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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9:32:48

혼분식 장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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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혼분식 "강요" 운동4. 결과5. 폐해6. 영양학적 관점에서 본 혼분식 운동7. 관련 문서

1. 개요


혼분식 장려 운동()은 1960~70년대 대한민국에서 시행한 정책으로, 식사에서 주식인 쌀의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혼식(混食)은 이외의 여러 잡곡을 섞어먹는 것, 분식(粉食)은 밀가루 음식을 뜻한다.

2. 배경

이 정책이 펼쳐진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주식인 쌀 생산량의 부족이었다. 베이비붐 등으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으나 쌀의 생산량은 이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였고, 이는 쌀 부족 현상 및 쌀값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에서는 토지 개간 및 간척, 신 품종 개량 및 농법 개선 등을 시행했지만 이는 중장기적인 대책이라서 단기적인 부족 현상을 해결하긴 힘들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쌀 소비를 줄이는 방안 또한 찾아야 했다. 마침 미국에서 밀가루 옥수수를 대량 원조하였기에 그것들을 이용했다.

두 번째는 당시 박정희 정부의 경제 계획이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 지향의 공업화와 저임금 정책을 폈다. 저임금을 통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 저임금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값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쌀 소비를 줄여서 쌀값을 낮추고 이를 통해 저임금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이것저것 다 따져봐도 결국 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박정희 정부는 비교적 공급량이 많던 보리를 비롯한 잡곡, 그리고 미국의 지원으로 많이 풀려있던 을 쌀의 대안으로 국민들에게 제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군사정권답게 이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분식 소비 증가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3. 혼분식 "강요" 운동

혼분식 장려 운동은 '장려'였지만 실제로는 강제적인 방법이 다수 동원되었다.

심지어 당시 TV에 방송되던 상업 광고에도 국책 관련 자막이 표시될 때 그 자막 패턴 중 하나로 혼분식 권장 메세지가 삽입되기도 하였으며, 대부분 식품 관련 광고에서 출력되었다고 한다.

4. 결과

이 장려 운동의 효과로 쌀 소비량이 줄면서 쌀 가격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또한 밀가루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라면, 식빵, 튀김 등과 같은 분식이 쌀밥과 함께 식생활의 주류를 차지하였다.[3]

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서 1980년대 이후에는 혼분식 장려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후에는 혼분식은 개개인의 취향으로 자리잡았다. 분식 장려 정책은 그 이전까지 쌀밥과 채소 위주의 식생활에만 익숙했던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식생활의 서구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근거: 조선일보 2015-07-09 "도시락에 잡곡 안 섞으면 야단 맞던 시절… 혼분식 장려, 한국인 입맛까지 바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서구화된 식습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쌀 소비량이 줄어 들었다. 농어촌 인구는 196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감소세에 있고 특히 1990년대에는 농어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 아래로 떨어지며 말 그대로 노인들과 외국인들만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지만 농업기술의 발전과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생산성 자체는 증가했기 때문에 농어촌 인구의 감소에도 재고량이 엄청나지게 된 것이다. 사실 수출을 하려고 해도 훨씬 인건비가 값싼 중국 인도라는 최종보스가 있고,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2기작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 해외로 쌀을 대량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 수출이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본도 쌀소비량이 감소하자, 해외로 쌀 수출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수요 자체가 인디카에 몰려있는데다가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별로 신통치 않았다.

덧붙여, 설렁탕이나 국밥집에서 업소에 따라 국그릇에 당면이나 소면을 끼워넣는 것도 혼분식 장려운동 영향의 흔적이다.

5. 폐해

당시 쌀을 이용한 술 제조가 전면 금지되면서 각 가정에서 만드는 술은 물론 전통주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으며, 희석식 소주의 보급으로 술맛은 안 보고 그냥 취하는 음주 문화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다만 이 정책만이 전통주의 명맥을 끊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세히 따지자면 일제강점기의 전통주 통제나 6.25 전쟁 때 입은 타격도 컸다. 고유의 전통주 기술을 가진 가문은 상당수가 부유층이었고, 인민재판으로 이들의 다수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군의 점령 기간은 약 3개월로 매우 짧았고 이로 인해 전통주가 타격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현재 전통주를 빚는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사업에 가장 큰 지장을 준 일을 꼽으라면 바로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에 시행된 양곡관리법을 언급한다. 쌀로 술을 빚거나 팔지 못하게 하는 양곡관리법이 각 시골마다 강하게 시행되면서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술을 빚은 항아리를 보면 죄다 깨뜨리거나 빼앗아가는 식으로 탄압을 하다 보니 전통주 산업의 맥 자체가 끊어져 버렸다. 그나마 안동소주 정도가 살아남았는데, 이는 외국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내세울 전통주가 하나쯤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6. 영양학적 관점에서 본 혼분식 운동

분식은 그렇다치고 혼식은 확실히 식생활에 꽤 좋긴 하다. 저 당시 강조하던 것처럼 쌀밥만 먹는다고 몸에 해로울 정도인 건 아니지만, , 보리, 등 기타 잡곡들을 넣어 지은 밥을 주로 먹는 게 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60~70년대 한국 경제사정에서 어정쩡하게 백미만 먹었다간 각기병 때문에 의료비가 낭비되었을 상황이었다. 각기병은 한번 걸리면 합성 티아민+합병증으로 인해 치료비가 많이 깨진다. 어디까지나 식품 선택에 대한 자유를 침해했다는 점이 문제. 선진국으로 들어선 이후의 한국은 그때와는 반대로 혼식이 훨씬 비싸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생각하여보면 당연한 것으로 당시에는 백미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백미의 수요가 높았으니 백미가 잡곡보다 가격이 비쌌다. 게다가 백미를 만들 때는 도정 과정까지 들어가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웰빙 열풍에 따라 잡곡의 수요가 높아지니 잡곡이 백미보다 더 비싸진 것이다.

21세기 기준에서 백미밥 자체는, 지양해야 할 정도로 나쁜 건 아니다. '몸에 덜 좋은' 것과 '몸에 나쁜'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현대에도 '백미만 먹는 것은 성인병의 지름길'로 인식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백미만, 자주 먹을 때의 이야기다. 백미 그 자체가 일종의 정제당이라 당뇨병의 원인이 되기는 하고 인디카 쌀에 비해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자포니카 쌀이 이런 위험이 더 크긴 하나, 우리가 식사를 할 때엔 밥과 반찬을 같이 먹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완이 된다. 밥을 먹을 때 밥보다 반찬을 많이 먹고 적당히 신경 써서 종종 잡곡밥을 먹어주는 것 정도로 충분하니 굳이 백미밥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 더 자세한 건 백미 문서로.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인 일본의 경우 혼식 문화가 아예 없다. 참고로 일본은 한국 다음가는 당뇨병 환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하지만 당뇨를 앓는 사람들도 소식을 할 지언정 대체로 백미밥을 먹는다. 물론 일본도 과거에는 보리밥이나 콩밥을 먹었고 극심한 흉년으로 기근이 발생했을 때에는 풀뿌리, 나무뿌리를 벗겨먹었기도 했지만, 경제력의 발달이 한국보다 빨랐기 때문에 혼식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무기토로라고 참마를 갈아넣은 보리밥은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드물게 먹는 별미 취급. 예상대로 후술하는 것처럼 각기병 사례가 1970년대에도 한국보다 빈번했다. 원문 소스를 보면 전형적인 일본식 인스턴트 식품의 편식 부작용으로 보인다. 저 시기의 일본 인스턴트 식품은 지금의 햄버거 같은 걸 생각하면 안되고, 백미에 후리카케를 뿌려먹는 수준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백미밥만 먹은 것으로 봐야 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60~70년대 당시에도 각기병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정부의 홍보가 잘 먹혔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백미 말고 반찬을 영양적으로 균형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국가는 아니었고, 반찬이 부실한 상태에서 백미만 먹으면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져 있었다. 고기 반찬을 먹기엔 가난했고, 감자 보리같은 걸 먹으면 딱 정부의 의도와 일치했다. 실제로 각기병이 가장 유행하던 일본이나 동남아의 상황을 보면 서민들도 백미를 접하긴 쉬웠으나 반찬이 부실한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60년대에는 동남아시아도 각기병이 자주 발생하던 상황이었다.

7. 관련 문서


[1] 1968년에는 짜장면 1그릇의 가격이 50원이었다. [2] 그런데 잡곡밥이 흰쌀밥보다 영양학적으로 더 우수하다는건 예나 지금이나 부정할 수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3] 참고로 분식의 '분()'은 '가루 분'으로 한국에선 밀가루를 의미한다. 분식이란 단어 자체가 박정희 정권 시대에 생겨난 신조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