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80d53><colcolor=#ffffff> 스웨덴 바사 왕조 제5대 국왕
칼 9세 Karl IX |
|
|
|
출생 | 1550년 10월 4일 |
스웨덴 스톡홀름 트레 크로노르[1] | |
사망 | 1611년 10월 30일 (향년 61세) |
스웨덴 뉘셰핑 성 | |
재위 | 스웨덴 왕국의 왕 |
1604년 3월 22일 ~ 1611년 10월 30일 | |
배우자 | 팔츠지메른의 마리아 (1579년 결혼 / 1589년 사망) |
홀슈타인고토르프의 크리스티네 (1592년 결혼) | |
자녀 | 마르가레타, 엘리사베트, 루드비그, 카타리나, 구스타브, 마리아, 크리스티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마리아 엘리사베트, 칼 필리프 |
아버지 | 구스타브 1세 바사 |
어머니 | 마르가레타 레이욘후부드 |
형제 | 요한 3세, 카타리나, 세실리아, 망누스, 안나, 소피아, 엘리사베트 |
종교 | 루터교회 |
서명 |
[clearfix]
1. 개요
왕위 계승 가능성이 희박한 막내로 태어났지만 결국 형 들을 제치고 스웨덴 왕위를 차지했다. 공격적인 대외 정책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덴마크와 전쟁을 치렀고 루스 차르국의 동란 시대에도 개입했으나 실익을 얻지 못했다.2. 생애
구스타브 1세 바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1557년 쇠데르만란드 공작으로 책봉되었다. 1568년 친형 요한과 손잡고 이복형 에리크 14세를 폐위시켰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쇠데르만란드 공작령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며 요한 3세와 대립했다.1587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었던 조카 시기스문드가 1592년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하자 국왕 부재시 권한을 두고 대립했다. 결국 1597년 반란을 일으켜 친 국왕파 귀족들을 모두 정리하고, 1599년 조카를 폐위시켰다. 이후 5년간 섭정 칼 공작으로 있다가 1604년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했다.[2]
그의 즉위로 폴란드-리투아니아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며 1605년 리보니아의 키르홀름(Kirchholm)에서 리투아니아의 명장 얀 카롤 코드키에비츠에게 호되게 당했다. 1609년에는 켁스홀름(Kexholm)[3]을 양도받는 조건으로 루스 차르국에서 벌어진 가짜 드미트리 사태에 개입하여 바실리 4세의 편에 참전했으나 클루쉬노 전투에서 폴란드 헤트만 스타니스와프 주키에브스키(Stanisław Żółkiewski 1547~1620)에게 떡실신당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말년에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와 핀마르크(Finnmark)를 두고 갈등이 벌어져 칼마르 전쟁이 발발했다. 칼 9세는 이 전쟁에서 무리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가 무리하게 벌인 대외 정책으로 아들 구스타브는 즉위 초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