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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18:29:55

파비앵 바르테즈

파비앵 바르테즈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야신상.png
1998 FIFA 월드컵 야신상
파일:IFFHS골키퍼.png
베스트팀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파일:PFA_UK_logo.png

1998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지네딘 지단 파비앵 바르테즈 에마뉘엘 프티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0
}}} ||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파일:external/www.fanafoot.com/BARTHEZ_FABIEN_jpg.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파비앵[1] 바르테즈
Fabien Barthez
본명 파비앵 알랭 바르테즈
Fabien Alain Barthez
출생 1971년 6월 28일 ([age(1971-06-28)]세)
프랑스 아리에주 주 라벨라네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 체중 80kg
주발 왼발
직업 축구 선수 (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툴루즈 FC (1991~199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2~1995)
AS 모나코 FC (1995~20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0~200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3~2004 / 임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4~2006)
FC 낭트 (2006~2007)
국가대표 87경기 ( 프랑스 / 1994~2006)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소개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평가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6.3. 수훈
7. 여담

[clearfix]

1. 소개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現 레이싱 드라이버. 선수 시절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골키퍼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툴루즈 유스 출신으로 1991-92 시즌 1군으로 데뷔하자마자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어린 나이에 좋은 활약을 펼친 바르테즈는 1992-93 시즌 당시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 중이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하여 당당히 주전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바르테즈는 마르세유의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디비지옹 1 우승[2] UCL 우승을 차지했는데 2000년 이케르 카시야스한테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는 골키퍼로서 최연소 UCL 우승 기록을 보유한 선수였다. 또한 월드컵 결승전과 UCL 결승전에서 모두 클린시트를 기록한 네 명의 골키퍼 중 한 명이다.[3]

그 후 마르세유의 승부조작 혐의가 터지면서 마르세유는 우승 기록을 박탈당하고 강등되던 상황에 마르세유 주전들의 대다수는 떠났던 상황이었고 1994-95 시즌에 마르세유가 2부 리그 우승을 했음에도 승격하지 못하자 AS 모나코로 이적한다. 그 후 바르테즈는 모나코에서 리그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한다. 게다가 이 시기에 바르테즈는 모나코의 UCL 돌풍의 핵심으로서 모나코를 UCL 4강까지 올려놓는 활약을 한다.

2000년에는 780만 파운드에 모나코에서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2001년과 2003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프리미어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특히 2000-01 시즌에는 최다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후로 명성에 걸맞지 않은 잦은 실수를 저지르면서[4] 여러차례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알렉스 퍼거슨은 2002-03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전 이후 바르테즈의 주전 자리를 박탈했고 미국 출신의 팀 하워드를 새로 영입하면서 2003-04 시즌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하였다. 이후 팀을 UEFA컵 결승까지 인도했으나 전반 45분 퇴장을 당하면서 발렌시아에게 우승을 헌납했고 결승전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후에 낭트로 이적하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팀 강등의 주범이 되었고, 2007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참고로, 은퇴 과정에서 멕시코의 축구클럽 네카사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하였으나, 얼마 안가 해프닝이었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결국 멕시코행은 구라였음이 드러났다(...).

2.2. 국가대표

파일:1998 barthez.jpg

바르테즈의 첫 메이저 대회는 유로 1996이었으나 주전은 베르나르 라마였다. 그 이후에 뛰어난 실력으로 라마를 밀어내고 대표팀 주전자리를 차지하였다. 1998년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7경기 동안 단 2골만 실점했을 정도로 통곡의 벽이었다.

8강전에서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양팀 다 득점을 하지 못한 채 승부차기로 이어졌는데 프랑스의 2번 키커로 나선 비셴테 리사라수가 상대 골키퍼 잔루카 팔리우카의 선방에 막혔으나 바르테즈가 바로 다음 차례에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의 킥을 선방하고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인 루이지 디 비아조가 골대 상단을 때리고 실축하면서 프랑스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팀 동료들은 모두 바르테즈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도 한 골도 실점하지 않고 3:0으로 완승하면서 조국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고[5], 야신상도 수상하였다. 당시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이후 바르테즈는 지네딘 지단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대표 선수 중 한 명으로 등극했다.

거기에 1998년 옹즈도르에서도 2위를 기록하면서 2020년대 현재까지도 골키퍼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옹즈도르 포디움에 들어가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유로 2000에도 활약하여 우승에 일조했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고, 유로 2004에서는 8강에서 탈락하였다.

그렇게 앞으로 국가대표는 경쟁자였던 그레고리 쿠페에게 자리를 내주는 줄 알았으나[6] 커리어의 막바지였던 2006년에 레몽 도메네크 감독에게 중용받아 골문을 지키며 지네딘 지단과 함께 2006 독일 월드컵에서 7경기 3실점(PK 1실점)[7]을 하며 조국을 월드컵 준우승에 올려놓는 쾌거를 이루었다.[8]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2010년 7월 2일, 국가대표팀 동료였던 로랑 블랑이 프랑스 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후 바르테즈는 팀의 기술 스태프 중 골키퍼 코치로 임명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키 180cm로 골키퍼치고는 작은 편이지만 밭밑이 좋고 반사신경과 뛰어난 판단력,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그런 단점을 상쇄했으며 페널티킥도 잘 막는 편이었다. 그러나 좋게 보면 창의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이지만 나쁘게 보면 일관성 없고 이상한 스타일로 인해 어려운 건 잘 막는데, 쉬운 볼의 처리나 별것 아닌 상황에서 어이없는 실수가 좀 있는 편이다. 그리하여 국내 한정으로 붙은 별명이 기름손테즈. 그 유명한 개선문 붕괴 스로인(...)도 바르테즈가 한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 G조경기 한국 vs 프랑스에서 1:1 동점이던 상황에서 바르테즈에 공이 왔는데 그 공으로 롱 스로인을 날리다 바닥에 던진 것. 바로 잡아서 위기를 넘겼으나, 그 공을 한국이 낚아챘으면 역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스로인을 잘못해서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가까스로 막아낸 것도 있다. # 이런 골키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안정성, 일관성이 떨어졌기 때문에[9] 당대의 월드클래스 골키퍼는 맞지만 역대급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5. 평가

우승 커리어는 월드컵, 유로, 챔피언스 리그, 리그 1, 프리미어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으며[10] 개인 커리어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회 올스타팀과 야신상, 1998년 옹즈도르 2위, 유로 2000에서의 맹활약을 통한 대회 베스트팀과 IFFHS 올해의 골키퍼, 2000-01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워낙 여러 경기에서의 실수의 임팩트와 안정감의 문제로 저평가 당하는 부분도 있다.[11] 그래서인지 199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임에도 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 선정에 뽑히지 못했고 일관성 없는 스타일로 인해 전문가들로부터 종종 비판받았었다.

또한 바르테즈의 활동 시기가 오래 지난 현재는 인지도가 비교적 낮아져 옛날에 비해 존재감이 적어진 감도 있다. 2019년 All Football 팬 투표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올타임 베스트 XI에 골키퍼로 바르테즈가 아닌 위고 요리스가 선정되었는데[12] 커리어로나 개인의 기량으로나 요리스가 바르테즈보다 우위라고 보기는 어렵다.[13] 플레이 스타일에 문제점은 어느 정도 있었을지언정 분명히 전설적인 선수였으나 전성기 이후엔 그에 걸맞는 평가를 못받는 경우가 많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

파일:external/3.bp.blogspot.com/523626737.gif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그 유명한 UFO의 피해자가 바로 바르테즈였다. 바르테즈는 카를로스 프리킥에 대응도 못해보고 골을 먹혔는데, 경기가 끝난 뒤 바르테즈가 이 프리킥에 대해 "마치 비행접시가 날아오는 듯 휘어졌다"라고 말하면서 UFO 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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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가대표 최고 전성기에 철의 포백의 중심이던 로랑 블랑이 바르테즈의 민머리에 뽀뽀를 하는 세레머니가 유명했다.

지단이 은퇴를 번복하고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바르테즈를 반드시 주전 키퍼로 국대에 승선시켜야 한다고 레몽 도메네크 감독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바르테즈의 활약이 뛰어났고(7경기 3실점) 도메네크 감독의 평가가 최악인데다 지단 덕에 준우승이라도 했다는 여론이 많아서 곧 묻혔다.

축구선수를 은퇴한 이후 모터스포츠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레이싱 팀에 소속되어 레이싱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EPL World에서 보도했다.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탑10에 두번이나 들 정도로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


[1] 프랑스어에서 ien은 /jɛ̃/으로 발음되는데 모음 뒤에 올 경우 '얭', 자음 뒤에 올 경우 '이앵'으로 표기한다. 또한 자음 앞(m,n,h는 제외) 또는 어말에 오는 aim,ain은 /ɛ̃/'앵'으로 발음된다. [2] 후에 승부조작 혐의로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함. [3] 나머지 세 명은 보도 일그너, 이케르 카시야스, 마누엘 노이어. [4]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선 파올로 디 카니오가 1대1 상황에서 공을 몰고 오는데 각도를 좁히면서 막을 생각은 안하고 오프사이드 아니냐며 멀뚱멀뚱 택시 잡는 듯이 손을 들다가 골을 먹는가 하면 아스날과의 경기에선 AS 모나코 동료였고 국가대표 동료인 티에리 앙리에게 패스를 해주며 골을 먹었다. 챔피언스리그 데포르티보전에서는 어설픈 땅볼처리로 어이없게 실점하기도 했다. 실수까진 아니지만 2001-02 시즌 아스날과의 경기에선 국가대표 동료 실뱅 윌토르한테 골을 먹어 아스날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걸 허용했다. [5] 당시 프랑스 스쿼드에서 유일하게 전경기 풀출장을 하며 우승했다. [6] 실제로 2006년 2월,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바르테즈보다 쿠페를 선호하는 프랑스 국민들이 훨씬 많았다. [7] 이 3실점 중 하나가 대한민국의 박지성에게 허용한 것이다. 나머지 둘은 각각 16강전 다비드 비야(PK), 결승전 마르코 마테라치. [8] 결승까지 진출하면서 2번째 우승도 가능했을 수도 있었지만 상대 팀 이탈리아에는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이 있었고 바르테즈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승부차기까지 이어져 모두 베테랑 키커였던 이탈리아의 승부차기를 한 번도 막지 못하며 아쉽게 패배했다. [9] 특히 맨유 시절과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0] 당장 바르테즈 이외에 월드컵, 유로,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한 골키퍼는 제프 마이어, 이케르 카시야스, 빅토르 발데스 이렇게 네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발데스는 월드컵 우승과 유로 우승은 주전도 아닌 서브 키퍼로 차지한 것이기 때문에 주전으로 월드컵, 유로,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한 골키퍼는 마이어, 바르테즈, 카시야스 이렇게 세 명 뿐이다. [11] 특히 한국에서는 계속해서 보여준 불안한 모습을 보인 맨유 시절과 2002 한일 월드컵 세네갈 쇼크의 주전이라 뭔가 타 골키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심어졌고, 이런 인식은 앞에서도 서술된 2006 독일 월드컵 G조 한국과의 경기에서의 실수로 인해 더 강화되었다. [12] 다만 프랑스 풋볼, 레키프, IFFHS 등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곳에서 선정한 베스트 XI에는 항상 바르테즈가 뽑힌다. [13] 요리스는 월드컵은 우승하였지만 유로와 UCL, 리그는 모두 최고 성적이 준우승에 불과하고 개인상의 경우도 바르테즈가 월드컵 야신상과 올스타팀, IFFHS 올해의 골키퍼,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된데 비해 요리스는 월드컵 우승 당시 골든글러브와 베스트팀(드림팀, 판타지팀), 그 해 최고 골키퍼상(FIFA · UEFA · IFFHS 올해의 골키퍼)을 모두 놓쳤으며 토트넘에서 PFA 올해의 팀과 PL 골든글러브를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또한 바르테즈가 메이저 대회에서 월드컵 17경기 8실점, 유로 9경기 9실점으로 경기당 0점대 실점률을 자랑하는데 반해 요리스는 메이저 대회에서 월드컵 20경기 20실점, 유로 15경기 16실점으로 경기당 실점률이 1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