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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8 05:03:41

인판트 동 엔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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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트리데스 드 수사 멘데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제 누누 핀투 다 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 알메이다 주제 무리뉴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아고스티뉴 다 시우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도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카타리나 에우페미아 카를루스 파레지스 주제 소크라트스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루이 드 카발로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브리테스 지 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벨미로 데 아제비로 수사 마르틴스 마리아 두 카르모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지 카를루스 1세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익세이라 레벨로 아폰수 3세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비토르 바이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허만 호세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히카르두 아라우주 페레이라 마누엘 소브리뉴 시몽이스 마누에우 마리아 바르보자 드 보카주 헬리오 페스타나 조르주 삼파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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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샹팔리모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질 비센트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미겔 토르가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나탈리아 코레이아 에드가 카르도주 페르낭 멘데스 핀투 루시아 수녀 알프레도 다 실바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요한 21세 다미앙 드 고이스 주앙 4세 조아킹 아고스티뉴 아델라이드 카베치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알메이다 가헤트 안토니우 젠틸 마르틴스 안토니우 바리아슈에스 파울라 레고 마리아 조앙 피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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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CCC8><colcolor=#000> 비제우 공작
인판트 동 엔히크
Infante Dom Henrique, o Navegador
파일:Henry_the_Navigator1.jpg
출생 1394년 3월 4일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
사망 1460년 11월 13일 (66세)
포르투갈 왕국 사그레스
아버지 주앙 1세
어머니 랭커스터의 필리파
형제 두아르트 1세, 페드루, 이사베우, 주앙, 페르난두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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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 왕자이자 비제우의 공작이었다. 그는 셋째 왕자로서 후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판트(Infante)였으며, 그의 업적으로 인해 항해왕자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라고 불렸다.[1]

2. 생애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자 두아르트 1세의 동생으로 1415년에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하자 세우타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1418년에 무슬림 세력이 연합해 세우타를 공격하려고 하자 리스본에 있다가 군대를 준비해 세우타로 향했지만 수비 부대가 무슬림 세력을 격파했다. 그라나다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주앙 1세가 원정을 중지시켜 리스본으로 돌아갔으며, 1419년에는 알가르브 총독에 임명되어 유럽 남서쪽 끝 사그레스에 거류지를 건설해 아프리카 탐험을 후원해 1420년부터 탐험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탐험대의 파견을 통해 포르투산투, 마데이라 제도 등을 발견했고 페레스트레루를 포르투산투의 총독으로 임명했으며, 엔히크는 탐험가들이 마데이라 섬의 나무가 너무 울창하고 덤불이 무성해 평평한 땅을 만들 수가 없어서 나무를 불태운 것을 알고는 포도나무를 심으라고 명령하였고 이후 마데이라 섬은 포도주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1433년에 주앙 1세가 죽자 형 두아르트가 포르투갈 왕위를 계승했다. 당시에는 보자도르 곶 남쪽에는 펄펄 끓는 암흑의 녹색 바다가 있고 악마가 살고 있다는 미신이 퍼져 그 곶을 함부로 탐험하지 못했는데, 엔히크가 보낸 지우 이아느스 등의 탐험가가 1434년에 보사두르 곶을 넘어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 것을 보고받아 그 미신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1438년에 두아르트가 죽고 아들인 아폰수 5세가 재위했는데, 아폰수 5세가 어려서 어머니인 아라곤의 레오노르의 섭정을 맡는 것을 지지했다.

둘째형인 페드루가 레오노르의 반대편에 서서 레오노르를 쫓아냈음에도 엔히크는 궁정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프리카 탐험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되었지만 1441년에 원정대가 사금덩이와 흑인 2명을 잡아오면서 이는 해소되었으며, 1443년부터는 보자도르 곶 남쪽에 대한 항해와 교역권을 독점했다.

여러 탐험가들의 발견을 통해 경제적으로 성과를 얻으면서 1448년 9월 15일에 기니 연안에 대한 탐방, 교역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아프리카 탐험에 대한 독점권, 노예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재산을 왕, 교회, 기사단, 부하, 해상왕국의 후계자 등에게 양도했다.

1460년 11월 13일에 사그르스에서 사망했다. 인도 항로 개척에 나선 인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는 평생 포르투갈을 떠난 적이 없었으며 인도 항로는 1480년대에 들어서 개척된다. 한 마디로 엔히크 왕자 사후 이야기. 하지만 엔히크 왕자가 시작한 아프리카 항로 개척이 인도 항로 개척의 씨앗이었다는 점은 모두가 수긍하는 사실이다. 이때 기초가 다져진 포르투갈의 항해실력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때 꽃피워진다.

대항해시대 전만 해도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길은 인도-지중해-이탈리아 항로였는데 여긴 유럽 서쪽 끝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별로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럼 남은 선택지는 아프리카를 돌아서 가는 길 뿐이었다. 비록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하면서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지만, 콜럼버스는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발견했을 뿐 정작 그 자신은 그 곳이 인도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훗날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이 곳이 확실히 인도가 아님을 밝혔지만, 그도 단지 그곳이 인도가 아님을 밝혔지 인도에 간 적은 없다. 결국 아프리카 항로를 통해 인도에 닿은 건 1497년, 아메리카 항로를 따라 인도에 닿은 건 1522년으로 아프리카 항로가 더 빨리 인도로 가게 되었다.[2] 결국 엔히크 왕자의 안목은 옳았던 것이다.

3. 기타


[1] 한국에서는 영어식으로 항해왕자 헨리(Henry the Navigator), 스페인어식으로 항해왕자 엔리케라는 표기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2]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메리카 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대양을 건너야 했기에 난이도가 더 높았던 반면, 아프리카 항로는 그냥 연안을 따라 항해만 해도 이미 절반은 따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리마저 아프리카 항로가 더 짧다. [3] 정치 75 전투 75 지모 84. 보A궁B기B수C, 건설/문화/등용/기동/돌격. [4] 바스쿠 다 가마,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