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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아나운서 | 지역 아나운서 |
<colbgcolor=#878787><colcolor=#fff> 왕종근 王鍾根[1]|Wang Jong Geun |
|
|
|
출생 | 1954년 1월 1일 ([age(1954-01-01)]세) |
제주특별자치도[2] | |
출신 |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삼덕동3가 (現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3가)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개성 왕씨(開城 王氏)[3] |
가족 |
아버지 왕재만(王在萬)[4] 어머니 김판순(金判順)[5] 3남 1녀 중 장남 |
배우자 김미숙, 아들 왕재민(1995년 5월생) | |
학력 |
대구삼덕초등학교 (졸업) 계성중학교 (졸업) 계성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 국어국문학 / 학사) |
종교 | 개신교 |
직업 | 아나운서( 프리랜서) |
소속사 | CM엔터테인먼트 |
데뷔 | 1977년 안동문화방송 아나운서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방송인이자 프리랜서 아나운서.
2. 생애
1954년 1월 1일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흔히 부산 출신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난지 한 달만에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삼덕동3가(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3가) 대구삼덕초등학교 근처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사실상 대구 출신이나 다름 없다.1977년 대구MBC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고 안동MBC[6] 특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이듬해인 1978년 TBC 부산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11월 TBC가 언론통폐합 조치로 KBS에 넘어가면서 자연히 KBS부산방송총국 소속으로 인계되어 재직했다. 결혼한 후 1994년 KBS 본사로 발령받아 아나운서실 차장 및 한국아나운서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KBS 지역권 아나운서로서 본사로 발령받아 근무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
부산에 있을 때는 어린이 퀴즈 방송 같은 부산 지역 방송에 자주 출연해서 부산 지역에서는 상당히 지명도가 있었다. 이 당시 홍콩배우 주윤발과 은근히 닮은 외모 때문에 일명 '부산의 주윤발'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KBS 본사의 전국권 방송에서 얼굴을 보게 되자 부산 지역에서는 반가워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KBS 본사 발령 이후 《 TV쇼 진품명품》 등을 진행했는데, 본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억양 문제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함과[7]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 신분으로는 할 수 없던 방송 광고 촬영 등도 하기 위해 1999년 9월 K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 방송인이 되었다고 한다.[8]
20대 후반에 일반인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뒤 이혼했고, 1993년 39세라는 꽤 늦은 나이에 12살 연하의 소프라노 성악가 겸 방송인 김미숙과 재혼했다. 현재는 치매인 장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고, 그 고충을 방송서 털어놓았다. #
3. 출연
3.1. TV
- 《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983년) - 부산방송총국 캐스터
- 《도전! 주부가요스타》( 1995년 ~ 1996년)
-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995년 ~ 1997년)
- 《 TV쇼 진품명품》( 1995년 ~ 1999년, 2005년 ~ 2009년)
- 《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 1995년)
-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 1999년 ~ 2000년)
- 《 체험 삶의 현장》( 2000년)
- 《생방송 오늘》( 2000년 ~ 2001년 11월 3일)
- 《 생방송 세상의 아침》( 2001년 11월 5일 ~ 2004년 10월 29일)
- 《토요화제 이야기 광장》( 2001년 11월 5일 ~ 2004년 10월 29일)
- 《엄마가 신났다》( TBS, 2009년)
- 《연애 위자료 청구 사건》( MBC, 2011년)
- 《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SBS)
- 《 라디오 스타》( MBC, 2013년)
- 《왕종근의 아름다운 초대》( 광주MBC)
- 《 아침마당 대구》( KBS대구)
- 《 유자식 상팔자》( JTBC, 2013년)
- 《알토란》( MBN, 2014년 ~ 2022년 )
3.2. 드라마
- 《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 2023년) - 보물을 찾아서 진행자 역 (1회)
- 《 닭강정》( 2024년) - 본인 역
3.3. 광고
- 부산합동양조 생탁 - 부산, 울산, 대전, 경남일대의 시내/외 버스 차량광고와 부산지하철 역사 광고판 대부분에 왕종근 사진이 붙은 생탁 광고가 붙어있을 정도다. 전국 대형마트에서도 생탁막걸리를 판매하게 된 영향인지, 수도권 일대의 버스에서도 이 광고가 간간히 붙어 있었다.
4. 수상
5. 홍보대사
6. 여담
- 프로레슬러 이왕표와 생전 절친한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 KBS 재직 당시에는 반듯하게 표준어를 사용하였고, 프리랜서 선언 후에도 한동안 표준어를 사용하였으나 60대로 들어선 이후에는 부산 억양의 표준어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9]
[1]
훈음 임금 왕 쇠북 종 뿌리 근
[2]
제주도에서 태어난지 한 달만에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삼덕동3가(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3가)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고 한다.
#
[3]
동양군파-병사공파 34세 '根'자 항렬.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배우
왕지원 부녀와 같은 파로 왕정홍과는 같은 항렬이며 왕정홍과 왕종근은 6대조가 왕진채(王震彩)로 같은 12촌 지간이다. 前
MBC 뉴스데스크 앵커
왕종명과 본관이 같지만 항렬은 다르다.
[4]
1926년 5월 1일 ~ 2006년 2월 5일. 족보명 왕태만(王泰萬).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부산일보사 총무국장을 역임했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5]
김해 김씨 김인수(金仁秀)의 딸이다.
[6]
이 당시 안동MBC는 라디오 방송만 있었다.
[7]
프리랜서 전향 후인 2005년에 진품명품 진행자 자리에 복귀했는데, 실제로 그의 진행 1기와 2기 사이에는 미묘한 억양의 차이가 존재한다. 2021년 5월 8일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했을 때 MC이자 아나운서 후배인
최은경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도 왕종근의 대구 말씨를 거슬려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8]
이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데, 공공기관/공기업인 KBS 직원은 특별 허가 없이는 원칙적으로 영리성 겸직을 못 한다.
[9]
KBS 시절엔 표준어를 정확히 구사해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로 근무했지만,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제는 왕종근 본인이 환갑을 지난 나이기도 하니 경상도 억양이 나오는 모양.