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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大 韓 獨 立 萬 歲일제강점기부터 광복 때까지 쓰인 한국 독립운동 구호이자 표어.
2. 설명
3.1 운동 당시 사용된 구호로 유명하다.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쓰여 있으니 당연히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3.1 운동 당시에는 ' 조선독립만세'가 훨씬 더 많이 쓰였다. 얼마 지속되지 못한 대한제국보다는 500년 이상 동안 지속된 조선이라는 이름이 당시 한반도인들에게 더 익숙했고, 일제가 한반도를 지칭해 부르는 공식적인 지방명 또한 '조선'이었으며, 3.1 독립선언의 결과 수립될 새로운 국가의 이름 또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대한독립만세'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조선독립만세'에 비해서 덜 쓰였을 뿐. 3.1 운동 시기 ‘조선독립만세‘가 아닌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대표적인 집회로는 1919년 4월 12일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이승만의 주도로 진행된 한인자유대회 #를 들 수 있다.
이후 점차 ‘대한독립만세‘라는 표어가 널리 퍼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3.1 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의 목표는 옛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닌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국으로 빠르게 패러다임이 전환되었고, 특히 3.1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공식적인 표어로 채택하여 대내외에 선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임시정부 산하의 한인애국단, 한국광복군 등 단체들은 모두 '대한독립만세'를 표어로 사용하게 된다. 물론 임시정부의 강령이나 지휘체계를 따르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계속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조선)독립만세'는 대표적인 불온표어였기 때문에 신문지상에서는 몇 글자가 검열 때문에 지워져 '〇'와 같은 기호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〇〇만세’, ‘대〇독립만세’처럼.[1]
3. 여담
2019년 3.1절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대한, 민국, 독립, 만세 폰트가 나왔다.KBL의 어록 제조기로 유명한 유도훈 감독이 리바운드 싸움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만세 부르듯 손만 들고 있던 선수들을 향하여 '리바운드만세 부르냐? 대한독립만세야?'라며 인용하여 선수들을 질책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