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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25 15:37:08

카즈사 히로츠네


파일:Kazusanosuke_Hirotsune.jpg
上総 広常
? ~ 1184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카즈사 히로츠네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무장으로, 관직명으로 카즈사노스케 히로츠네(上総介広常)라고도 알려져 있고, 우지가 들어간 정식 이름은 타이라노 히로츠네(平広常)이다.

2. 생애

카즈사 히로츠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원래 가마쿠라를 근거지로 삼아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를 섬겼으나 그가 헤이시와의 전투에서 죽자 타이라군의 포위를 겨우 빠져나가 그 뒤로는 헤이시 정권에 따랐다.

그러던 중 요시토모의 아들이자 인근 지역인 이즈에 유배되어 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시를 타도하기 위해 거병하자 히로츠네 또한 2만의 병사를 이끌고 요리토모에게 가담했다. 하지만 요리토모는 방금 타이라군에게 대패해 히로츠네의 가담이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츠네가 늦게 오자 기뻐하지 않고 늦게 온 것을 책망하였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겐지의 동량으로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 요리토모의 자질을 느낀 히로츠네는 요리토모에게 공순하게 되었다.

후지가와 전투에서 타이라노 고레모리를 격파한 요리토모는 그대로 교토까지 상경하기로 했으나, 히로츠네는 히타치의 사타케 가문 공격을 진언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이때 히로츠네는 사타케 가문과도 혈연이 있었는데, 사타케 요시마사에게 병사를 물리고 이야기하자며 불러내어 요시마사를 베는 등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1182년부터는 요리토모와 큰 갈등을 빚었고, 결국 1183년 모반 계획이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결국 1184년 카지와라 카게토키 쌍륙을 하던 중 카게토키의 기습으로 암살을 당했다. 그러나 이후 발견된 히로츠네의 글에서 모반은 커녕 요리토모의 무운을 비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요리토모는 후회하며 히로츠네의 가문을 사면해주었다고 한다.

요리토모가 히로츠네를 죽인 이유는 위의 모반 의심 정황 외에도 요리토모에게 2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가담한 그가 요리토모의 권력 확립에 방해가 되었고, 히로츠네는 헤이시 정권 타도를 원하던 요리토모와 달리 간토에서의 자립에 훨씬 관심이 컸기에 뜻이 맞지 않았다고도 한다.

3. 여담

구미호이자 일본삼대악귀 중 하나인 백면금모구미호를 퇴치했다고 한다.

4. 대중매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