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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05 10:38:29

피파(로마 제국)

이름 피파
(Pipa)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출신 마르코만니
아버지 아탈루스
남편 갈리에누스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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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나우강 일대의 게르만족 마르코만니의 공주. 로마 제국 황제 갈리에누스의 부인.

2. 생애

피파(Pipa) 또는 피파라(Pipara)는 도나우강 상류 북쪽, 로마의 라이티아 속주, 노리쿰 속주, 판노니아 속주의 강 건너편에 위치한 마르코만니 족의 왕 아탈루스(Attalus)의 딸이다. 254년, 마르코만니 족은 도나우 강을 건너 판노니아를 침공했다가 갈리에누스에게 저지되었다. 하지만 갈리에누스는 다른 게르만 족이 잇달아 침략하고, 특히 알레만니족이 전선을 돌파하여 이탈리아로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그들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58년, 그는 아탈루스와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내용은 판도나우강 상류의 판노니아 일부를 마크로만니족에게 양도하는 대신, 마르코만니족은 로마 제국을 더 이상 침략하지 않고 다른 게르만 족을 대신 막아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갈리에누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르코만니 족이 조약을 준수하겠다는 걸 약속하기 위해 인질로 보낸 아탈루스 왕의 공주 피파와 결혼했다. 당시 그에겐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황후가 있었고, 로마인들이 게르만족 공주가 로마 황후가 되는 걸 받아들일 리 만무한데도, 그는 기어이 결혼식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두 사람이 "서로 진정한 사랑을 나눈 연인"이었다고 기술했으며, 당대 역사가 아우렐리우스 빅토르는 이를 "수치스러운 사랑"이라고 혹평하며, 갈리에누스가 타락한 증거가 바로 이것이라고 비난했다. 로마 역사가들이 갈리에누스와 피파의 사랑을 비난한 건 야만족으로 여기던 마르코만니 족 공주를 부인으로 둔 것이 혐오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특히 다른 게르만 족을 막아주는 대가로 제국 영토의 일부를 양도한 걸 수치로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살로니나 황후는 남편의 이중결혼 생활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듯하며, 갈리에누스도 황후를 존중해줬던 듯하다. 피파는 갈리에누스가 268년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고 전해지지만, 아우구스타 칭호를 부여받지는 않았다. 갈리에누스가 살해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