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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23:19:58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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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조와 성능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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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쓰던 운반 도구. 단어 형성법은 '(을) 지다'의 어간을 어근으로 한 '지-' + 도구 접미사 '-게'[1]이다. 일반적인 전통가방의 개념 같지만 실재론 매우 다양히 쓰이던 만능 도구였다.

2. 역사

지게의 최초 사용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기록으로는 1690년 <역어유해>에 배협자(背狹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유물로는 무안 양장리 유적에서 지겟자루가 출토되었고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도 지게의 부품인 지게 발채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학계에서는 <위지 동이전>의 삼한조에 "나라 안에 공사가 있거나 관가에서 성을 쌓을 때는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가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새끼줄로 한 발(丈)이나 되는 나무를 꿰매고 온종일 외치며 일을 한다. 아파하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일 잘하고 건장한 것으로 여긴다."는 기록을 지게를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 이로 미루어보면, 최소 삼한 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지게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6, 70년대만 해도 도시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씨티 100이 보급되기 이전만 해도 도시 골목골목으로 물건을 나를 때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그 당시 달동네는 오토바이(당시에도 오토바이나 삼륜차가 있었다)가 올라가지 못하는 계단 골목이 많았고 이런 곳은 지게꾼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지게꾼은 오늘날 퀵서비스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파일:external/gi.esmplus.com/80ce_35.jpg
현대에는 등산용품으로 지게배낭(프레임배낭)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미군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3. 구조와 성능

몸체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처음부터 사용자의 체구에 맞게 제작했다고 한다.

몸체를 연결시켜주는 '세장'은 밤나무와 박달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몸체는 가지가 Y자형인 자연목 두 개를 마련하여[3] 사다리꼴 형태로 세운 다음 그 사이사이 3~4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죈 다음 사개를 맞추어 고정시켰다. 짚으로 멜빵을 만들어 세장과 목발에 위 아래로 멜빵을 걸어줌으로 지게를 등에 질 수 있는 구조. 무게는 보통 5~6kg 내외로 썼다고. 지게작대기는 물미작대기라고도 불렀는데, 지게를 내려놓으면 삼각대 구조가 되어 넘어지지 않게 세워둘 수 있고 이동시에는 지팡이가 되어 하중 지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 또 지게를 메는 짐꾼들이 잠깐 쉴 때는 지게를 아예 내려놓으면 다시 들어올리기가 힘이 들어 물미작대기를 지게의 세장에다 받쳐 서서 쉬었다. 이러면 다시 출발할 때 물미작대기만 빼면 되므로 힘도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파일:지게.jpg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구조에 비해 그 위력은 상당하다. 써본 사람들은 알지만 신기하게도 제 힘의 몇 배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보부상들은 100kg 정도 들고선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비록 대단한 얼개는 아니지만 조상들의 수고를 꽤나 덜어준 건 어느 정도 사실인 셈이다.

당시엔 지게가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단순 짐가방부터 배달부의 필수품이요 이동식 좌판이자 사람을 태우는 가마의 역할도 했다.[4] 위에서의 설명처럼 시신도 싣고 다녔다. 일본에도 지게가 유입되었지만 보통 바구니를 애용했고,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써먹은 것은 조선이 유일했다. 거의 현실판 데스 스트랜딩이다.

지게는 한국전쟁을 통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얼핏보면 단순하고 원시적인 구조인데 심지어 작은 소년들조차 어마어마한 무게를 나를 수 있는 것을 보고 미군을 비롯한 많은 연합군 군인들이 경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로 지게의 모양을 따서 'A-Frame carrier' 혹은 그냥 'A-Frame' 이라 불렀으며 일부는 지게라는 발음 그대로 'jiggy'나 'Chiggy' 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게에 대한 인상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수기를 보면 지게 얘기가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지게의 유용성에 감명받은 일부 미군들은 물자를 운송할 때 지게를 직접 활용하기도 하였다.
한국인 비전투원들은 우리가 좋아했다. 바로 고지로 보급품을 지고 올라오는 일명 'Chiggy Bears'. 일부 멍청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꽤 용감했다. 60이 넘은 노인이 지게(A-frame)에 55갤론[5] 드럼통을 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 한국전쟁 참전 미 해병 Jerome Stanley Bonkowski의 수기 #
동부에서 서부로 사단이 이동할 때 서울을 지나며 민간인들을 봤다. 서울은 폭격되었고, 많은 민간인들이 주로 논에서 일하고 있었다. 작은 소년들이 지게로 엄청난 양의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봤다.
-한국전쟁 참전 미 해병 Herb Wong의 수기 출처
파일:korea-jige.jpg
한국전쟁에서 지게를 이용하여 물자를 수송하는 미군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 지게를 활용한 수송부대, 일명 지게부대가 존재했다. 영어 명칭은 앞서 언급한 지게의 영어 명칭대로 A Frame Army.[6][7] 한국전쟁 당시 주 임무는 지형을 가리지 않는 수송. 주로 차량이나 군마( 레클리스 하사가 대표적)가 드나들 도로가 없는 고지전 때 탄약, 식량, 식수를 고지로 보내주고 고지에서 부상자, 전사자를 후송했다고 한다. KSC의 임무도 현대화 및 기계화했을 뿐 수송과 후방지원 임무인 건 별반 다르진 않다.

공사장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현대에서는 나무 대신 플라스틱 파이프나 쇠파이프로 만든 지게를 쓰기도 한다. 짐 싣는 부분이 옆에서 보아 L자 모양으로 생기고 각목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지게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는 소규모 건설 공사장에서 벽돌,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옮기는 데 쓴다. 이것도 그런 작업장에서 인력으로 짐을 옮기는 유일한 운반 수단이며, 별 기술 없이도 쓸 수 있기에 공사장에서 가장 낮은 일당을 받는 초급 단계의 일꾼이 쓰는 도구다. 그만큼 쓰기 쉽고 효과적이다.

오늘날도 산속 암자들은 헬기라도 띄우지 않는 한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이다. 건축자재부터 냉장고까지 죄다 지게로 나른다.

이런 등 부분에 짐이 올라가는 표준형의 지게 외에 어깨 높이쯤 부분에 가로로 긴 막대를 대고 그 양쪽 끝에 운반할 물건을 담는 용기를 하나씩 매단 지게도 있는데, 물을 넣으면 물지게, 인분을 넣으면 똥지게, 떡을 담은 상자를 매달면 떡지게[8]라고 불렀다. 80년대까지는 거리와 시장에서 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표준형 지게와는 모양과 짐 싣는 위치가 좀 다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건너 온 일본 것(나무 통이 일본식이다.)과 20세기초부터 해방 후까지 쓰인 미국제 석유초롱의 양철통이 섞여 쓰인 것으로 보면 프레임 형상 자체는 전통 지게를 개조한 후 외국에서 도입된 통을 연결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지게모양이 아니라 긴 나무 막대기를 한 쪽 어깨에 메고 양 끝에 짐을 매달아 운반하는, 우리 지게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짐 나르는 도구를 많이 썼기 때문. 이런 개조(?) 지게와 전통 지게의 가장 큰 차이는 지게 다리가 짧아서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세워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것이든 지게라는 것이 거의 사라진 현재는 그 개조 지게의 기원과 쓰인 기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게에 대한 논문이 나와 있다.

4. 기타

현대의 경우 막노동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이 아니면 조선 지게는 의외로 지기 힘들다. 숙련되면 다량의 짐을 나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익숙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위에 써 있는 공사장 벽돌지게 또한 개량이 된 것인데 이것도 초보자의 경우 요령이 없으면 아예 일어날 수조차 없다. 실제 지게는 더 일어서기 어려워 어느 정도 요령이 필요하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보면 일제강점기에도 농사일을 안 해본 사람은 지게를 지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의 묘사가 있다.

조선에서 특히 지게가 대유행하게 된 것은 험악한 지형에 있다. 수레기술이 있긴 했지만 산지가 70%인 조선 입장에선 편한 바닷길을 애용했고 수레의 운용은 도시나 마을처럼 평탄한 곳에서나 주로 쓰였다. 산과 산을 넘고 수레로 건너기엔 까다로운데 징검다리로 건널만한 개울들을 건너야 했던 사람들 입장에선 본인의 발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그렇게 지게는 일상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종종 지게를 보고 왜 바퀴를 달지 않느냐? 라고 이상하게 여기는 외국인들에게 산악지대를 설명하면 이해하게 된다. 그 예시로 히말라야산맥이 자리잡은 네팔만 해도 험난한 산지에 여전히 사람이 짐을 들고 다니며 짐꾼이 흔한 직업인 까닭도 똑같다.

기로국전에서 유래한 설화인 고려장 설화의 이야기들 중 '할아버지의 지게' 이야기가 유명하다. 스포츠 팬들은 노장 선수가 저조한 성적을 내면 '지게 태워라'(ex. 지게뱅, 지게택)라고 하며, 반대로 대활약하면 '지게 부숴라' or '가마 태워드려라' 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막장 부모를 깔 때 쓰는 패드립같은 관용어로 "지게 어딨냐? 빨리 태워야 하는데"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모 사이트 #에 있는 1969년 한 주한미군의 목격담에 따르면, 부대에 누군가 침입하여 기름이 가득 찬 300파운드(약 136kg) 드럼통을 훔쳐간 것을 알고, 다수의 인원이 부대 펜스를 뚫고 트럭을 가져와서 훔쳐간 것으로 판단하고 범인을 찾기 위해서 수색을 벌였지만, 알고 보니 지역 주민 한 명이 지게 위에다 드럼통을 얹고서 경비병보다 빠른 속도로 언덕 위를 올라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결국 그 무거운 드럼통을 고작 지게 하나로 들고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깜짝 놀랐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이 봤던 것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을 운반했던 사람은 600파운드(약 272 kg)짜리 가마솥을 지게에 지고 절에 운반했던 노인이었다고 한다.

대학가에서는 A학점을 '지게'라고 부르는 일이 있는데, 이는 알파벳 A가 지게 모양과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F학점을 받으면 권총을 찼다고 한다.

무언가를 들기 좋게 만든 물건을 '지게○○'로 부르곤 한다. ' 지게차'가 그렇게 해서 생긴 말이며, 스타크래프트 2의 MULE[9]도 한국어판에서 ' 지게로봇'으로 번역됐다.

라는 한자를 '지게 호'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여기서 지게는 이 지게가 아니라 의 일종을 뜻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141회(2022년 2월 9일)는 설악산의 지게꾼 임기종 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1] '집게' 등. [2] 참조자료:<한국의 농기구>,어문각 [3] 그런데 크기와 굵기로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Y자 목재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산에서 지게감으로 적당하게 Y자로 가지가 뻗은 나무를 발견하면 그와 비슷한 꼴의 다른 나무를 발견할 때까지 산을 돌아다녀야 했다. [4] 지게위에 판을 깔고 그 위에 사람을 태웠다. 기록에는 사람이 넘어가지 말라고 새끼줄로 일종의 안전밸트를 만들어 묶었다고 한다. [5] 약 208리터 [6] 이 부대의 후신이 미8군단 한국인지원단(KSC: Korean Service Corps)이다. 제50보병사단 동원훈련 받으러 간 간부 예비군 중 소수가 간혹 여기서 훈련 받는 때가 생긴다. 훈련이래 봤자 미군기지 구경하는 거지만. 한국군 동원부대 간부들은 여기에 예비역 간부를 빼줘야 하는 걸 엄청 싫어한다. 이 예비역들은 전쟁이 나면 미군 소속이 되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미제 장비 일체를 새것으로 지급받는다. 미군에 고용된 민간인 신분으로. 민간인이기 때문에 이때는 비무장이다. [7] 최초의 현대식 A프레임은 1800년 후반 노르웨이에서 발명된 배낭이다. https://www.timetoast.com/timelines/the-origins-of-the-backpack [8] 나무로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주로 망개떡 장수가 애용하였다. [9] Mobile Utility Lunar Excavator의 약자이나, 'mule'( 노새)를 의식하고 지은 역두문자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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