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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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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에서 사용한 갑옷을 총칭하는 말. 중국은 그 역사가 매우 긴 나라이니만큼 갑옷의 역사도 길고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2. 선진(先秦)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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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후을묘 출토 가죽 찰갑 유물
파일:ancient chinese armour (19).jpg
류융화(유영화) 저, <중국고대군융복식>, 상해고적출판사, 1996 에 나온 재현삽화

중국은 상나라 때부터 찰갑을 사용하였으나, 당시의 찰갑은 단순히 큰 청동판이나 가죽찰을 천 위에 고정시키거나 끈으로 연결하여 배치시킨 것으로 찰갑이라기보다는 통짜 판갑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나라 때에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경향이 이어졌지만 춘추시대에 들어서 무기체계는 발전을 거듭해 포갑에서 본격적인 찰갑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초기형 찰갑으로써 춘추시대 말기 증후 을(曾侯 乙)의 가죽 갑옷이 남아 있다. 이는 하나하나의 조각이 크고 이에 따라 끈의 사용이 최소화된 전형적인 초기형 찰갑이지만 자주 움직이는 하체 부분은 수결법(레미네이티드 구조)[1]를 통해 쉽게 움직이게 만드는 등 활동성을 위한 조치는 잘 취해져 있는 편이다.

3. 진한시대 & 위진남북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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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에서 출토된 석제 찰갑

중국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국시대의 아수라장(...)을 거치면서 갑옷이 더욱 개량되어 갑찰이 더욱 작아지고, 엮는 방법도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상체는 내중식 혁결법, 하체와 상박은 외중식 수결법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다리와 팔의 활동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당연히 대량생산은 어려워졌던 것으로 보이고, 때문에 진시황의 병마용에서는 갑찰을 천 위에 부착시키거나 리벳으로 고정시킨 듯한 표현이 다수 확인된다.

이러한 기본 양식은 한나라로 계승되었고 갑찰이 더욱 작아지고 얇아지는 경향도 지속되어, 전한대에는 상대적으로 긴 갑찰을 나란히 엮어서 상체를 방호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후한대에는 위 사진과 같이 길이도 짧아져서 어린갑이라고도 하는 물고기 비늘 모양을 갖추게 된다. 투구도 이와 마찬가지로 갑찰을 엮어서 만들었다. 최근의 삼국지 드라마에 나오는 갑주의 묘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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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 출토 석제 소찰주 시안 외곽 한묘와 전한 제왕묘 출토 소찰주 재현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민족들의 중원 침투를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의 찰갑들이 고착화된다. 특히 기마병의 적극적인 운용으로 다리를 보호하는 갑상(甲裳)이 도입되고, 마갑까지 갖춘 중장기병이 활약한 시기이기도 했다. 후한서 채옹열전에서 175년 시점에 유주와 기주에서 개마가 산출된다고 한 기록을 시작으로, 200년에는 관도대전에서 백 단위의 개마가 운용된 모습이 보인다. 물론 당시의 개마는 가슴가리개 형태의 초보적인 마갑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는 하지만, 이때의 영향은 고구려에까지 미쳐서 고구려 중장기병 편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고 있다.

4. 수당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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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태종시기 장락공주(長樂公主)묘 벽화에 있는 갑주입은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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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태종의 후궁 위귀비(韋貴妃) 능묘 벽화에 있는 갑주입은 병사들

소위 명광개라고 표기되는 나라시대 부터 나오는 갑옷도 전형적인 찰갑이다. 다만 이 때부터 방어력 향상을 위해 대형 철판인 호심경[2]을 가슴 양쪽과 등, 배에 부착하기도 했다. 찰갑의 유연성을 특별히 추구한다기보다는 가슴, 배, 어깨, 허벅지와 같은 파트를 나누고, 소찰 자체는 유연성이 적은 대신 방어력이 좋게 만드는 경향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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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갑 패턴의 갑주를 입은 병사 당삼채

중국의 독특한 갑옷인 산문갑(山文甲)도 당나라 때부터 등장했다. 산문갑이 찰갑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회화나 조각, 도기같은 미술품으로 모양을 재현한 유물들은 나와도 실물 갑옷 유물은 출토되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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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갑옷 요나라 갑옷 금나라 갑옷 원나라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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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장군들의 투구 송나라 병사들의 투구 팬양리(范阳笠, 범양립)

6.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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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삽화에 나오는 명군의 갑옷들

송나라까지 주력이던 찰갑이 여전히 주력이었지만, 방어력도 좋고 유지 보수도 찰갑보다 좋은 장점을 받아들여 몽골군의 갑옷이던 경번갑 두정갑의 사용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삽화와 유물에서는 다양한 형태가 보인다.

7.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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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코트 스타일의 누르하치 두정갑.
명나라 시기에 가장 오래 사용된 스타일의 두정갑이다.
팔기군의 두정갑. 각 기마다 소매와 넓은 면의 색을 달리 해서 서로를 구분했다.

명나라대까지 찰갑이 주력으로 사용되었으나 명말 청초부터 두정갑을 주력 갑옷으로 채택하면서 찰갑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청나라 시기 두정갑은 팔기군의 표준 갑옷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두정갑처럼 일체형 두정갑이 아니라 기마에 편리하게 상하가 분리된 두정갑을 입었다. 조선도 후기에는 청나라의 영향인지 기마용으로 상하가 분리된 두정갑이 등장하였다.

청나라 말기에는 오랜 평화로 인해 청나라 정규군의 군사력이 팔기군과 녹영을 막론하고 모두 쇠퇴함에 따라 북양군이 청나라 정규군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조선 말기 두정갑처럼 갑찰이 없는 의장용 두정갑이 많아졌다. 오늘날 청나라 배경 중화권 사극에 나오는 청나라 두정갑은 조선 배경 한국 사극의 두정갑처럼 실제로는 안쪽에 갑찰이 없다.


[1] 끈을 길게 늘어뜨려서 위아래의 찰갑을 연결하는 방식. 자세한 설명은 아래 항목 참조. [2] 후일 이란에서 나온 차하르 아이네 갑옷과 같은 발상이다. 이름까지도 '거울같은 갑옷'으로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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