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0:33

일본국유철도 전후 5대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본국유철도 전후 5대 사고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fff> 구분 사고 일시 사고 명칭
철도사고 1951.04.23. 사쿠라기초 사고
해상사고 1954.09.26. 토야마루 침몰사고
해상사고 1955.05.11.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철도사고 1962.05.03. 미카와시마 사고
철도사고 1963.11.09. 츠루미 사고 }}}}}}}}}


1. 개요2. 배경3. 5대 사고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1. 개요

国鉄戦後五大事故

1949년 6월부터 1987년 4월 사이에 일본국유철도가 관할하던 철도와 항로[1]에서 발생한 사망자 100명 이상 철도사고 해상사고들을 통칭하는 말.

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은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수탈(공출)을 강행했는데 여기에는 철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철과 사철은 물론 일본 지배 하에 있던 조선 대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도 노선들을 불요불급선으로 지정해 선로와 역사를 뜯어간 것도 모자라 멀쩡히 있던 차량의 강철 차체와 부품까지 공출해갔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 철도 수요가 급부상했지만 당시 일본국유철도가 소유한 차량으로는 그 수요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국유철도에서는 이에 대응하고자 수송량 증강 대책을 수립했는데 그 일환으로 강철 차체에 목재 내장재를 사용한 전동차를 투입했다.[2] 수송량 증강 대책에 치중한 나머지 철도안전 대책에 소홀했고, 사고 직후 미흡한 대응[3]과 종사자의 안전불감증, 그리고 자연재해[4]가 5대 사고의 주요 배경(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5대 사고를 전후해 일본국유철도 총재는 2명 연속으로 사임[5]하게 되었으며 열차자동정지장치(ATS)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철도연락선을 대체할 세이칸 터널이 계획되는 등 일본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줬다.

3. 5대 사고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일본국유철도 관련 문서
사건 사고
아게오 사건, 인민전차 사건, 수도권 국전 폭동, 우에츠 본선 탈선사고, 카미시호로역 열차 충돌사고, 호쿠리쿠 터널 화재 사고
일본국유철도 전후 5대 사고
사쿠라기초 사고, 토야마루 침몰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미카와시마 사고, 츠루미 사고
일본국유철도 3대 미스터리 사건과 그 외 유사 사건
마쓰카와 사건, 미타카 사건, 시모야마 사건, 니와사카 사건, 마리모호 탈선 사건, 요산선 사건
경영 관련
국철재건법, 적자 83선, 특정지방교통선
분할 민영화 이후 JR 9개사
JR 홋카이도 JR 동일본 JR 도카이 JR 서일본 JR 시코쿠 JR 큐슈 JR 화물 JR 총연 JR 시스템



[1] 철도연락선 중 일부 노선은 일본국유철도가 운영했다. [2] 목재를 사용했음에도 가연재 부품과 도료를 사용하는 등 부실설계 및 시공이 이루어졌다. 결국 사쿠라기초 사고에서 합선과 겹쳐 큰 화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3] 사쿠라기초 사고에서는 승무원과 역무원이 전동차 내 비상용 콕크의 위치를 몰라서 탈출이 늦어졌다. [4] 토야마루 침몰사고는 태풍의 영향을 받았다. [5] 사쿠라기초 사고로 카가야마 유키오 총재,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로 나가사키 소노스케 총재가 책임을 지고 각각 사임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7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7 ( 이전 역사)
문서의 r85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