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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0 01:24:00

죠코인

아자이 하츠에서 넘어옴
파일:1111px-Azai_Ohatu.jpg
常高院
(1570년 ~ 1633년 9월 30일)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15~17세기 동아시아의 혼란기와 에도 막부 성립 이에미츠의 정치를 지켜본 여성. 언니 요도도노, 여동생 스겐인이 있다. 아자이 3자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여성. 죠코인은 법명이다.

교고쿠 씨(京極氏)의 당주인 교고쿠 다카쓰구(京極高次)의 정실이다. 본명은 아자이 하쓰(浅井 初)이다. 하쓰(初)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아명은 오나베(御鐺) 또는 오나(於那)이다.

2. 생애

아버지는 오미 국(近江国) 오다니 성[小谷城]주인 아자이 나가마사이며,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이다. 언니는 차차(茶々, 요도도노), 여동생은 에요(江与, 스겐인)이다. 더불어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는 백모(伯母)이다. 남편은 고모 쿄고쿠 마리아의 아들이므로, 내외형제(고종사촌-외사촌 관계)이기도 하다. 부부가 태어날 당시엔 아자이 가가 쿄고쿠 가를 하극상으로 뒤집어 누르고 있었고, 결혼할 당시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미 지배를 위해 이 망한 쿄고쿠 가를 다시 다이묘로 만들어준 상태였다.

성격은 스겐인과 비슷해서, 야사에서는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어떻게 하면 마누라와 다툼을 피할 수 있나 해서 그녀의 남편인 교고쿠 다카쓰구(京極高次, 1563 ~ 1609)의 예를 들어서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 사례라는 것은 야샤에서 히데타다 본인이 아내 스겐인 몰래 오시즈(お靜, 1584 ~ 1635)이라는 시녀와 바람을 피웠는데, 거기에서 난 자식이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 1611 ~ 1673)이다. 교코쿠 다카쓰구도 히데타다와 마찬가지로 역시 바람 피웠다가 나중에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게 바로 교코쿠 다다타카(京極忠高, 1593 ~ 1637)였다. 하쓰는 그 사실을 알고, 스겐인 앞에서 울면서 아이를 죽이는 동시에 다카츠구와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엿듣고 하쓰를 설득하게 된다. 이에야스는 다카쓰구의 가신을 은밀히 불러서 이에야스의 경험을 살려서 은밀히 키울 것을 다카쓰구에게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이에야스의 말대로 다카쓰구는 정실이 화를 가라앉기까지 가신에게 은밀히 키우라고 했다고 한다.[2]

여동생 에요와 도쿠가와 히데타다 사이의 4녀인 하쓰히메(初姫, 후에 코안인(興安院, 1602 ~ 1630)가 양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가 입양 승인해준 것. 호시나 마사유키 존재를 스겐인 모르게 철저히 숨긴 것도 앞에서 말한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남편인 교코쿠 다카쓰구가 죽자 남편의 유언에 따라 에도에 인사차 드리고 오사카 성에 요도도노, 센히메,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같이 살게 된다.

1615년 도요토미 가문이 오사카 성 여름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에게 패배, 센히메와 같이 오사카 성을 나가게 된다.

남편 다카쓰구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어, 여동생 스겐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 하쓰히메, 다카쓰구의 여동생과 우지이에 유키히로(氏家行広, 1546 ~ 1615) 사이의 딸인 고나(古奈), 다카쓰구와 측실 사이에서 태어난 다다타카(忠高, 생모는 야마다 씨(山田氏)), 다카마사(후일 야스모 다카마사(安毛高政), 생모는 오구라 씨(小倉氏)), 이외 1명 등을 양자, 양녀로 삼아 이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양녀 하쓰히메를 후계자인 다다타카와 혼인시켰으나 둘 사이에서도 자녀는 없었다. 게다가 하쓰히메와 다다타카 부부 관계는 안 좋았다. 하쓰히메가 임종 직전인데 남편이라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스모 경기 보고 있고, 임종이라도 보라고 가신들이 설득하지만 무시한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죽고 그 소문이 황도(皇都)였던 교토와 쇼군의 거점이었던 에도성까지 퍼지자 황실은 물론이고 공가에서는 쑥덕거리고, 오고쇼 히데타다와 쇼군 이메미츠가 불 같이 화를 냈지만 막부를 섬긴 가문이라 은거(隱居)하도록 하게 된다.[3]

후일 1633년 9월에 에도성 교고쿠 저택에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카스가노츠보네, 센히메 등이 그녀의 임종을 지켜보며 사망한다. 사망한 나이는 64세이며, 쇼군에게 유언을 남겨 막부가 죠코지에 있는 남편 교고쿠 다카츠구와 같이 봉안되게 된다. 막부가 특별히 조정에 부탁한 내린 시호는 죠코인덴에이쇼다이진(常高院殿松巖榮昌大姉)이다.

3. 대중 매체에서

파일:대지죠코인.jpg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小谷城] 현재의 시가현 나가하마시의 성터 [2] 그 이후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쿄고쿠 다카쓰구(京極高次)가 서군을 주도하는 이시다 미츠나리 편을 들어서 가던 중에 갑자기 자신의 거성인 오츠성으로 회군하고 농성한 그 이유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서군의 기후성(岐阜城, 기부성)함락과 함께 위의 야사가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사람이 있다. [3] 영지 몰수 생각까지 했지만, 섬긴 공로와 가스가노 츠보네(오후쿠) 체면과 죠코인이 오고우의 언니라는 점을 고려한 탓도 있다. 하지만 죠코인이 죽고 나서 1634년에 전봉(영지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