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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2 10:15:15

허먼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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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밋 롬니 지지 선언 [지지] [지지] [지지] [지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장
허먼 케인
Herman Cain
파일:허먼케인.jpg
출생 1945년 12월 13일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
사망 2020년 7월 30일 (향년 74세)
미국 조지아 주 스톡브리지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정당

학력 모어하우스 대학교 ( B.S.)
퍼듀 대학교 ( M.S.)
가족 배우자 글로리아 에치슨
자녀 2명

1. 소개2. 생애3. 정치 성향

[clearfix]

1. 소개

허먼 케인은 미국 CEO 출신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자 전 연방준비제도 간부이다. 테네시 주 멤피스 출신이다.

2. 생애

모어하우스 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퍼듀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공부를 계속하지는 않았고 버거킹 매장 매니저로 일했는데, 이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1986년 갓파더스 피자의 CEO가 되었다. 1989년부터 이듬해까지 2년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오마하 지부 이사장을 역임했고, 이후에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내의 요직을 두루 거쳐 1996년엔 이사장으로 퇴직했다.

2.1. 2011년 미 공화당 경선

출마한 이후 참신한 이미지로 한때 깜짝 스타로 부상했으나 섹스 스캔들이 불거져 경선 초입에 낙마했다.

2.2.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019년 트럼프에 의해 연방준비제도 이사로 지명되었다.

흑인 트럼프 지지자 모임인 "Blacks for Trump"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코로나 19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마스크 착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6월 20일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선거 대회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3. 사망

어떤 경로로 확진자와 접촉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털사 랠리에 참가한지 9일 이후인 2020년 6월 29일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틀 뒤인 7월 1일에는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애틀랜타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케인은 74세의 고령인 데다가 예전에 4기 대장암으로 치료를 받았던 전적이 있어서 증상이 빠르게 심각해졌고 회복도 더뎠다. 결국 투병 한달만인 7월 30일 코로나 19로 인해 사망한 미국의 1호 정치인이자 경제인이 되고 말았다.

한편 그가 코로나와 관련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코로나 때문에 죽었다는 점을 보고 웹에서는 허먼 케인상이라는 코로나로 사망한 코로나 부정론자에게 주는 다윈상 같은 가상의 상을 만들어냈다.

3. 정치 성향

흑인이지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복지 축소, 세금 감세 등 미국의 우파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재정지출 삭감, 세금 인하, 낙태 반대, 강력한 국방과 작은 정부, 금본위제 환원 등이 그의 대표적인 공약이었다. 또 북한 이란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런 스탠스는 대체로 공화당 내의 극우 세력인 티 파티와 동일하다.

폭스 뉴스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실책을 고발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했고,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이를 종합해보자면 흑인이라는 인종적인 정체성보다는 자수성가한 CEO이자 연준의 간부라는 사회적 지위가 그의 정치적 성향에 더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1]

을 받는 노동자들의 주적이었는데, 팁 노동자의 최저시급을 $2.13로 영원히 고정시키는 연방법을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그가 법안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회장으로 있었던 전미 레스토랑 협회에서 공화당에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1] 다만 이런 성향 탓에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월가 시위를 비판하면서 돈이 없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언제까지나 본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들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TV에 나와서 당당히 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