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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09 14:55:28

하위지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1. 개요

河緯地(1412~1456)
사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진주 하씨, 자는 천장, 호는 단계, 시호는 충렬로 선산 출신이다. 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2. 생애

1435년 생원시 합격 후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에 들어가게 된다. 정창손, 최만리와 함께 훈민정음을 비판하다가 의금부에 갇히기도 했다. 집현전에서는 '오례의주'의 검토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후 1450년 대사간이 되었다가 문종이 사망하자 일시적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단종 즉위 후 집현전으로 복귀하여 '역대병요' 등 병서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나 수양대군이 이 작업에 참여한 집현전 학사들의 품계를 올리려고 하자 올릴 이유가 없고, 수양대군이 나서서 처리할 이유도 없다면서 반대했다. 이후 집현전직제학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했다가 회복된 뒤 다시 집현전부제학으로 복직했다.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이후 예조로 자리를 옮겨 예조참의를 거쳐 계유정난 이후 예조참판에 올랐다. 이후 육조직계제에 강하게 반발하다가 끌어내라는 세조의 명에 의해 상투가 잡혀 의금부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 때 참여하여 국문을 받고 거열형을 당하였다. 육신전에 따르면 국문을 가하면서 관련 사항들을 세조가 취조하자 아무 말도 안 하고 "내가 반역죄라면 그 죄가 응당 죽음일 것인데 네놈이 물어볼 것이 뭐가 있다고 묻는 것이냐!"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3. 가족

외조부인 유면, 아버지인 하담, 형인 하강지와 동생 하기지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였으며 특히 본인은 장원 급제하여 마을 이름이 장원방이 되기도 했다. 막내 동생인 하소지 또한 생원시까지는 합격했다. 그러나 형제 모두 단종 복위 운동에 휘말려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아들인 하호, 하박도 함께 참형을 당하였고 아내와 딸은 모두 관노가 되었다. 하소지의 아들인 하원은 미성년자로 살아남아 하위지의 양자로 입적되어 훗날 무관직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