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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23:30:34

이상협(1986)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이상협선수.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이상협
李相俠 | Lee Sang-Hyup
출생 1986년 8월 3일 ([age(1986-08-03)]세)
경기도 용인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81kg
포지션 공격수
학력 포곡초등학교 (졸업)
동북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프로입단 2005년 FC 서울
소속팀 FC 서울 (2005~200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2013)
대전 시티즌 (2011) (임대)
상주 상무 (2012~2014) (군 복무)
전북 현대 모터스 (2014~2015)
성남 FC (2015.8~2015.12) (임대)
경남 FC (2016)
국가대표 2003년 FIFA U-17 월드컵 본선 대표
2004년 AFC U-19 챔피언십 아시아예선 대표

1. 개요2. 어린 시절3. 선수 경력4. 은퇴 후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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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친 왼발
박경훈 감독의 방울뱀 축구의 포문

K리그에서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2. 어린 시절

태권도를 먼저 배움. 축구로 몸을 풀고 태권도를 하곤 했었는데 축구가 더 재밌어져서 포곡초등학교 축구부에 찾아가 축구 시켜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동북중학교에 진학, 당시 양동현, 권순형,황규환과 함께 4관왕 멤버였다. 그렇게 동북중-동북고를 다니다가 FC 서울 (당시 안양 LG)와의 연습 경기에서 조광래 감독과 이영진 코치의 눈에 발탁되어 프로에 입단하게 된다.

3. 선수 경력

3.1. FC 서울

동북고 졸업 후 2005년 프로에 뛰어들었으나, 2006년 R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컵대회 2경기를 소화하며 데뷔전 데뷔골을 넣었지만 무릎 수술을 당하며 그대로 시즌 아웃을 당했다.

2007년 셰놀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후 이청용, 기성용 등과 함께 기회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이해 박주영, 김은중, 정조국이 모두 부상으로 개점휴업 하면서 두두와 함께 팀내 둘뿐인 공격수로 활약, 18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했다. 당시 서울팬들은 이상협의 활약을 지켜보며 협간지, 미친 왼발 등 스타일리쉬한 별명을 붙여준다. 그렇게 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다시 밀리며 거의 경기에 출전하짐 못했다.

3.2.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시즌을 앞두고 방승환과 트레이드로 박경훈감독이 재편하는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박경훈 감독의 비호 아래 시즌 초반 3경기 연속골을 넣는 등[1] 리그 14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 제주의 정규리그 2위를 견인하였다.

그렇게 전성기를 맞는 듯 싶었으나, 서서히 주전에서 밀렸고 리그 3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며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이적한다. 추후 인터뷰에서 박경훈 감독과의 불화가 있다고 밝혔다. #

임대 후 10경기에 출전, 1골을 기록. 하지만 대전에서는 팀 상황이 엉망이었던지라 큰 활약은 보이지 못하였고, 임대 복귀 후 슬럼프에 허덕이다가, 2012년 7월 상주 상무의 선수 수급 부족으로 인한 상시선발로 군 입대 지원, 2년간 군복무를 하기에 이른다.

3.3. 상주 상무

1줄요약 : 군인정신 탑재
입대 직후 리그 막판 9경기에 출전, 3골을 기록하나 팀은 약속된강등을 당한다.

그 후 13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 이근호와 더불어 투톱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다. 31경기 17골 3도움, K리그 챌린지 초대 득점왕 이근호와 득점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경기당 득점수에서 이근호에게 밀렸다. 사실 슈팅 대비 골 기록은 이전의 1/7 수준으로 비슷하나, 경기 대비 골 수는 0.52로 크게 향상되었으며[2], 또한 이전 대비 약 2배 가까운 경기수를 소화해내며 자신이 더 이상 조커용이 아닌 풀타임 자원으로도 활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역 직전 인터뷰에서도 "상주에 입단한 건 행운이다. 상주에 와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프로에 와서 가장 뜻깊은 해였다"라고 언급하며, 개인에게도 충분한 터닝포인트였음을 알 수 있다. 상주에서의 활약을 눈여겨 지켜본 전북은 상병이었던 이상협을 김현과 트레이드하며 영입을 확정짓는다.

3.4. 전북 현대 모터스

전역한 직후 김현과 트레이드로 전북에 합류했다. #

알동기 최철순과 동시에 팀에 합류하며, 다소 흔들리던 팀에 큰 보탬이 되었다.

친정팀 FC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첫 데뷔전을 치뤘고, 그 후 주로 교체로 활약하였다. 포지션은 4-2-3-1에서 왼쪽 윙, 혹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서는데, 월드컵 이후 확실히 최전방으로 자리를 굳힌 듯 보인다. FA컵 혹은 리그에서 이동국이 선발출장하지 않는 경우, 이상협이 최전방 요원으로 나선다. 그리고 대부분 경기에서 교체로 이름을 올리고 출장한다.

경남 FC와의 원정에서 앞서가던 후반 헤딩골을 기록하며 전역 후 리그 데뷔골 신고. 성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출전, 경기 종료직전 왼발 무회전 프리킥으로 상대 골키퍼를 기름손 아킨페예프로 만들며 골을 기록하였다.

이동국이 계속해서 리그에서 정점의 활약을 보이고 있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으나, 전북에서 이동국의 뒤를 이을 자원을 꼽자면 이상협이 유일하다. 일단 스쿼드에 최전방 원톱을 소화할 선수가 생각보다 없고, 이동국의 부재를 어느정도 메울 수 있음을 경기마다 증명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불같은 승부욕, 리그 내 비교대상을 견줄 수 없는 왼발 킥 능력 등 자기 장점이 뚜렷한 플레이어라 슬럼프만 없다면 전북에서 전성기를 맞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는 플레이어. 이적만 안한다면

그러나 K리그 MVP 이동국 뿐만 아니라 카이오, 에두 등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한 전북 원톱 자리에 이상협의 자리는 없었고 1년 반 동안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윙어나 미드필더 자리를 전전하는 등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3]

3.5. 성남 FC

2015년 7월 31일,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날 성남 FC로 임대 이적이 확정되었다.

초반에는 기대를 받았지만 무릎 부상 때문에 원래 팀 전북에서와 마찬가지로 별 활약이 없었다. 그리고 곧 무릎 부상이 생겨 전력 외... 김두현에게 집중된 중원의 부담을 나눠질 만한 인물이 이러니 성남은 방전된 상태로 남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

3.6. 경남 FC

2016년 전북으로 복귀한 후 다시 경남으로 이적했다. 상주 시절 코치였던 이영익이 경남의 코치로 있었다.

경남에서 등번호 10번, 최고 연봉자, 부주장 등 팀의 에이스 대우를 제대로 해줬으나..

그러나 개막 전 무릎 연골 부상으로 시즌 1경기에 그쳤으며 2016 시즌 종료 후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표명했다.

3.7. 국가대표

2003년과 2004년 U-17과 U-20에 선발되며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나, 프로 데뷔 후 U-23 혹은 A팀에 선발된 적은 아직 없다.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3년 정도 유통,물류 쪽에서 과장으로 일했다가 직장인 생활은 미래가 안보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게 돼서 퇴직, 그 후 1년 정도 개인사업을 하였지만 그마저도 사무직이다 보니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 두게 된다.

이후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다가 운동 선수 출신 답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 쪽으로 일을 하기로 결심, LFA (LSH FOOTBALL ACADEMY) 축구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5. 플레이 스타일

장점은 역시 전매특허 왼발 킥. 리그 내에서 왼발 킥의 파워로는 견줄만한 대상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 킥의 강도가 상당하여 궤적이 다소 러프해도 완력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때문에 득점 지역 역시 전통적 스트라이커보다는 패널티 박스 바깥의 빈도가 잦은 편. 상주 상무 시절 박항서 감독의 지도 하에 오른발 킥에도 눈을 떴고, 전북 이적 직후에는 헤딩도 성공시켰다! 또한 최전방 스트라이커 치고는 키가 다소 작은 편이나, 체격이 좋고 윙에서 뛴 경험이 있어 측면으로 빠지며 기회를 열어주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또한 성격에 불같은 면이 있어 상당히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한다. 귀네슈, 박항서, 최강희 등의 지도 하에서 빛을 본 바로, 덕장들과의 상성이 좋은 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역 후 전북 현대 이적후에는 주로 윙어 교체자원으로 활약했으나, 월드컵 브레이킹 이후 최전방 공격수로 서는 경우가 잦아졌다. 현재 전북의 원톱 경쟁자는 넘사벽이동국이 있고, 직접적인 경쟁자로는 카이오와 전역을 앞둔 김동찬이 있으나, 카이오는 임대생인데다 윙으로 출전하는 빈도가 더 잦고 김동찬보다 호흡면에서는 우위에 있기 때문에 내년 시즌 기회를 더 부여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혈기왕성하던 서울 시절에는 한 성격 하는 선수였으나 상무에 다녀오고 나이가 들면서 거친 면은 많이 사라졌다. 여담으로 2008년 4월 2일 수원삼성전에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판과 당시 FC서울 코치진들 에게 큰 소리를 하며 반말을 한 적이 있다

6. 여담

2011 시즌을 앞두고, 본래 경남FC의 박진수 선수와 트레이드될 예정이었다. 당시 경남 전훈지에서 경남 선수들과 훈련하며 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될 정도로 영입 논의가 진척되었는데, 트레이드 대상이었던 박진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며 트레이드는 파토가 나고만다.


[1] 이때 스로인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2] 평균 슈팅 시도숫자가 많이 향상되었다는 반증이다. 상주 입대 후 1경기 2회 수준이던 슈팅 수가 3회로 크게 향상. [3] 사실 이상협은 전형적인 원톱 유형의 공격수라기 보단 투톱에서 처진 스트라이커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인데, 전통적인 9번 스트라이커를 선호하는 최강희 감독 체제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훗날 인터뷰를 통해 전북에서 최강희 감독이 중용해준 것에 비해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