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요한 루돌프 글라우버 |
생몰년도 | 1604? ~ 1670 |
국적 | 독일 또는 네덜란드 |
연구 분야 | 연금술, 화학, 양조 |
1. 개요
17세기 독일,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연금술사 겸 화학자. 여러 (무기) 화합물의 합성에 성공하였으며, 양조, 제약 분야에서도 활동하여 최초의 화학공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2. 일생
1604년 바이에른 카를슈타트(Karlstadt)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대신 여러 화학 실험실을 돌아다니면서 약학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1] 20대 이후로 빈, 파리, 바젤, 프랑크푸르트 등 여러 도시를 전전해 다니며 살았다. 약제사(apothecary)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으나 30년 전쟁의 여파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암스테르담에 큰 약국 겸 공장을 세운 후 여러가지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여러 반응을 연구하고 개발했으며 그 결과 생성된 화학물질을 독점하여 돈을 좀 벌었으나 결국 말아먹고 1649년 파산했다.말년은 좋지 못했는데, 1660년에는 화학 실험에 쓰던 중금속에 중독되어 심하게 아팠고 1666년에는 마차에서 떨어져 이후 죽을 때까지 침대에 누워 지냈다. 결국 책이고 실험 기구고 다 팔아먹은 다음 1670년 3월 10일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3. 업적
그는 다양한 무기 화합물의 합성으로 유명하다. 농축된 염산 수용액을 처음으로 제조했으며, 1648년에는 질산포타슘을 농축된 황산과 함께 가열하는 질산 합성법을 개발했다. 황산소듐, 염화안티모니(SbCl3), 염화비소(AsCl3), 염화주석(IV), 염화아연을 처음으로 합성하고 분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중 특히 황산소듐 수화물(Na2SO4 10H2O)은 당시치고는 안전한 하제로 각광받아 당시 소화기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였으며 현대에도 여러 약품의 성분으로 이용된다. '기적의 염(sal mirabilis)'이라고도 칭한 황산소듐에는 그를 기려 '글라우버 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개발한 화합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람이다.
또, 화학 합성에 필요한 노(爐)와 증류 장치의 개량에도 기여했다.
화학 정원의 발명가이기도 하다. 염화철(II)을 규산 소다(K2SiO3) 수용액에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와인 제조의 화학에 대해 연구하였고 약제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처방해주었다고 한다.
총 40여권의 책을 남겼는데, 그 중 '독일의 번영(Dess Teutschlands Wohlfahrt)'이란 책에서는 광산에서 나온 광물을 이용한 연금술, 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화학 산업을 30년 전쟁 이후 독일 경제를 회복시킬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1]
본인은 나중에 공부에 찌드는 대신 학교 밖에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더 유익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