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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3:52:27

조선상고사

1. 개요2. 특징3. 평가4. 목차5. 참조


朝鮮上古史

1. 개요

역사(歷史)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
조선상고사 서문중
원문 링크

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申采浩)가 저술한 한국 고대사에 관한 책.

단군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 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1] 1931년에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으며, 1948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원래 이 책은 신채호의 『조선사』 서술의 일부분이었으며, 당시 표현 조선, 즉 고조선부터 당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한국사 전체를 다루는 목적으로 작성했지만 그 연재가 상고사 부분에서 끝났기 때문에 『조선상고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2. 특징

3. 평가

신채호는 그가 살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민족중심주의적인 시각이 투영되어 역사 서술과 그 가치 평가의 공정성을 감소시킨 면이 있으며 현재적인 관점에서 조선상고사에 다루어지는 내용은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신채호가 정립한 이런 시각은 훗날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된 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예를 들면 자정능력을 많이 잃어버린 북한 사학계나, 가장 극단적으로 변질된 사례로 환빠 식민사학자 등이 있다. 물론 신채호는 환빠식 논리와는 차원이 다른, 실증주의를 추구하는 학자였다. 환빠들은 시대적 한계와 단재의 이름값을 논리의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것이다.

조선상고사 편찬 당시에 인용된 사서들 상당수가 그 근거가 부족하거나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사서가 많이 없어 그 전말을 헤아릴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또한 신채호가 옥중에서 저술했기 때문에 사료를 완전히 정확하게 인용할 수 없어서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서술해야 했기 때문에 사료의 오류가 군데군데 보이고, 사서를 연구하면서 사료 해독의 오류를 보인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삼조선론이다.

그럼에도 조선상고사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민족주의적 사학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 당시 열악한 연구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고대사를 밝히려 시도한 근대적 역사학의 시초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사료로 평가된다. 물론 내용 측면에서는 낡은 이론들이 많아 비판받을 여지가 많기에, 조선상고사의 내용을 곧이 곧대로 인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4. 목차

5. 참조

원문보기(위키문헌)
원문보기(역사광복운동본부)


[1] 정확히는 백제 멸망의 시기까지였으며 이후 내용은 신채호의 옥사로 영원히 미완결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