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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21:59:07

윤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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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眞秀 (1955. [age(1955-02-06)]세 ~ )

1. 개요2. 학력3. 생애4. 학문5. 여담

1. 개요

한국의 민법학자. 법관 출신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명예교수이다.

재산법 가족법 공히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 드문 학자이다.[1] 이미 1990년대말부터 서울법대에서 양창수 교수와 함께 민법 분야에서 투톱을 형성했고, 양창수 교수가 대법원으로 향한 2008년 이후에는 서울법대 민법 최고 인기 교수로 군림했다. 학계에서 괄목할만한 제자를 여럿 길러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2. 학력

3. 생애

1955년 2월 6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1973년에 경기고등학교(69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77년에 졸업하였다. 대학 4학년 재학 당시인 1976년에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79년 사법연수원을 제9기로 수료하였다.[4]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1982. 9 - 1983. 8)를 시작으로 법원생활을 시작했으며,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1983. 9 - 1985. 8), 서울가정법원 판사(1985. 9 - 1986. 8), 전주지방법원 정주지원 판사(1986. 9 - 1989. 2), 독일 함부르크 막스플랑크 외국사법 및 국제사법 연구소 연수(1987-1988), 광주고등법원 판사(1989. 3 - 1990. 8),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1990. 3 - 1992. 2), 대법원 재판연구관(1992. 2 - 1995. 6) 등을 두루 거쳤다.[5]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1995. 6 - 1997. 2)를 역임한 다음, 1997년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서울법대 조교수로 임용되었다.[6] 그 후 2001년에 부교수로 승진했으며, 2003년에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있었고, 2006년에 정교수로 승진했다. 2007년에 로스쿨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로스쿨 찬성파에 속했다. 2020년 2월에 정년퇴직했다.

한국법경제학회 회장, 한국비교사법학회 회장, 한국가족법학회 회장, 한국민사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200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민사판례연구회 제4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7] 또 몇 차례에 걸쳐 법무부 가족법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도 있다.

제자로 권재문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동현 한림대학교 법학과 교수, 현소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경대 전 의원의 차녀), 이동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준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지혜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보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정치인 김한규 변호사의 부인) 등이 있다.[8]

4. 학문

5. 여담



[1] 민법 교수들은 다수가 재산법 연구에 천착하고, 비교적 소수만이 가족법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둘 다 고루 연구하는 예는 많지 않다. [2] 학위논문 : 소멸시효의 남용에 관한 고찰(1984) [3] 학위논문 : 부동산의 이중양도에 관한 연구 : 제1양수인의 원상회복 청구를 중심으로(1993) [4] 동기로는 김이수 헌법재판관, 임채진 검찰총장 등을 들 수 있다. [5]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2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무려 3년 4개월이나 했으니, 판사로 일하면서도 연구활동을 아주 많이 한 편이다. [6] 이 무렵 황적인 교수(1929~2013)의 지도로 서울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7] 전임자는 대법관을 지낸 바 있는 양창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고, 후임자는 전원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다. [8] 보다시피 양창수 전 대법관 못지않게 제자 농사를 잘 지었다. 같은 학교에서 제자 둘과 함께 교수생활을 하였던 것도 비슷하다. [9] 반면 남효순은 담보지상권 개념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담보지상권도 등기가 되고,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담보지상권은 저당권의 종된 권리로서 인정할 수 없다. [10] 서울법대 '00학번이고,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현재 법무법인(유한)태평양 소속이다. [11] 양창수 교수 수업을 듣다가 수업시간에 질문을 했더니 양 교수가 대뜸 "네 아버지한테 물어봐."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12] 그러나 막 교수 부임했을 때에는 '수업을 들어 보니, 교수가 강의하는 게 아니라 부장판사가 재판 진행하는 것 같았다.'라는 악평을 들었다(...). [13] 애초에 사법시험에서의 수험법학과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지향점과 적성에 차이가 크다 보니, 중견 법조인 중에서 연구에 관심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 자체가 의외로 드물다. 반대로 학문에 관심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역시 취향에 따라 진로를 택하다 보니, 사시에 합격했더라도 법조인 생활을 그리 오래 하지 않고서 일찌감치 학계로 진로를 바꾸는 예가 많다. [14] 최초 임용 시점을 기준으로, 정년퇴임을 한 교수 중에서 법조 경력이 10년이 넘는 경우는 윤진수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며, 현재 재직 중인 50여명의 교수 중에서도 병역의무에 해당하는 법무관을 제외한 순수 법조경력이 10년 이상인 경우는 10명 남짓인데, 김복기 교수(사회보장법, 헌법연구관으로 10년 이상 재직), 박상철 교수(인공지능법,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3년 재직), 이계정 교수(민법, 법관으로 12년 재직), 이상원 교수(형사법, 법관으로 16년 재직), 이은상 교수(행정법, 법관으로 14년 재직), 이재민 교수(국제법, 외교관 및 미국변호사 생활을 합하여 12년), 이정수 교수(국제금융거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5년 재직), 이효원 교수(헌법, 검사로 13년 재직), 전원열 교수(민사소송법, 법관 및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생활을 합쳐 20년), 정준혁 교수(상법, 법무법인 세종에서 13년 재직), 천경훈 교수(상법,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0년 재직), 홍진영 교수(형사법, 법관으로 10년 재직) 등이 있다. [15] 간혹 다른 학교에서 검증된(?) 학자나 경력 긴 법조인 출신이 임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서울 법대는 대체로 잠재력 있어 보이는 신진 학자를 채용한 예가 많다. 가령, 판사 출신인 이 분 교수나 이 분 교수도 법원 근무 경력이 5년도 되지 않고, 송옥렬 교수도 변호사 경력이 매우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