케이스지만 매글로어는 진짜 평범 그 자체였다. 최고기록이 13.6점 10.3리바운드에다 수비능력도 지극히 평범하고 커리어 절반 이상을 후보선수로 뛴, 애초에 올스타급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 그가 선발된 건 순전히 그의 포지션이 센터였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는 센터기근의 시대였고, 그나마도 샤킬 오닐 야오밍이 서부에 있는지라 동부에서는 후보센터로 선발할만한 센터가 벤 월러스를 제외하곤 정말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매글로어가 선발된 것. 여담이지만 2004년 올스타전에는 이때만 유일하게 올스타에 선발된 선수들이 유독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이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어서 뽑혔다가 이후 성장세가 멈췄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위에 언급된 셋 외에도 메타 월드 피스(...), 안드레이 키릴렌코가 있다. 다만 샘 카셀의 경우 이때가 커리어 말년이었지만, 그동안 좋은 커리어에도 올스타가 한번도 없었던 것에 대한 공로상+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엄청난 상승세 덕분에 선정. [32] 당시엔 높이 평가받았으나 까놓고 보니 실제 실력이 형편없었던 케이스. [33] 역대 1위는 1985년이었는데, 이게 2009년 랭킹이기 때문에 이때 이미 A를 받은 2003년 클래스들의 활약이 더해진 현재 랭킹을 메긴다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고로 왜 역대 최고 드래프트라고 널리 알려진 1984년이 없냐면 이건 드래프트 로터리 제도 시행 이전이기 때문이다. [34] wins above replacement player. 대체 선수가 있다고 가정했을때, 그 선수보다 얼마나 더 많은 승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보는 수치. 이게 마이너스면 심각한 거다... [35] 물론 여기서 괜찮다는 건 이 클래스 기준으로 괜찮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터콜루는 올랜도 매직에서 준수한 활약을 해줘서 토론토와 거액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망했고(계약 이후 11.4점이 최고 기록), 매글로어는 위에 언급된 대로 평범 그 자체였으며, 레드는 실력은 나무랄데 없는 올스타급 이상이었지만 안타깝게 부상 때문에 고생하다가 만32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36] 여담으로 크로포드는 NBA 데뷔한지 10년이 지난 이후에야 처음으로 슛연습을 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타고난 재능에만 의존하고, 노력을 안하는 게으른 천재로 악명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슛거리와 슈팅력, 드리블 실력으로 활약했으나 기복도 심해 "자멸" 크로포드란 멸칭이 한국 팬들 사이서 돌 정도. 그러나 노장이 되면서 연습도 하기 시작하고 (...) 베테랑 득점원의 역할을 톡톧히 해주면서 의외로 롱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말년에 식스맨 상을 수상했는데 그가 전성기 때도 주전급~식스맨급 정도의 기량이었단 걸 생각하면 그 정도 실력을 만 36세가 되어서 보였단 건 정말 놀라운 일. [37] 이게 만약 정규시즌 우승도 우승으로 치는 KBL같은 리그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겠지만 NBA는 정규시즌 1위는 시상도, 호칭도 없는 리그다. 심지어 동서부 챔피언이라는 칭호도 플레이오프 성과로 얻는다. 즉, 겨우 플레이오프에 턱걸이 진출해도 기적적으로 파이널에 오르면 각 컨퍼런스 챔피언으로 기록되고 트로피를 받는다. 반면 82승 0패를 해도 1라운드 탈락하면 그 팀은 아무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디비전 챔피언"이인 하지만, 한 시즌에 6개 디비전 1위한 팀이 전부 받는 칭호인데다 주요 이력으로 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기존 기록은 72승을 세우고 우승한 시카고 불스는 신기록을 기념하는 우승기 (banner)를 커다랗게 제작해 당당히 경기장 천장에 걸어놨지만, 워리어즈는 깃발을 제작하지 않고 기념 판데기 하나 제작해 연습시설에 걸어놨다.물론 이 팀은 파이널에 올랐기 때문에 2016년 서부 챔피언이긴 하다. [38] 당시는 생긴지 얼마 안되던 NBA가 인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성과가 조금씩 나오던 시기였는데 이 사건이 찬물을 확 끼얹는다. 이 경기의 임팩트는 고작 한 경기 때문에 농구 본연의 규칙을 고쳐야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39] 2003년 NBA 올해의 경영자에 선정될 정도로 배드보이즈 시즌 2의 구축까지는 성공적이었으나, 해체 후 팀 재건 과정에서 실책을 연발했다. 2014년에 사장에서 사임했다. [40] 스티븐 잭슨 30경기, 저메인 오닐은 25경기 출장정지. 맥주컵을 던진 관중은 영구 출입 금지 조치. [41] 물론 이 클래스 최고의 선수는 조던이고 역사를 아는 상태라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조던을 뽑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최고보다 못하다고 흑역사로 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42] 2011~12 시즌에 샬럿 밥캣츠가 7승 59패 승률 0.106을 갱신했지만, 이는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이라서 그런 것이다. [43] 사보니스는 맨발 221cm의 장신임에도 엄청난 운동능력과 더불어 수비력, 슈팅력, 패스, 드리블 능력을 겸비한 만능센터였다. 결국 1995년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합류하지만 이미 만 31세에 가까웠고 큰 부상을 당한 이후였기 때문에 전성기보다 현저히 못한 모습을 보였다. 농구 기자 빌 시몬스는 사보니스가 "마치 콘크리트 농구화를 신고 움직이는 듯 했다"고 묘사했으며, ESPN의 데이빗 쏘프는 만약 사보니스가 젊었을 때 NBA에 왔다면 역사상 가장 패스를 잘하는 빅맨으로 기록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대 센터랭킹 톱4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쏘프가 구체적으로 누구보다 위라고 하진 않았지만 보통 가장 위대한 센터 톱3로 꼽히는 선수들은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이며(참고로 이들의 MVP수상 횟수는 각각 5회, 4회, 6회이며 우승횟수는 11회, 2회, 6회. 체임벌린은 우승은 좀 딸리지만 개인기록은...항목 참조) 이 평대로라면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이나 3연속 MVP를 수상한 모제스 말론같은 괴물들보다 사보니스가 더 잘했을 것이라 봤다는 것. 90년대 블레이저스의 리더였던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사보니스가 합류했다면 포틀랜드가 "장담컨데 4,5개, 심지어 6개의 반지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여담이지만 드렉슬러가 트래이드된 이후 사보니스가 팀에 합류해서 둘이 같이 뛴 적은 없다. [44] 팀의 공동주장이었던 래리 버드는 드림팀이 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손쉽게 우승을 거두고 난 뒤 "이는 바르셀로나로 가서, 금메달을 따고 그 합당한 자리로 돌려놓는 여정을 향한 작은 발걸음일 뿐입니다.("This is just a small step toward going to Barcelona, winning the gold medal and bringing it back where it's supposed to be.")라고 말했다. "합당한 자리"라는 워딩에서 미국인들이 자신이 종주국인 농구에 대해 갖는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45] 또 다른 88팀 멤버인 미치 리치몬드는 역대 최강의 센터진 (오닐, 로빈슨, 올라주원)을 자랑하는 1996년 드림팀에 합류해 역시 손쉽게 금메달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예선전서 리투아니아를 만나 104대 82로 손쉽게 승리를 거둔다. 다만 안타깝게 1988년 팀의 다른 멤버들은 설욕의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는 1990년대 미국 대표팀이 왠만한 올스타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엄청난 로스터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올스타까지 된 대니 매닝, 댄 멀리도 합류하지 못했으니... 2000년대 들어 대표팀의 네임밸류가 확 떨어지긴 했지만 이때 이들은 이미 엄청난 노장이 된 이후였으며 결정적으로 저 팀들은 우승을 못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