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01:56:11

쿠로다 유토

구로다 유토에서 넘어옴
<colcolor=#000> AV 배우 프로필
쿠로다 유토
[ruby(黒田, ruby=くろだ)] [ruby(悠斗, ruby=ゆうと)]|Yuto Kuroda
파일:post_18950_2 (1).jpg
예명 쿠로다 마사토시
黒田 将稔
아카기 히나타
赤木陽太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성별 남성
직업 AV 남배우
생년월일 1975년 10월 25일 ([age(1975-10-25)]세)
출신지 일본 나가사키현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연재(変態のすゝめ)

1. 개요2. 상세3.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 AV 남배우이자 AV 감독. 시미켄, 미나미 요시야, 하나오카 짓타 등의 배우들과 함께 야수파로 유명하다. 40줄의 나이에도 근육질의 몸매와 빠른 허리놀림으로 유명하다. 거칠고 농밀한 러브신이 특징. 한국에서는 또 다른 예명인 쿠로다 마사토시로도 유명하다. 2001년에는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2. 상세

업계 20년차 베테랑 배우. 요코하마 국립대학 출신으로 남자배우로서는 드물게 AV배우가 되고 싶어서 지원한게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에 지원한게 계기가 되어 AV 배우로 데뷔했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취준생 무렵 사회인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대화를 하며 선배들의 직장생활에 대한 하소연을 듣고 사회인이라고 하는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미래가 없이 매일 따분한 일 밖에 없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도 직장인이 되면 이런 따분한 생활에 지쳐가는건가라는 섬뜩한 미래가 그려져 원래 준비하고 있던 취업을 정리한다. 그리고 좀 더 재미있는 미래가 뭐가 있을까하고 곰곰히 생각하던 찰나 얼마전 보았던 AV잡지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갔고 AV 배우로 데뷔하자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AV 배우가 되겠다거나 AV에 심취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얼마전 봤던 AV 관련 잡지에 실려있었던 현장르포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던 게 기억났다고 한다. 당시 컴퍼니 마츠오와 바쿠시시 야마시타 아다치 카오루의 기사였는데 설산에서 거꾸로 매달려서 곳쿤, 포경하고 남은 피부 먹기, 구토하면서 레이프 등의 현장 르포를 읽고 '와 미친세계구나 재밌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듯.응? 하지만 데뷔 이후 계속 이런 험한 SM현장에 보내달라고 하였으나 워낙 캐릭터가 근육질의 멀쩡한 마초남이여서 보내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관둘까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라면 재미있을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잡지 뒤에 있던 37개의 주소에 자신의 프로필을 동봉하여 보냈다고 한다. 당시 AV 업계는 카토 타카로 대표되는 경험많은 테크니션이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러브신이 인기였다. 하지만 AV를 평소 접하지 않았던 쿠로다 유토는 AV 남자배우는 역시 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어 몸을 단련하는 것 부터 시작해 3개월 정도 착실히 헬스를 다니면 몸을 만든 후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프로필을 동봉했는데 오히려 이 것이 당시 인기있던 테크니션과 정 반대되는 입장의 근육질의 금발 젊은 마초배우라는 이미지가 먹혀들어 8개 정도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크리스탈 영상의 현장에서 데뷔를 했다고 한다.

첫 촬영장에서 촬영을 하고 있으면 2층에서 어떤 여자가 들락날락 하길래 저 여자는 뭔가 하고 감독에게 물어보자 촬영장소가 감독의 집이며 2층에 있던 사람은 부인과 아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2층에 가보면 부인이 남편의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는데 감독이 '이혼조정중에 돈같은거 주기 싫지만 작품 편집해주는 아르바이트로 쓰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AV는 비범한 세계구나라는 생각으로 역시 AV는 재미있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길로 배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데뷔를 한 것 치고는 이후의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데뷔 두달정도 지나 당시 테크니션으로 유명하던 초코볼 무카이 단샤리 타카시(이에이 타카시) 등이 함께하는 5P 작품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참여한 배우들이 한번에 5~6발 정도까지 발사가 가능한 테크니션중의 테크니션으로 유명해서 기가 죽어 발기가 전혀 안됐다고 한다. 결국 끝까지 발기가 전혀 안돼서 제대로 촬영을 망쳐버렸고 화가 난 감독이 얼굴에 천엔짜리 지폐 3장을 던지며 '넌 이정도 가치도 없는 배우다!!'라는 일갈을 들었으며 이후로도 트라우마가 되어 계속 발기가 풀리는 일이 잦아 선배에게 멱살을 잡히는 일이 있었기에 대학졸업 이후 사회경험도 없이 데뷔를 하여 사회인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도 잦아 이대로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어느정도 봉급이 늘어 흔히 영수증에 수입인지가 붙는 3만엔 정도의 개런티를 받기 시작한 무렵부터 이렇게 많은 봉급을 받는데 발기가 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책임감이 싹튼다. 그리하여 트라우마가 되었던 3P의 촬영에서도 옆에 있는 남자배우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 받아들이기 시작, 이후로는 발기대기에 걸리는 일이 줄어들었고 노력한 끝에 현재와 같은 짙은 농도의 농밀한 러브신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이디어 포켓 촬영에서 한 감독의 말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남자배우와 얽히는 것 보다도 여배우 중심의 카메라를 가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배우에 포커스를 맞춰주지 위하여 상당히 절제하며 찍고 있었다. 이 때 '쿠로다 군은 너무 쿨해, 그러면 여자가 달아오를 수 없어'라는 말을 들은 것을 계기로 화면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하게 얽히기 시작하자 작품의 평가가 올라갔다고 한다.

3.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