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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8 20:34:08

리비아-이라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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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이라크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대2.5. 20세기2.6. 21세기
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리비아, 이라크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 당시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이었고 리비아는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점이 적지는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리비아 북부 해안의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도시 키레나이카는 지중해 동부와 교류가 활발하였고 이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물이 리비아 해안 지역으로 수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키루스 대왕의 군대가 오늘날의 이라크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였으며, 키루스의 사망 이후에는 그의 후계자 캄비세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가 고대 이집트를 정복하고 뒤이어 리비아 북부 키레나이카를 손에 넣었다. 이러한 연유로 이라크와 리비아 모두 같은 고대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서쪽의 고대 카르타고가 세력을 팽창하여 리비아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고대 카르타고는 공화정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공화국으로 동방의 오리엔트 국가들보다는 외려 그리스계 폴리스들과 공통점이 적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은 한동안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후신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이후 중앙아시아 방향에서 남하한 파르티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한동안 리비아 지역은 고대 지중해 서부 문화권에,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은 중동 문화권에 속하게 되었다.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결과 고대 카르타고 고대 로마에게 멸망당했고, 리비아 일대 역시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로마 제국이 들어선 이후 트라야누스 등이 동방의 파르티아를 격파하고 이라크 북부 지방을 속주로 만드는데, 이렇게 리비아 전역과 이라크 북부 지역은 다시금 한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가 끝나고 로마 제국의 동서분할 과정에서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 지역과 이라크 북부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리비아 서부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서로마 제국이 서서히 붕괴하는 과정에서 반달족들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라크 서남부 지역은 파르티아가 무너지고 들어선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2.2. 중세

서기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의 명장 샤흐르바라즈가 동로마 제국의 동부 영토를 대대적으로 정복하는 과정에서 한 때 사산조 페르시아 군대가 시리아와 이집트를 넘어 리비아 동부 일대까지 잠시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리비아 지배를 잠시에 그쳤고 동로마 제국의 이라클리오스 황제의 군대가 사산조 페르시아 본토를 유린하면서, 샤흐르바라즈는 자신이 정복했던 시리아와 이집트, 리비아를 포함한 지역의 영토를 동로마 제국에 반환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로 돌아가 황위에 오른다. 이후 샤흐르바라즈는 황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암살당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여러 인물들이 서로 황제를 참칭하고 난립하는 상황이 되면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의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랍인들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하였고 동로마 제국은 시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북아프리카 전역을 아랍 무슬림들에게 내주게 되었다. 그 결과 메소포타미아와 마그레브 지역은 아랍 제국에 의해 아랍화되면서 동시에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이라크와 리비아는 정통 칼리파 시대, 우마이야 칼리프조, 압바스 칼리프조 등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거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는 동서무역의 교차로라는 위치에 인구 부양력이 높아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반면 리비아는 변방 지대 정도로 중요성이 덜한 편이었다. 압바스 칼리프조 시기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발흥한 파티마 왕조가 튀니지에서 이집트 방향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리비아 북부 해안 지대는 파티마 왕조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로 인해 한동안 리비아와 이라크 일대의 교류는 상당부분 축소되었다.

2.3. 근세

양 지역은 근세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리비아는 북부 해안 지방 외에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이었고 오스만 제국의 리비아 지배는 일부 거점 도시들에 예니체리들을 파견하여 내정까지 관리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라크 북서부 지역을 영토로 두었으나 이라크의 서남부(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하류 지역)까지 완전히 정복하는데는 실패하였다. 이라크의 서남부 지역은 사파비 제국 등 이란계 시아파 왕조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이라크의 북동부와 서남부의 종교 지형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2.4. 근대

1711년 리비아 트리폴리타니아를 중심으로 카라만르 왕조가 들어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하였다. 이 카라만르 왕조는 오늘날의 리비아의 사실상 전신에 해당하는 왕조로서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관리되던 리비아 일대를 하나의 영토 국가로 들어서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1835년에야 리비아 일대의 지배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라크는 19세기 내내 오스만 제국과 아프샤르 왕조, 잔드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의 전쟁터가 되면서 관계시설들이 파괴되며 황폐화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대 이라크의 순니파 무슬림 지식인들은 시리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게 됨과 동시에 남쪽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와하브파의 영향을 받으며, 반튀르크-반이란 성향의 아랍 민족주의를 다져나가게 되었다.

2.5. 20세기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전쟁 결과 리비아는 이른바 이탈리아령 리비아라고 해서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라크는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이라고 해서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외세로부터 독립된 이후 각자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나 두 나라들은 아랍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보니 여러 부분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아랍 민족주의 아랍 사회주의, 이슬람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협력, 아랍권의 유대감을 형성하려고도 했다. 다만 리비아는 바트당이 아닌 자마히리야, 이라크는 바트당이었다.

바트당 정권 시절 이라크는 종교 갈등은 어느정도 봉합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사담 후세인 재임 시절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고, 걸프전 이후에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전후 경제복구에 실패하였으며 북부 영토의 쿠르드인들을 대상으로 화학 무기까지 사용하는 등 강경 진압책으로 사회가 다소 뒤숭숭했다. 반면 리비아의 경우 다른 마그레브 국가들과 다르게 아랍인-베르베르인-흑인 사이의 갈등이 적은 편이었으며, 미국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 자체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던 편이었다. 리비아 역시 차드 및 이집트와 분쟁을 겪기는 했으나 이라크 수준으로 전쟁이 격화된 것은 아니라 민간의 타격은 적은 편이었다.

2.6. 21세기

두 나라들은 내전이 일어난 후 2014년부터 국제 유가 폭락에 따른 경제난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거센 반란에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았으나 결국 2017년, 2018년 이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들 세력들을 거진 토벌한 상황이다. 다만 리비아의 경우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에도 내전 자체가 종결되지 않아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 이전 수준으로 사회 경제가 복구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라크의 경우 이라크 내전을 마무리지은 점에서는 리비아보다야 낫지만, 대신 아직 이라크 사회 내 시아파와 순니파, 아랍인 대 쿠르드인 사이의 갈등 문제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해 사회 불안요소로 남고 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