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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19:48:34

정의기억연대

<colbgcolor=#fdfd96><colcolor=#000000>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Justice for the 'Comfort Women'
파일:정의기억연대_가로형(수정).png
설립일 <colbgcolor=#fff> 1991년 8월 14일[1]
이사장 이나영[2]
단체종류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
전신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정대협)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11길 12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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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활동 이력
2.1. 1990년대2.2. 2000년대2.3. 2010년대2.4. 2020년대
3. 주요 인물과 출신 인사
3.1. 이사장3.2. 이사
4. 논란
4.1.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4.2. 유럽 순방 중 북한 간첩 접선 논란4.3. 류경식당 집단탈북 종업원 월북 종용4.4. 여성가족부 국가보조금 이상 집행 논란4.5. 임옥상 작품 철거 반대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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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단체의 결의로 발족한 시민사회단체. 전후 반세기동안 침묵하고 있던 한국사회와 국제사회를 일깨우며, 일본군 위안부 가해사실과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게 범죄 인정을 포함한 법적 책임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언론 등지에서 통용되는 약칭은 ‘정의연’이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증언을 시작으로 스스로 생존자임을 밝히고 나아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평화와 여성인권 운동가로 살아오신 모든 피해자들의 존엄한 삶을 기억하고 기리고,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해온 수요시위를 통해 진실과 정의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하며, 남북. 아시아.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의 목소리를 범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인권기구에 무력분쟁 하 여성폭력 피해자 문제 해결의 국제인권기준을 제시하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과 평화비를 건립하여 미래세대를 향한 평화교육과 피해자에 대한 기림활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나비기금을 설립하여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무력분쟁 하에서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고 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뿐 아니라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회복, 재발방지에 기여하며 활동해온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의 지난 28년 동안의 업적과 활동을 계승하고 있다.

2016년 6월 9일 2015년 한일합의 무효화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100만 시민의 참여로 설립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 재단의 설립취지와 활동을 이어 받는다.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이다. 1990년 발족한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와 2016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2018년 7월 11일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목표로 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지원과 진상 규명을 위한 연구 및 조사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교육 및 장학사업, 기림사업과 국제 연대 사업을 추진한다. 그 밖에 위안부 합의 및 일본 내각총리대신들의 '담화'를 비판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선전하는데도 힘썼으며, 수요집회를 주관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위안부 피해자 단 1명의 생활 지원만 하고 있는데도 이사진들이 여성단체, 정계 등 인맥이 막강해서 위상이 과대평가 되어 왔다 (비교하자면 전국의 피해자 할머니 17명. 조계종 계열 나눔의 집은 5명 수용. 즉 정의기억연대는 나눔의 집보다도 할머니들 지원을 덜 하고 있다)

윤미향 전 이사장은 21대 총선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이후 2020년 4월 28일에 중앙대 여성학 이나영 교수가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2. 활동 이력

2.1.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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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00년대

2.3. 2010년대

2.4. 2020년대


파일:IMG_20210805_180417_553.jpg

3. 주요 인물과 출신 인사

3.1. 이사장

3.2. 이사

4. 논란

4.1.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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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유럽 순방 중 북한 간첩 접선 논란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알리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인 유럽평화기행을 운영하면서 참가 학생들에게 유럽 현지에서 활동하는 북한 간첩을 만나게 하여 친북, 반미 교육을 행하였다는 참가자의 증언이 나왔다. #(아래 사진 설명: 2014년 프랑스 파리. 모자이크가 되어있지 않은 인물들은 왼쪽부터 길원옥 할머니, 베누아 케네데[3], 윤미향, 조덕원[4])파일:간첩조덕원과정의연.jpg

4.3. 류경식당 집단탈북 종업원 월북 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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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식당 종업원 탈북자들에게 월북을 회유하고 이를 위해 수개월간 3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이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4.4. 여성가족부 국가보조금 이상 집행 논란

2022년 1월 28일, 정의연 측이 국고 보조금을 여가부로부터 받은 뒤 이를 직원에게 인건비 명목으로 주고서는 다시 기부받는 이상한 집행 방식을 택했음이 검찰 측에 의해 문제시되었다. #

4.5. 임옥상 작품 철거 반대

위안부 기념 공간인 기억의 터 안의 '대지의 눈'이라고 명명되는 기념물의 제작자 임옥상이 성추행 범죄자라고 밝혀지자 서울시에서 강제 철거한 사건을 말한다. 임옥상의 범죄사실이 밝혀진 후 서울시는 일본군 ‘위안부’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와 기억의 터 정리 방법에 대하여 논의를 진행하던 중 협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강제 철거를 진행하였다. # # 서울시는 철거과정에서 철거 이유와 일정, 방법 등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일본군 ‘위안부’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와 진행한 논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기억의 터'는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며 약 19,755명의 시민이 참여한 공공시설이다. 더하여 임옥상의 성추행 가해와 처벌사실을 알리고 기억하는 조형물을 추가로 설치하여 반성의 계기이자 '기억의 터'와 현재 여성인권의 관계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풀어낼 수도 있었다. 임옥상의 다른 작품인 청계천 전태일 동상과 같이 철거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이는 전태일 재단과 협의하여 진행한 사실이 있듯이 '기억의 터' 또한 일본군 ‘위안부’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와 협의 하에 철거와 이후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에게 과정과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건립 당사조직인 일본군 ‘위안부’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물론 시민들과의 소통도 없이 철거를 강행하였다.

5. 여담

2021년 8월 13일, 윤미향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위안부 왜곡 처벌법을 발의하였는데, 위안부 관련 단체를 왜곡 금지 대상에 포함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1]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신 [2] 윤미향 이사장이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으로 인한 국회의원 겸직금지 사유로 인한 이사장 변경 [3] 프랑스에서 북한 간첩으로 활동한 것이 발각되어 프랑스 정부로부터 반역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 [4] 1992년 한국에서 북한 간첩으로 활동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확정되어 징역 7년을 산 뒤 프랑스로 떠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